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담을 상자조차 없다" 중동 전쟁 나비효과에 벼랑 끝 내몰린 화훼농가
"꽃 담을 상자조차 없다" 중동 전쟁 나비효과에 벼랑 끝 내몰린 화훼농가
봄철 대목 맞은 화훼농가
비닐·비료 등 농자재 수급난으로 '생존 위기'
꽃값 도미노 인상 예고

중동 전쟁 여파로 플라스틱 꽃 상자와 포트, 비료 수급이 막히며 국내 화훼농가가 자재난을 겪고 있다. /셔터스톡
중동 지역의 전쟁 여파로 국내 화훼농가가 꽃을 담을 플라스틱 상자조차 구하지 못해 생존 기로에 섰다. 1년 중 가장 바쁜 봄철 대목을 맞았지만, 농자재 수급이 턱없이 부족해 현장에서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2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박태석 과천 화훼협회 회장은 현재 화훼농가가 겪고 있는 심각한 자재난을 토로했다.
박태석 회장에 따르면, 3월부터 5월은 겨울 농사를 출하하고 여름·가을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가장 바쁜 시기다. 그러나 꽃을 담아 팔아야 할 검은색 사각 상자와 다음 꽃을 심을 포트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박 회장은 "꽃 상자는 나프타로 만드는 비닐 화학제품인데 보급이 안 되고 있다"며 "심을 포트가 없어 여기저기 주워 쓰고 돌려쓰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가격 인상보다 더 큰 문제는 물량 자체가 조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가격이 오르는 건 둘째 문제고, 공급이 안 되는 게 첫째 문제"라며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비료 넉넉하다"는 탁상행정, 현장 농협 창고는 텅 비었다
과천 지역은 신도시 개발 등의 여파로 화훼 농가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구심점이 약해지다 보니, 협회가 나서서 농자재를 미리 확보해 두는 공동 대응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농가들은 농협만 믿고 있다가 뒤늦게 "주문을 안 받는다", "주문한 지 두 달이 됐는데 안 들어온다"는 통보를 받으며 발만 구르고 있다.
비료 수급 문제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박 회장은 "주로 쓰는 복합 비료나 요소 비료는 농협에 아예 없고 주문도 안 받는다"고 호소했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용도로 쓰이는 비료를 가져다 쓰면서, 결국 다른 비료들까지 연쇄 품귀 현상을 빚는 악순환이 연출되고 있다.
특히 현장의 체감 온도는 정부 발표와 크게 달랐다. 정부는 오는 7월까지 비료 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박 회장은 "이론적으로 맞는지 모르겠으나 실제 현장이나 농협에 가서 찾아보면 없다"며 "행정적으로 충분하다는 얘기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산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무너지는 사계절 재배 시스템… 씁쓸한 '꽃값 도미노 인상' 예고
당장 다가오는 어버이날 카네이션 물량은 이미 생산이 완료되어 공급 자체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화훼업계는 봄 출하와 동시에 여름을 준비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데, 자재난으로 인해 이 생산 시스템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재 가격 폭등에 따른 꽃값 인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회장은 비닐 제품 등 전반적인 자재비가 오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 나가는 것부터는 우리 꽃값도 무조건 인상이 돼야 한다. 우리들은 흙 파먹고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평범한 농가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나비효과로 이어지면서, 탁상행정이 아닌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