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Law, Talk!] 이창동 감독의 '버닝', 진실과 법 그리고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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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Law, Talk!] 이창동 감독의 '버닝', 진실과 법 그리고 춤

2019. 06. 13 12:12 작성
김주미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joomi@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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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의 스틸컷. 왼쪽부터 극중 종수(유아인), 해미(전종서), 벤(스티븐 연)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준일 교수는 그의 저서 「영화의 미학, 법의 철학」, (고려대학교 출판문화원, 2017)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는 모든 장르의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다양한 철학과 사상, 그리고 정의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수많은 가치관과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다.”


이는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버닝, (2018)>을 볼 때 더욱 실감되는 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148분의 상영시간 동안 여러 장르의 예술을 음미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철학과 사상, 가치관을 마주하며 진리와 정의를 생각하게 된다.


거장 이창동 감독은 이 모든 것이 ‘버닝’이라는 영화 한 편 안에서 모두 이뤄지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장면은 일부러 뺐다”는 감독의 말에서 영화인이자 소설가인 그의 작품관을 읽을 수 있다.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나, 현실에선 절대 닿을 수 없는 이상이 아니다. 그는 의미가 담긴 절제된 아름다움과 현실에 발을 딛고도 품을 수 있는 소박한 이상을 그린다.


여기서 방점은 ‘아름다움’과 ‘이상’에만 찍히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의미’, 그리고 이상을 발아시킨 ‘현실’의 비중이 더 큰데, 의미와 현실에 그만큼 천착하는 영화인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것을 관객 각자가 원하는 대로 누리도록 자유를 부여했다. 감독인 그는 영화 ‘버닝’ 안에서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떤 것이 선인지, 해석과 판단은 열려있다.


‘버닝’이라는 영화를 통해 감독이 구현한 하나의 세계 위에, 관객들은 각자 자신이 만든 세계를 덧입힐 수가 있는 것이다.


법은 진실을 말하는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칸트는 그의 인식론에서 ‘물자체’라는 불가지 영역을 상정하고는 인간이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을 말했다. 인간은 선험적 개념들과 경험을 통해 사물의 외양을 파악하지만 실체, 즉 진실은 인간이 확신할 수 없고 단지 추론할 뿐이라는 이론이다.


영화 <버닝>은 여러 지점에서 ‘진실은 뭐지?’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에서 해미가 종수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말에도 등장한다. “이제 진실을 얘기해봐.”


이 영화가 미스터리 장르인 것을 생각하면 진실이 뭔지 모르겠다는 감상평은 오히려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칸트를 근거 삼아 ‘진실은 모르는 거지’라고 맺는다면 더욱 깔끔하다.


하지만 ‘명확성’을 중요한 골격으로 하는 법은 어떨까.

모호한 영역에 갖다 대면 경계선이 되고, 인간사 옳고 그름을 정하는 기준이 되는 법이라면 과연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작가 정재민(- 그는 판사였다.)은 그의 책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창비, 2018)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판사가 되기 전에는 증인들 말을 찬찬히 듣고 증거들을 살펴보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손쉽게 사건의 진상을 파악해낼 수 있을지 알았다. 순진한 착각 내지 오만이었다. 아무리 기록을 여러 번 본다고 해도 확신을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사실관계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적잖은 판사들이 비슷한 고백을 한다. 진실을 찾는 어려움, 그리고 진실에 반하는 오판의 두려움이 늘 판사들 마음 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각자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물과 타인에 대한 쉬운 판단은 어쩌면 무지하고 무례한 것일 수 있다.


영화 속 벤의 대사가 오래 맴돈다.

“나는 판단 같은 건 하지 않아요. 받아들일 뿐이에요. 비가 내린다, 강이 넘친다, 뭔가가 쓸려 내려간다. 비가 무얼 판단하겠어요?”


춤은 법과도 통한다


영화 '버닝'의 한 장면 캡처


많은 사람들이 <버닝>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대마에 취한 해미가 석양 아래 춤추는 장면을 꼽는다.


가느다랗지만 선이 분명한 해미의 몸짓, 보랏빛 어둠과 주황빛 노을이 만들어내는 보색 조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는 듯한 재즈 선율, 그리고 가장 높이 뻗은 나뭇잎 한 자락에까지 가 닿는 카메라 앵글. 이 모든 것이 춤이었다.


그런데 춤은 법과도 통할 수 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상돈 교수는 2011년에 발표한 논문 ‘춤으로서 법의 기호학적 의미’에서 “춤은 법에 내재해 있고, 법은 춤에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 주장의 이론적 배경으로 드는 것 중 하나가 ‘법미학’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법미학의 핵심통찰은 아름다움이 법적 정의의 한 요소가 된다고 보는 점이다.


그는 “오늘날 사회에서는 실천적으로 아름다운 것이 곧 정의로운 것이 되는 현상이 날로 증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법감정이란, 많은 경우에 사안에 대한 집단적인 미추판단의 현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법미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래서 춤은 법적 정의를 형성할 수 있다.


해미가 행한 대마와 카드빚이 실체법적으로 어떤 판단을 받는지와 무관하게, 우리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던 해미의 춤을 정의롭다고 말해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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