성추행범을 '몽골 서열 4위'라고 풀어줄 뻔했다, 그리고 정말 풀어줬다
성추행범을 '몽골 서열 4위'라고 풀어줄 뻔했다, 그리고 정말 풀어줬다
몽골 헌재소장과 수행원, 기내서 대한항공 승무원 성추행
현행범으로 잡혔는데 "면책특권" 주장⋯석방했다 재조사
'성추행' 몽골 헌법소장 결국 출국, 추가조사 받겠다고 했지만⋯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오드바야르 도르지(52) 몽골 헌재소장. 1일 예정대로 출국했다. /연합뉴스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붙잡힌 몽골 헌법재판소장(헌재소장)이 결국 출국했다.
헌재소장은 기내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면책특권이 있다'는 몽골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라 경찰 조사도 받지 않고 풀려났다. 경찰은 '잘못된 법 적용'이라는 논란이 일자 그제야 면책특권에 대해 제대로 알아본 뒤 재조사에 나섰다. 이 때문에 경찰이 미숙하게 업무 처리를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경찰은 "출국 전에 1차 조사를 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항 면세구역에서 약식으로 이뤄진 조사였기 때문에, 향후 몽골 헌법재판소장이 자진 입국하지 않을 경우 큰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은 지난 31일 오후 8시 5분(한국 시각)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한 인천공항행 대한항공 항공기 안에서 벌어졌다. 도착 시간을 1시간 30분 정도 남겨놓았을 때쯤이었다.
술에 취한 오드바야르 도르지(52) 몽골 헌재소장이 기내 화장실 근처에서 대기하며 서 있던 20대 승무원의 엉덩이를 만졌다. 도르지 소장 보좌역으로 비행기에 같이 탑승하고 있던 40대 수행원도 다른 승무원의 어깨를 만지며 추행했다.
즉각 사법경찰 권한이 있는 사무장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두 사람을 현행범으로 긴급체포했다. 도르지 소장 등은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경찰에 인계됐다. 하지만 조사를 받지 않고 풀려났다. 몽골 측에서 "도르지 소장에게 면책특권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몽골 측에서 '면책특권'을 내세운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① '외교관계에 의한 빈 협약'은 해당 국가 공관 소속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규정하고 있다.
② 국제관습법도 국가원수에 준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을 적용하고 있다.
몽골 측은 "도르지 소장은 국가원수에 준하는 4부 요인에 해당한다"며 즉각 석방을 요구했고, 경찰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1일 오전 '성추행 현행범' 도르지 소장이 석방됐다는 소식이 국내에서 알려지면서 "말도 안 되는 법 적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적기 안에서 성추행을 한 현행범인데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분노였다.
처음에는 '국민 정서법'에 기댄 막연한 분노가 터져 나왔지만, 법률 전문가들이 가세하면서 비판의 정도가 거세졌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경찰이 면책특권 규정을 잘못 적용했다'고 지적했다. ① "도르지 소장은 공관 소속 외교관이 아니므로 '빈 협약 면책특권 적용 대상'이 아니다" 라는 근거와 ② "헌법재판소장은 국가원수급이 아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우리 외교부도 이날 오후 4시쯤 "그 주장이 맞다"고 공식 확인했다. 그러자 경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폭발했다. 풀어줘선 안 되는 현행범을 풀어줬다는 비판이었다.
그제서야 경찰은 도르지 소장을 면세구역 안에서 간단하게 조사했다. 간이조사를 마친 도르지 소장은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 발리로 향했다.
이번 사건을 검토해 본 국제사건 전담 법률사무소 황금률 박성현 변호사는 "국가에 일정한 책임이 인정된다"고 했다. 헌법상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지는데 이번 사건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뜻이다.
박 변호사는 "국민이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국가기관은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 및 범죄자 처벌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며 "외교부는 신속하게 해당 쟁점을 판단하지 못했고, 경찰은 이에 성급하게 수사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국가기관 간의 불소통으로 인해 범죄자처벌에 대한 공백이 생겼다면 피해자는 국가에 일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답했다.
몽골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박성현 변호사는 "아니다"라고 확실히 말했다.
박 변호사는 "① 빈 협약은 국가 공관 소속 외교관에 적용된다"며 "도르지 소장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② 국제관습법에 대해서도 "넓게 해석하면 헌재소장도 국가원수에 준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며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지 않고, 축소하여 해석함이 마땅하다"고 답했다.
국제관습법 자체가 국가들간의 불문법으로서 법적 구속력을 가진 국제 관행이라는 이유에서다.
도르지 소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헌법재판소장 회의가 끝나는 대로 다시 입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하고 출국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을 뜬 외국인 범죄자를 국내로 송환할 수 있는 방법은 '범죄인인도조약'을 통한 강제 송환 뿐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1년 이상의 징역형 정도에 해당하는 범죄일 경우에만 인도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는 어떠할까. 박성현 변호사는 "미지수"라고 했다.
박성현 변호사는 "경찰이 '강제추행'이 아닌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를 적용한 것 자체가 사건을 다소 가볍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실제로 국내에 인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다만 '변호사 박생환법률사무소'의 박생환 변호사는 "항공기 내부라는 특수상황인만큼 일반 사건보다 더 형량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