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여성신문사' 항소심 최종변론 긴장감 '팽팽'
'탁현민-여성신문사' 항소심 최종변론 긴장감 '팽팽'
여성관, 젠더 의식 '십자포화'로 비판받았던 탁현민
기사 제목만으로 명예훼손? 인과관계 "있다 vs. 없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 저작권자 (C) 연합뉴스
“재판장님, 이 증거에 나타난 것과 같이 인터넷 상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원고(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를 마치 여중생 강간범인 것처럼 적시하며 비난했습니다. 이는 피고(여성신문사)가 게시한 글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증거입니다. 다음은...”
“잠깐, 조금 전에 나온 저 증거를 자세히 봐 주십시오!”
갑자기 여성신문사 공동대리인단 중 한 명이 재판부를 향해 손을 들었다.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회장이다.
“보시는 바대로 탁현민을 ‘강간범, 윤간범’이라고 비난한 트위터 게시 시점이 여성신문 기사가 나가기 전인 6월입니다.” 여성신문이 내보낸 기고글과 탁현민의 명예훼손 사이에 선후관계가 반대이므로 인과관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당황한 기색의 탁현민 측 소송대리인은 “반박은 나중에 해 주십시오”라며 발언을 이어가려 했지만, 재판장은 “다시 한번 봅시다”라며 화면을 돌리도록 지시했다.
2017년 6월 청와대 선임행정관으로 정식 임명된 탁씨는 임명이 내정된 때부터 거센 논란에 휘말렸다. 그가 과거에 저술한 책 ‘남자 마음 설명서’나 공저자로 참여한 대담집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 나타난 그의 여성관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여성계뿐 아니라 일부 여당 의원들도 탁씨 임명을 우려했다. 선임행정관은 2급에 해당하는 고위공무원인데, 자질이 미달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제기된 것이다.
그가 과거 책에 쓴 내용 중에는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남자 입장에서 테러를 당하는 기분”이라거나 “남자들이 (성적으로) 가장 열광하는 대상은 선생님들... 학창 시절 임신한 선생님들도 섹시했다”는 말 등이 있다. 이런 발언은 여성뿐 아니라 같은 남성에게도 모욕감을 줬다.
그가 대담집에서 밝힌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성 경험 이야기도 비난받았다. 그는 “걔(성관계 상대방)가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였거든.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였나? 엄밀하게 말하면 나는 첫 경험이었고 그녀는 경험이 많았지”라고 했다. 이 말에 다른 대담자가 “그럼 그녀 역시 친구들과 공유했던 여자?”라고 묻자 탁씨는 “응, 걘 정말 쿨한 애야”라고 답한 뒤 그녀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중3이라고 이야기했다.
후에 탁씨는 “그 내용은 픽션”이라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다른 여러 책에 드러난 같은 맥락의 발언들 때문인지 “과연 픽션이 맞는 걸까”라는 의구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 2017년 6월 22일 블로그 뉴스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는 “그 중3 여학생은 그때 정말 ‘쿨’했을까”라는 기고가 실린다. 한승혜 자유기고가는 이 글을 통해 “탁현민 논란 때문에 내가 알던 많은 성폭행 피해 여중생들이 떠올랐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탁씨가 그들을 “쿨하다”고 표현한 것에 강한 유감을 내비쳤다.
얼마 뒤에 여성신문사에서 ‘제제 밍(Zeze Ming)’이라는 필명의 기고가가 쓴 글이 나왔다. 성폭행 피해자인 그 기고가는 탁현민 논란에서 떠올린 자신의 경험을 담아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탁씨는 이 글을 게재한 여성신문사를 상대로 3000만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민사86단독 김상근 판사는 “여성신문사는 탁현민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하며 “탁현민이 책에서 언급한 성 경험이 꾸민 이야기라는 점을 이미 수차례 밝혔는데, 일반 독자가 ‘그 해명은 거짓’이라는 인상을 받도록 (여성신문이)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판단했다.

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별관 312호 법정에서 탁현민-여성신문사 최종변론이 이뤄졌다. / 사진 김주미 기자
항소심 최종변론기일인 5일. 1심에서 승리했던 탁현민 측 소송대리인들이 먼저 변론했다. 이들은 “탁씨는 폭넓은 언론 보도의 대상이 될 ‘공적 인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여성신문의 악의적 보도는 언론의 자유로 보호받아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탁현민에 성폭행 당한 여중생의 글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낚시성 제목 때문에, 여성신문은 당시 조선일보 등 여러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며 해당 기사들을 증거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탁씨 측은 "독자 대부분이 언론기사를 접할 때 기사 제목만 보고 구체적 내용을 잘 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사 제목으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순한 비유적이고 압축적 표현의 한계를 벗어난 악의적 보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트위터에는 기사 제목과 함께 ‘너무나 아픈 상처라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제 스스로도 애써 잊고 살려 했지만... 이렇게 털어놓아 봅니다’라고 써놓아 그 게시글 자체로 탁현민에게 피해를 입은 여중생인 것처럼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탁씨의 소송대리인들은 “탁씨의 변론을 맡은 저조차도 이 게시물을 보고 ‘탁씨의 해명이 거짓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성신문은 지난 2017년 7월 필명 '제제 밍(Zeze Ming)'이 쓴 칼럼을 자사 트위터에 공개했다. 당시에 올라와있던 게시글. 지금은 지워졌다. / 트위터 화면 캡처
여성신문 측 변론은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의 파워포인트(PPT) 발표로 시작됐다. 김 변호사는 쟁점을 두 가지로 압축, 제목만으로 독립된 기사가 될 수 없다는 취지의 선례(2006다60908 등) 제시와 탁씨의 명예는 스스로 실추시켜 놓고 여성신문에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정리했다.
김 변호사가 거론한 판례는 “신문기사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본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단적으로 표시하여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켜 본문을 읽게 하려는 의도로 붙여지는 것”이라며 “신문기사의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제목만을 따로 떼어 본문과 별개로 다루어서는 안 되고, 제목과 본문을 포함한 기사 전체의 취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 변호사는 “기고 글은 기고자가 ‘논란이 된 탁현민의 과거 책 속 여중생과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임을 고백한 성격의 글이라는 걸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과 본문 전체의 취지를 파악하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기고의 제목인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는 “내가 바로 김용균이다”, “내가 바로 소녀상이다”와 같이 보통 언론에서 연대를 호소할 때 많이 쓰는 비유적 표현이자 기고자가 직접 단 제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끝으로 대리인단은 “탁현민의 명예가 여성신문 때문에 훼손됐다는 주장에는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탁씨가 청와대 선임행정관에 임명된 이후부터 문제의 여성신문 칼럼이 나오기 전 두 달여 기간 동안, 탁씨의 여성관과 젠더 관점을 비난한 포털 뉴스 검색 건수만 총 1853개에 이른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여성관이 담긴 책을 발간한 것 때문에 여러 언론과 세간의 비난을 받았던 탁현민이 굳이 여성신문의 기고만을 꼬집어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한 것이 더욱 악의적”이라는 입장이다.

최종 변론을 마친 뒤, 재판을 방청하러 온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김재련 변호사(사진 가운데) / 사진 김주미 기자
재판부는 끝으로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이사의 발언을 들었다. 김 대표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한 어조로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1988년 1000여 명의 국민주주에 의해 창간된 여성신문사는 지난 30년간 어떠한 법적 분쟁에도 휘말리지 않고 신문을 발행해 왔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다”며 “우리는 다른 언론이 대변해주지 않는 성폭행 피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을 주요한 사명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자신의 성폭행 피해 경험을 논란이 된 사회 이슈에 빗대어 용기 있게 고백한 한 여성의 목소리를, 법원이 판결로써 잠재워 버리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면서 “사회에 올바른 여성관을 제시하고 공직자의 젠더의식을 비판·검증하는 게 여성신문사가 지는 언론 책임이자 공익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의 선고는 오는 11월 7일 오후 2시에 있을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