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촬영 피해자 목숨 끊게 만든 악마의 DM "술 한잔하면 출처 알려줄게"
불법 촬영 피해자 목숨 끊게 만든 악마의 DM "술 한잔하면 출처 알려줄게"
"너 영상 조회수 높더라" 불법촬영물 미끼로 연락
법원 "피고인 범행으로 고통 배가되어 극단적 선택"
유족에게 위자료 지급 판결

불법촬영 영상으로 피해자를 협박한 A씨가 민사에서 책임을 인정받아 유족에게 2,000만 원 추가 배상 판결을 받았다. /셔터스톡
2021년 5월 18일 오전 11시. 24살 대학생 B씨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계정으로 온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이었다. 호기심에 열어본 메시지는 B씨의 일상을 단숨에 지옥으로 떨어뜨렸다.
> "너 야동 같은 거 찍힌 적 있나...?"
> "맞다 해도 어디 가서 소문낼 생각 없는데."
상대방은 B씨가 가장 두려워하던 그 영상을 알고 있었다.
불법촬영 가해자는 죽었지만 영상은 살아남았다
2020년 11월, 망인 C씨는 수년 간 여성들과의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해오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피해자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불법촬영물을 인터넷에 유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상은 다크웹과 텔레그램, 음란물 사이트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B씨 역시 이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피고인 A씨는 불법촬영물을 다운로드받아 소지하고 시청하던 중, 유포된 영상 속에서 B씨의 신상을 파악해냈고, 이를 미끼로 B씨에게 접근했다.
악마의 접근 "술 같이 먹어줘, 그럼 출처 알려줄게"
A씨의 접근 방식은 집요하고 교활했다. 그는 B씨의 실명은 물론 소속 대학과 학과까지 정확히 언급하며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과시했다. B씨가 "영상이 유포된 사이트 주소가 어디냐"고 묻자, A씨는 본색을 드러냈다.
> "술 같이 먹어줘. 가르쳐줄게 그럼."
피해자의 절박함을 이용해 사적인 만남을 요구한 것이다. B씨가 이에 응하지 않자 A씨의 태도는 돌변했다.
> "내가 뭔 짓 하겠니. 그거 알았다고."
> "암튼 조심해. 너 영상 조회수 높은 거 같더라."
> "영상은 혼자 볼게."
"영상은 혼자 볼게"라는 말은 B씨에게 '만나주지 않으면,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즐기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피해자가 영상을 지우지도, 신고하지도 못한 채 공포에 떨게 만들려는 전형적인 2차 가해였다.
무너진 삶,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A씨의 범행은 미수에 그쳤지만, B씨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공황장애에 시달렸다.
SNS에 A씨를 원망하며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던 B씨는, 결국 그해 12월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B씨의 나이는 고작 24살이었다.
법원의 심판 "피고인의 범행이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밀었다"
피고인 A씨는 형사재판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 과정에서 유족들에게 8,000만 원을 지급하고 합의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받았다.
하지만 유족들은 민사 소송을 통해 A씨의 책임을 끝까지 물었다. 지난 4월 16일, 수원지방법원 곽동우 판사는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 피고인의 행위가 얼마나 잔혹했는지,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분명히 명시했다.
재판부는 "불법촬영을 당한 망인은 평생 디지털 감옥에 갇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피고인의 범행으로 인해 그 고통의 정도가 더욱 배가되었고, 결국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인정했다.
법원은 A씨가 지급한 형사합의금 8,000만 원은 망인 B씨 본인의 위자료로 인정하고, B씨의 부모와 오빠에게 별도로 총 2,000만 원의 위자료를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