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판사도 알기 어려운 행정처분 불복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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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판사도 알기 어려운 행정처분 불복 재판

2022. 09. 19 11:01 작성
정형근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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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KBS)는 한국전력공사에 TV수신료의 징수업무를 위탁하였다. 한국전력공사는 TV수상기를 소지하고 있던 원고들에게 수신료를 부과하는 통지서를 보냈다. 그러자 원고들은 한국전력공사가 전기요금고지서에 수신료를 통합하여 고지·징수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였고, 변호사는 "한국전력공사가 원고들에 대하여 전기요금고지서에 방송수신료를 통합하여 고지, 징수한 권한이 없음을 확인한다."는 재판을 민사소송으로 청구했다.


이 사건의 1심 재판을 하였던 인천지방법원은 원고들의 청구가 이유가 없다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원고들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하였다. 2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역시 원고들에게 패소판결을 했다. 방송법은 KBS가 한국전력공사에 수신료 징수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그에 따라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요금고지서에 수신료를 통합하여 징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고들은 이 판결에도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대법원 2008. 7. 24. 선고 2007다25261 판결 [방송수신료통합징수권한부존재확인]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제1심판결을 취소한다.

사건을 서울행정법원으로 이송한다.


【이 유】

직권으로 판단한다.

텔레비전방송수신료(이하 '수신료'라 한다)는 공영방송사업이라는 특정한 공익사업의 경비조달에 충당하기 위하여 텔레비전수상기를 소지한 특정 집단에 대하여 부과되는 특별부담금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 1999. 5. 27. 선고 98헌바70 결정, 헌법재판소 2008. 2. 28. 선고 2006헌바70 결정 등 참조). 한편, 피고 보조참가인은 자신이 지정하는 자에게 수신료의 징수업무를 위탁할 수 있고( 방송법 제67조 제2항), 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43조 제2항).


원고들은, 피고가 원고들에 대하여 전기요금고지서에 수신료를 통합하여 고지·징수할 권한이 없음의 확인을 민사소송절차를 통하여 구하고 있다.


그러나 수신료의 법적 성격, 피고 보조참가인의 수신료 강제징수권의 내용[ 구 방송법(2008. 2. 29. 법률 제886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6조 제3항] 등에 비추어 보면 수신료 부과행위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므로, 피고가 피고 보조참가인으로부터 수신료의 징수업무를 위탁받아 자신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수신료를 징수할 권한이 있는지 여부를 다투는 이 사건 쟁송은 민사소송이 아니라 공법상의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서 행정소송법 제3조 제2호에 규정된 당사자소송에 의하여야 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소가 사법상 법률관계에 관한 민사소송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본안에 들어가 판단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고 말았으니, 원심의 이와 같은 판단에는 행정처분 또는 공법상 당사자소송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전속관할에 관한 규정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


한편, 행정소송법 제7조는 원고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행정소송이 심급을 달리하는 법원에 잘못 제기된 경우에 민사소송법 제34조 제1항을 적용하여 이를 관할 법원에 이송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관할 위반의 소를 부적법하다고 하여 각하하는 것보다 관할 법원에 이송하는 것이 당사자의 권리구제나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므로, 원고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없이 행정소송으로 제기하여야 할 사건을 민사소송으로 잘못 제기한 경우, 수소법원으로서는 그 행정소송에 대한 관할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면 당해 소송이 이미 행정소송으로서의 전심절차 및 제소기간을 도과하였거나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 등이 존재하지도 아니한 상태에 있는 등 행정소송으로서의 소송요건을 결하고 있음이 명백하여 행정소송으로 제기되었더라도 어차피 부적법하게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이를 부적법한 소라고 하여 각하할 것이 아니라 관할 법원에 이송하여야 한다 ( 대법원 1997. 5. 30. 선고 95다28960 판결 등 참조).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직권으로 제1심판결을 취소하여 사건을 관할 법원으로 이송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원 판결은 한국전력공사가 수신료를 부과하였던 행위는 행정청의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므로, 이를 다투는 쟁송은 민사소송이 아니라 공법상의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하는 행정소송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이제까지 재판한 것은 허사가 되고, 다시 서울행정법원에서 1심 재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판결을 받은 원고들은 정말로 황당했을 것이다. 이 사건처럼 지방법원부터 고등법원까지 민사사건으로 알고서 재판을 하였는데, 대법원에 이르러서 행정사건이라고 1심부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한 경우가 적지 않다.


헌법상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국가는 효과적인 권리보호를 위한 제도를 정비하고 운영해야 한다. 단지 국민이 소장을 접수하여 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법원에 재판을 청구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법이 어렵다면, 재판청구권이 충분히 보장되었다고 할 수 없다.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도 민사소송 사건인 줄 알고서 민사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고, 상당한 경륜 있는 고등법원 판사들까지도 민사소송으로 알고 재판을 하였는데, 대법원에 가서야 하급심 재판이 잘못되었다는 판결이 나오는 현상은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사건당사자가 불필요한 변호사 수임료를 다시 부담하고 새로운 재판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법은 원래 어려운 거니까 어쩔 수 없다고 방치해서는 안 될 문제다.


어떤 행정처분에 대해서는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기 전에 행정심판이나 소청심사청구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한다. 필수적 행정심판전치주의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을 예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도로교통법 제142조(행정소송과의 관계) 이 법에 따른 처분으로서 해당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행정심판의 재결(裁決)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변호사법 제100조(징계 결정에 대한 불복) ① 변협징계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는 징계혐의자 및 징계개시 신청인은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법무부징계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② 법무부징계위원회는 제1항에 따른 이의신청이 이유 있다고 인정하면 변협징계위원회의 징계 결정을 취소하고 스스로 징계 결정을 하여야 하며, 이의신청이 이유 없다고 인정하면 기각하여야 한다. 이 경우 징계심의의 절차에 관하여는 제98조의2를 준용한다.

③ 제2항의 결정은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④ 법무부징계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하는 징계혐의자는 「행정소송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90일 이내에 행정법원에 소(訴)를 제기할 수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16조(행정소송과의 관계) ① 제75조에 따른 처분,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한 불리한 처분이나 부작위(不作爲)에 관한 행정소송은 소청심사위원회의 심사·결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교육공무원법 제53조(「국가공무원법」과의 관계) ① 「국가공무원법」 제16조제1항을 교육공무원(공립대학에 근무하는 교육공무원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인 교원에게 적용할 때 같은 항의 "소청심사위원회"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로 본다.


지방공무원법 제20조의2(행정소송과의 관계) 제67조에 따른 처분,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한 불리한 처분이나 부작위에 관한 행정소송은 심사위원회의 심사·결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전문개정 2008. 12. 31.]


군무원인사법 제35조의2(행정소송과의 관계) 휴직·직위해제·강임·면직·징계, 그 밖에 군무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불리한 처분에 관한 행정소송은 제35조에 따른 군무원인사소청심사위원회 또는 제43조에 따른 군무원항고심사위원회의 심사·결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군인사법 제51조의2(행정소송과의 관계) 전역 또는 제적과 징계 및 휴직, 그 밖에 본인의 의사에 반한 불리한 처분에 관한 행정소송은 소청심사위원회나 제60조의2에 따른 항고심사위원회의 심사·결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국세기본법 제56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② 제55조에 규정된 위법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행정소송법」 제18조제1항 본문, 제2항 및 제3항에도 불구하고 이 법에 따른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와 그에 대한 결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에 대한 제65조제1항제3호 단서(제81조에서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재조사 결정에 따른 처분청의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지방세기본법 제98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③ 제89조에 규정된 위법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행정소송법」 제18조제1항 본문, 같은 조 제2항 및 제3항에도 불구하고 이 법에 따른 심판청구와 그에 대한 결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심판청구에 대한 재조사 결정(제100조에 따라 심판청구에 관하여 준용하는 「국세기본법」 제65조제1항제3호 단서에 따른 재조사 결정을 말한다)에 따른 처분청의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신설 2019. 12. 31.>


관세법 제120조(「행정소송법」 등과의 관계) ② 제119조에 따른 위법한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행정소송법」 제18조제1항 본문, 제2항 및 제3항에도 불구하고 이 법에 따른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와 그에 대한 결정을 거치지 아니하면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심사청구 또는 심판청구에 대한 제128조제1항제3호 후단(제131조에서 「국세기본법」을 준용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재조사 결정에 따른 처분청의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법률에서 정해놓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불리한 판결을 받는다. 그런데 법률전문가들도 어떤 사건이 행정심판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수많은 법률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손쉽게 알 수도 없다. 따라서 어떤 행정처분이 반드시 행정심판을 거쳐야 할 것인지를 특정한 법률에 한군데 모아서 명확하게 규정해 둘 필요가 있다. 행정처분을 하는 행정기관도 그런 처분을 당한 사람이 불복할 때는 어느 법원에 어떤 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고 소상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현행 행정심판법은 행정처분에 불복할 때는 행정심판 청구기간을 고지하도록 한다. 이 법 규정과 달리 대부분 행정소송 제기기간도 함께 고지해 준다. 이처럼 불복기간을 고지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행정행위가 불복의 대상인지, 그 대상이라면 어느 법원에 제소하여야 하는지까지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은 행정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또는 행정심판으로 불복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법원에 재판청구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진정한 법치주의는 국가의 행위에 대하여 자유롭고 손쉽게 불복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변호사도, 법원의 판사들도 잘 알지 못하는 제도를 관행처럼 운용해 갈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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