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학폭 가해자, 유명 연예인 되어 돌아왔다…피해자의 법적 대응은
10년 전 학폭 가해자, 유명 연예인 되어 돌아왔다…피해자의 법적 대응은
소송과 합의, 최선의 전략은?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TV 속 유명 가수가 10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학교 폭력 가해자였다. 7년 만에 걸려온 그의 전화 한 통에 피해자 A씨는 잊고 살았던 지옥 같은 기억이 되살아났고, 법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A씨는 과거의 고통이 재발해 정신과 상담까지 받게 됐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2011년부터 약 4년간 이어진 태권도 학원 선배의 상습적인 가혹 행위. 세월이 흘러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살던 어느 날,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A씨의 삶을 다시 흔들었다.
TV에서 웃고 있던 바로 그 가해자였다. 그는 대뜸 "내가 많이 힘들게 했니?"라고 물었고, A씨가 당시의 폭력을 따져 묻자 일부만 인정할 뿐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이 통화는 잊었던 트라우마를 깨우는 방아쇠가 됐다.
10년의 벽…'소멸시효'라는 거대한 장벽
가장 큰 걸림돌은 '소멸시효'다.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 안에 행사해야 한다. 2015년에 가혹행위가 끝났다고 보면 10년의 시효가 거의 완성됐거나 이미 지났을 가능성이 크다.
법무법인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가 끝난 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났다면 소송 제기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적으로는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셈이다.
가해자가 스스로 연 판도라의 상자…'새로운 불법행위'의 탄생
하지만 가해자의 전화 한 통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셈이다. 바로 이 통화가 소멸시효를 새로 계산하게 만드는 두 가지 법적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가해자의 연락 자체가 '새로운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최근 가해자의 연락으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면, 바로 그 시점이 '객관적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이라며 "이때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새롭게 시작된다고 주장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폭력이 아닌, 현재의 정신적 고통을 유발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둘째, 가해자가 문자로 일부 가해 사실을 인정한 것은 '채무 승인(자신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는 행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는 기존의 소멸시효 진행을 중단시키고, 그때부터 다시 시효가 계산되게 만드는 강력한 법적 장치다.
즉, 가해자의 어설픈 사과나 인정이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법적 증거가 된 셈이다. 법무법인 명륜 오지영 변호사 역시 "미성년 시절 당한 학폭은 성년이 된 후부터 시효가 진행된다는 판례도 있어 아직 기회가 있다"고 덧붙여 법적 다툼의 여지가 충분함을 시사했다.
'연예인'이라는 양날의 검…소송보다 강력한 '합의' 카드
법리 다툼의 길이 열렸지만, 소송은 여전히 패소 위험이 큰 싸움이다. 변호사들이 '소송 전 합의'를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유다. 특히 가해자가 대중의 평판에 민감한 '연예인'이라는 신분은 피해자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변호사 서아람 법률사무소의 서아람 변호사는 "가해자 측에서 사실 공개를 막기 위해 기밀유지 조건으로 사과와 합의금을 제시하며 원만히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법정 다툼의 실익보다 사회적 평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변호사들은 이 과정에서 반드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가 직접 합의를 시도하면 자칫 공갈이나 협박 혐의로 역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