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라 믿었던 무당, 알고보니 나와 잔 그놈이었다…판결문 속 '1인 다역' 범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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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라 믿었던 무당, 알고보니 나와 잔 그놈이었다…판결문 속 '1인 다역' 범죄들

2025. 09. 11 14:45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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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인과 자야 액운 막는다" 속아 돈 뜯기고 성관계까지

알고 보니 범인은 한 명

피해자 속이는 교묘한 1인 다역 수법, 판결문으로 보니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자영업자 A씨에게 '언니'라며 다가온 무속인. 그녀의 말은 달콤했고, 경고는 섬뜩했다. "귀인과 잠자리를 통해 기운을 받아야 복을 얻는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가 5개월 안에 상복을 입을 수 있다."


결국 A씨는 무속인이 소개해준 귀인이라는 40대 남성과 잠자리를 가졌다. 이후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4,260만 원의 제사 비용까지 뜯겼다.


뒤늦게 수상함을 느낀 A씨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무속인은 돈을 숨겨둔 장소를 알려줬다. 그런데 그 장소 주변을 맴도는 귀인의 차를 발견한 순간, A씨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언니'라며 접근한 무속인과, '귀인' 행세를 하며 잠자리를 가진 남성은 모두 동일 인물,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A씨를 무너뜨린 1인 2역 사기극. 놀랍게도 이런 교묘한 수법은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최근 4개월 동안 법원이 내린 판결문을 통해 그 실체를 들여다봤다.


판결문에 나타난 '1인 다역' 범죄의 민낯

범죄자들은 왜 혼자서 여러 명의 역할을 연기하는 걸까.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피해자의 경계심을 허물고, 여러 개의 역할을 이용해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범행을 손쉽게 하려는 목적이다.


① '환불 전문가' 행세하며 2200만원 편취

수원지방법원의 한 판결서는 1인 다역 수법이 어떻게 돈을 노리는지 잘 보여준다. 게임 계정 거래 중 13만 5천원의 결제 오류가 발생하자,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환불을 도와주겠다며 접근했다.


그는 "손해 없이 환불받으려면 더 큰 금액을 입금해 페이백을 받아야 한다"는 거짓말로 피해자를 속여 18회에 걸쳐 약 2,200만 원을 뜯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다른 사람의 명의를 이용하여 1인 다역을 하면서 결제된 돈의 반환을 빌미로 기망하였는바, 범행 수법이 매우 계획적이고 교묘하다"고 지적하며 동종 사기 전과가 여러 차례 있는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2025고단1743 판결).


② '가짜 부장님' 내세워 1600만원 차량 편취

수원지방법원의 한 사기 사건 판결문에서 피고인 A씨는 존재하지도 않는 'B부장'을 내세워 1인 2역 연기를 펼쳤다. A씨는 스스로 B부장인 척하며 피해자에게 접근해 1,600만 원 상당의 승용차를 받아 가로챘다.


법원은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하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2025노1451 판결). 심지어 A씨는 이미 동종 사기 범죄로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③ '가짜 친구' 행세하며 강제추행·강도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문은 더 대담한 수법을 보여준다. 피고인은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해 가상의 인물을 만든 뒤,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호감을 샀다. 그리고 만남을 약속한 뒤 "친구가 먼저 나가 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그 '친구'인 척 1인 2역을 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피해자들을 만나 술을 마시다 강제로 추행하고, 휴대전화와 카드까지 빼앗거나 훔쳤다. 심지어 수사받는 중에도 같은 수법으로 또 다른 범행을 저질렀다. 법원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2025노38 판결).


④ '가짜 친구 4명' 만들어 미성년자 성착취

1인 다역 범죄는 잔혹한 성착취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의 한 판결문은 그 끔찍한 현실을 담고 있다. 피고인은 4년간 교제하다 헤어진 10대 피해자를 통제하기 위해, 무려 4개의 가짜 SNS 계정을 만들었다.


그는 이 가짜 친구들을 동원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고, "과거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성관계를 강요했다.


피고인의 범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2년 가까이 총 911회에 걸쳐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했다. 법원은 "성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못한 미성년자를 상대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질타하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2024고합597 판결).


무속인 사기 사건부터 성착취까지, 판결문 속 범죄자들은 가면을 바꿔쓰며 피해자들의 삶에 파고들었다. 온라인에서 누구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시대. 나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얼굴 뒤에, 단 한 명의 범죄자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참고]

수원지방법원 2025고단1743 판결문 (2025. 5. 29. 선고)

수원지방법원 제7형사부 2025노1451 판결문 (2025. 6. 12. 선고)

서울고등법원 제4-3형사부 2025노38 판결문 (2025. 4. 16. 선고)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제1형사부 2024고합597 판결문 (2025. 5. 14.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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