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으니 계약 해지?" 지자체의 황당한 통보… 법원 "업체 손해 전부 물어내라"
"돈 없으니 계약 해지?" 지자체의 황당한 통보… 법원 "업체 손해 전부 물어내라"
예산 부족은 지자체 사정일 뿐
적법한 해지 사유 안 돼

"돈 없으니 나가라?" 법원, 예산 핑계 댄 지자체 일방적 계약 해지에 제동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 부족과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시공사와의 공사 도급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발주기관이 주장하는 '공공복리에 의한 사업 변경'은 객관적이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어야 인정되며, 예산 확보 실패와 같은 내부 사정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창원지방법원(2023가단129784)은 건설업체 A사가 창원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창원시)는 원고에게 4,600여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관급 공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예산 핑계' 계약 해지에 대해 법원이 시공사의 손를 들어주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계약 한 달 만에 "공사 멈춰라"… 예산 없다고 시공사 내쫓은 지자체
사건의 발단은 2022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A사는 2022년 2월, 창원시가 발주한 'B시장 및 수산시장 오염원 저감시설 설치공사' 입찰에 참가해 낙찰자로 선정됐다. 이후 A사는 2022년 3월 21일, 1차분 계약금액 약 2억 6천만 원, 총 공사 부기금액 약 17억 원 규모의 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다음 날 바로 착공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계약 체결 불과 한 달 만인 2022년 4월 21일, 창원시는 돌연 A사에 공사 일시 정지를 통보했다. 이유는 '예산 일괄 확보 불가에 따른 사업 지연'이었다. 시공사인 A사는 언제 공사가 재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장 대리인을 유지하고 자재를 관리하며 대기해야 했다.
희망 고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7개월 뒤인 2022년 11월, 창원시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한 시 재정 건전성 강화 정책에 따라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며 계약 해지 의사를 밝혀왔다. 이어 12월 1일, 시는 공사계약 일반조건 제45조(사정변경에 의한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를 근거로 계약을 최종 해지 통보했다. '공공복리'를 위해 사업을 취소하니 계약을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재정 건전성이 공공복리?" vs "일방적 갑질"… 법정에 선 예산 문제
재판의 핵심 쟁점은 창원시의 계약 해지가 적법했는지 여부였다. 창원시는 재정 건전성 확보와 공익사업의 효율적 수행이라는 '공공복리'를 위해 부득이하게 계약을 해지했으므로, 관련 규정에 따라 적법한 해지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시공사에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A사는 예산 부족은 창원시의 내부적인 사정에 불과하며, 이를 '공공복리에 의한 사업 변경'으로 포장하여 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또한 계약 해지는 사실상 이행 거절에 해당하므로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하며, 공사 중지 기간 동안 지출된 현장 관리 비용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A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 해지는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 변경이 있고, 해지권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여야 한다"고 전제했다.
법원 "예산 부족은 예측 가능했던 일… 지자체 책임 명백"
재판부는 창원시가 주장한 예산 문제는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선행 작업 공사에 14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어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은 계약 체결 무렵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설령 예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는 사업 추진 전 현장 여건 검토가 부족했기 때문이므로 창원시의 책임 있는 사유"라고 판시했다.
즉, 지자체의 준비 부족과 예산 예측 실패는 '객관적으로 명백한 불가피한 사정'이 아니므로, 이를 근거로 한 계약 해지 통보는 부적법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창원시의 해지 통보를 계약 이행 거절 의사표시로 간주하고, 이에 따른 채무불이행 책임을 인정했다.
"기다린 비용도, 날아간 이익도 모두 배상하라"
법원은 창원시가 물어줘야 할 손해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했다. 우선 공사가 정지된 약 8개월간 A사가 현장 대리인에게 지급한 급여 등 약 2,700만 원에 대해 "공사 정지는 예산 확보 불가를 이유로 한 피고의 귀책이므로, 원고가 지출한 비용을 보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계약 해지로 인한 손해배상 역시 인정됐다. 법원은 전자수입인지대, 계약보증수수료 등 A사가 계약 체결을 믿고 지출한 비용 33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했다. 나아가 시공사가 얻을 수 있었던 '이익'에 대해서도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전체 공사 금액(17억 원)이 아닌 실제 체결된 1차분 계약 금액(2억 6천만 원)을 기준으로, 예상 순이익의 80%인 약 1,600만 원을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실제로 시공했을 경우 공사비가 증액될 가능성도 있고, 공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각종 비용 부담을 면하게 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법원은 창원시가 A사에게 공사 정지 비용과 손해배상액을 합친 총 46,823,145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한 행정청의 자의적인 계약 해지 관행에 제동을 걸고, 시공사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