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미국에서 작성한 혼전계약서 '프리넙', 한국 법원에선 '종이조각' 될 수도
결혼 전 미국에서 작성한 혼전계약서 '프리넙', 한국 법원에선 '종이조각' 될 수도
미국선 재산 지키는 '철벽 방패' 프리넙
변호사들 "법원 직권 판단이 우선, 계약서는 참고자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부모님이 사주신 아파트와 주식은 이혼해도 절대 나눌 수 없다."
미국에서 흔한 혼전계약서(Prenuptial agreement, 프리넙)만 믿었다가 이혼 과정에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활용했을 만큼 재산 방어의 핵심 수단으로 꼽히지만, 한국 법원에서는 법적 구속력을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0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 등장한 사연이다. 초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간 A씨는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져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했다. 결혼 전, 미국에서는 보편적인 절차인 혼전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의 핵심은 "부모님이 결혼 전 사주신 서울의 아파트와 주식은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었고, 아내 역시 이에 동의하고 서명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성격 차이로 이혼을 결심하자 아내의 태도가 돌변했다. 아내는 "한국에서는 그 계약서가 아무 효력 없는 종이조각일 뿐"이라며 A씨 명의의 아파트와 주식까지 모두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법원 직권 판단 우선…계약서 효력은 '제한적'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김나희 변호사는 안타깝지만 한국에서 혼전계약서는 미국처럼 폭넓게 인정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김나희 변호사는 "현행법상 혼전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강제력을 담보할 수 없는 계약"이라며 "우리 민법에 관련 규정이 있지만, 재판상 이혼 시에는 법원이 직권으로 재량에 따라 재산분할을 하기 때문에 혼전계약이 거의 사문화됐다"고 설명했다.
즉, 부부가 협의이혼을 통해 계약서 내용을 따르기로 합의하면 문제가 없지만, 한쪽이 이를 거부하고 소송으로 가면 법원의 판단이 우선한다는 의미다.
다만 계약서가 완전히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다. 김 변호사는 "법원이 재산분할 비율을 정할 때 중요한 참고자료로는 충분히 활용된다"고 밝혔다. 실제 2023년 한 이혼 소송에서 법원은 재산분할 비율을 정하며 "당사자들이 혼전계약서에서 해당 보증금이 원고 소유임을 명시했다"고 판결문에 명시하기도 했다.
'특유재산'이라도 배우자 기여했다면 분할 대상
A씨의 아파트와 주식은 부모님이 결혼 전에 마련해준 '특유재산(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이나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에 해당한다. 원칙적으로 특유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수가 있다. 아내가 해당 재산의 유지나 가치 상승에 기여했다는 점을 입증할 경우다. 대법원 판례는 "특유재산이라도 배우자가 그 재산을 관리하거나 유지하는 데에 기여했다면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대법원 97므1486 판결 등)고 본다.
김 변호사는 "아내가 아파트나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도움을 줬다면 법원이 일부 분할 대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재산 형성 기여도는 A씨가 월등히 높기 때문에, 재산의 일부만 분할 대상이 되거나 아예 제외될 가능성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