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ㄱ, ㅅㅂ 구합니다"... 모집 글만 써도 주범과 똑같이 처벌받는다
"ㄱㄱ, ㅅㅂ 구합니다"... 모집 글만 써도 주범과 똑같이 처벌받는다
23억 챙긴 보험사기단, 은어로 2030 유혹
광고만 올려도 징역 10년 '철퇴'

SNS 등을 이용한 공모자 모집 사례. /금융감독원
"오늘 당장 ㄱㄱ, ㅅㅂ 가능하신 분 구해요."
마치 게임 파티원을 구하는 듯한 이 문구. 경제적으로 취약한 20~30대 청년들을 전과자로 만드는 치명적인 덫이었다. 여기서 'ㄱㄱ'은 공격(가해자), 'ㅅㅂ'은 수비(피해자)를 뜻하는 보험사기 은어다.
최근 이 같은 은어를 사용해 조직적으로 고의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금을 타낸 일당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서울경찰청과 금융감독원은 약 4년간 348회의 고의 사고로 23억 8000만 원을 챙긴 혐의로 4명을 구속하고 182명을 검찰에 넘겼다.
특히 이번 사건은 "나는 사고 안 냈고, 그냥 글만 올렸는데?"라는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개정으로 처벌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글만 올렸는데요?"...징역 10년
이번 사건의 총책들은 인터넷 카페나 SNS에 광고 글을 올리는 '모집책'을 따로 두었다. 만약 이 모집책이 붙잡혀서 "나는 실제 사고에는 가담하지 않았고, 알바 개념으로 글만 올렸다"고 주장한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어림없는 소리다. 단순히 모집 글을 올리는 행위만으로도 실제 보험사기를 저지른 것과 똑같은 처벌을 받는다. 2023년 8월 개정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때문이다.
이 법 제5조의2는 보험사기 행위를 알선, 유인, 권유 또는 광고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이는 실제로 차를 들이받아 보험금을 타낸 주범과 동일한 법정형이다.
심지어 상습범으로 인정되면 형량의 2분의 1까지 가중되어 최대 징역 15년까지 선고받을 수 있으며, 미수범도 처벌 대상이다. SNS에 "쉽게 돈 벌 사람"이라는 글을 올리는 순간, 이미 중범죄자가 되는 셈이다.
은밀한 초성 놀이, 법정에선 자백이나 다름없다
이들은 텔레그램 등을 통해 은밀하게 소통하며 'ㄷㅋ(뒤쿵·후미 추돌)', 'ㅂㅎ(보험)' 같은 은어를 사용했다. 이들이 "그저 인터넷 은어였을 뿐, 범죄를 공모한 건 아니다"라고 발뺌하면 어떨까.
법적으로 사기죄의 고의성(범의)을 입증하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다.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재력이나 환경, 범행 내용 등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어 사용 자체가 범죄 의도를 입증하는 강력한 '간접사실'이 된다. 'ㄱㄱ(공격)', 'ㅅㅂ(수비)'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교통사고에서는 절대 쓰이지 않는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미리 나누고, 고의로 사고를 내겠다는 명확한 의사소통 증거가 된다.
여기에 ▲텔레그램을 통한 은밀한 접근 ▲신분증 요구 등 개인정보 확보 ▲진로 변경 차량을 골라 들이받으라는 구체적 지시 등이 더해지면, 법원은 이를 '묵시적 공모'로 인정한다.
대법원 판례 역시 전체적인 모의 과정이 없더라도, 여러 사람 사이에 순차적·암묵적으로 의사의 결합이 있으면 공모 관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다. 즉, 은어를 섞어가며 "보험사가 다 알아서 한다"고 꼬드긴 대화 내역은 그 자체로 유죄의 '스모킹 건'이 되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이번 사건의 총책들은 전직 보험사 직원이거나 조직폭력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 제도의 허점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2030 청년들을 '고수익 알바'라는 미끼로 범죄 소모품으로 이용한 것이다.
경찰과 금감원은 "보험사기 모집은 민생 침해 범죄"라며 엄정 대응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