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못하세요? 그럼 안돼요" 장애인 대출 거부한 은행원, 그러다 월급 뱉어내야 할 수도
"서명 못하세요? 그럼 안돼요" 장애인 대출 거부한 은행원, 그러다 월급 뱉어내야 할 수도
금융 당국도, 은행 내부 지침도 "자필 서명 못 한다고 대출 거부 말라"는데
계속되는 은행원들의 장애인 대출 거부, 그 배경을 살펴봤다

자기 힘으로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출을 거부당한 장애인 A씨. 취재 결과 금융 당국도, 은행 지침에도 "그래선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뇌병변 1급' 장애인 A씨, 마비 증상으로 다리 일부분밖에 움직일 수 없지만, 지적·인지적 능력은 비장애인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은행에선 차별을 받았다. 자기 힘으로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은행 대출 심사 담당자는 "A씨가 팔을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접수조차 받지 않았다. 그러면서 A씨의 활동 보조인에게 "대출을 받으려면 후견인제도를 활용하라"고 안내했다. A씨는 "차별대우"라고 항의했지만, 은행 측은 끝까지 심사를 거부했다.
이 같은 대출 심사 담당자의 판단에는 문제가 없을까. 로톡뉴스가 알아봤다.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장애인들을 거부하는 은행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은 "그래선 안 된다"는 매우 일관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8년 이 부분을 명확히 정리했다. 신용카드 발급과 통장 개설 등 '자필 서명'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녹취나 화상통화 등을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무작정 거절하지 말고 가능한 대안을 찾으라는 취지였다.
은행 내부 지침에도 이런 방침이 반영돼 있다. 로톡뉴스가 확인한 한 시중은행의 '여신·투자금융 업무 방법'(내부 지침)은 "장애인과 대출 상담을 할 때 의사능력에 대한 판단 없이 무조건 후견인제도를 안내하거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출을 거절하지 않도록 유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A씨 사례에서 은행의 행동은 이 규정에 정확히 어긋난다.
심지어 은행 내부 지침에는 '자필 서명'의 예외 사유로 '채무 관계자가 대필자를 지정한 때에는 대필자가 약정서를 공증을 받도록 하고 비용은 당행이 부담한다'는 내용도 있다. 즉, 자필 서명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은행원이 대출을 거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의 태도는 어떨까. 법원은 '자필 서명'만으로 대출을 거부한 사건에서 일관되게 "위법한 행위"라고 판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차별행위) 제17조(금융상품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 위반이다.
관련 사안을 판단한 광주지법은 지난해 "은행은 장애인 고객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018년 서울중앙지법도 "손해배상금 3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광주지법은 당시 판결에서 "(장애인이) 의사능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지체 장애 및 언어장애만을 이유로 의사능력을 함부로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자필 서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대출을 거부한 담당자의 업무처리가 잘못됐다는 말이다.
피해 장애인은 항소심에서 은행의 내부 지침에도 문제가 있다면서 위자료 액수도 문제 삼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담당 직원 업무상 과오로 일어난 일"이라고 최종 판단했다.

은행이 부담해야 할 300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가게 될까. 은행이 눈감아 준다면 모를까, 법적으로 따지게 되면 대출 심사를 거절한 창구 직원이 책임져야 한다. 지침을 위반한 창구 직원의 과실이 크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의 권고, 은행의 업무처리 지침에도 현장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는 "장애인을 무능력하고 불완전한 사람으로 보는 인식 속에서 생겨난 책임회피식 업무관행 때문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예원 변호사는 이어 "회사가 적극적으로 해당 직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징계를 한다면 단시간에 변화는 나타날 것"이라면서도 "제재적 조치를 넘어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