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유흥업소 선불금, 법원은 왜 "갚아라"와 "무효" 엇갈린 판결을 내렸나?
똑같은 유흥업소 선불금, 법원은 왜 "갚아라"와 "무효" 엇갈린 판결을 내렸나?
성매매 증거 없으면 '무효' 주장 안 통해
유사 사건 엇갈린 판결로 본 선불금의 두 얼굴

같은 선불금이라도 불법 입증 여부에 따라 결과는 달라졌다. /셔터스톡
"이 돈은 성매매를 전제로 한 족쇄이니 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유흥업소에 발을 들인 여성들이 거액의 선불금 채무에 묶여 법원에 호소할 때 흔히 내세우는 주장이다. 실제로 법원은 성매매와 명확히 연결된 선불금을 '불법원인급여'로 보고 무효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유흥주점 업주가 빌려준 2300만 원에 대해 "갚아야 할 돈"이라고 판결하며, 모든 선불금이 무효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대체 무엇이 비슷한 사건에서 이토록 다른 결과를 낳았을까.
"콜·튜닝"…성매매 증거 명확하면 '무효'
서귀포시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던 업주 B씨는 여성접대부들을 알선책을 통해 고용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A씨 등 여성들에게 각각 수천만 원의 선불금을 빌려주며 '금전소비대차계약 공정증서'를 받았다. 약속한 돈을 갚지 못하자, B씨는 공정증서를 근거로 강제집행에 나섰다.
이에 A씨 등은 "성매매를 전제로 한 선불금이므로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방진형 판사는 여성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가 불법의 고리를 인정한 결정적 증거들이 있었다.
성매매 은어 사용
A씨가 주점 실장과 나눈 문자 메시지에는 퇴근 시간이 새벽 3~4시로 매우 늦었고, '콜'이나 '튜닝' 등 성매매를 암시하는 은어가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
동료의 결정적 증언
A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는 "손님의 요구가 있을 경우 주변 모텔에서 2차 성매매를 했다"며 "선불금은 여성접대부 일 외의 일(성매매)을 하지 않을 경우 지급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비상식적 계약 조건
25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빌려주면서 변제기는 불과 한 달 뒤로 잡혀있었다. 재판부는 "단순히 여성접대부를 고용하면서 수천만 원을 선불로 지급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선불금을 이용해 성매매를 지속시키고 그 대가로 빚을 공제하려 한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은 이 돈이 성매매와 명백히 관련 있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한다며, 업주 B씨가 이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공정증서에 기초한 강제집행은 불허됐다.
"마이킹? 그것만으론 부족"…성매매 증거 없으면 '유효'
하지만 울산의 한 유흥주점에서 일한 여성 A씨의 사정은 달랐다. 그 역시 업주 B씨에게 2300만 원을 빌리며 공정증서를 작성해주었다. 이후 A씨는 이 돈이 성매매 유인 수단으로 이용된 선불금, 즉 '마이킹'이라며 갚을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두 사람이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해당 대여금을 '마이킹'이라고 칭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울산지방법원 김용한 판사는 A씨의 청구를 기각하며 "돈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운영하는 업소가 유흥주점인 사실, 대여금을 마이킹이라고 칭한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이 대여금이 성매매의 유인·강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결국 이 판결의 핵심은 증거 유무였다. 대구 사건처럼 성매매를 직접적으로 입증할 문자 메시지나 동료의 증언 같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유흥주점에서 '마이킹'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정황만으로는, 그 돈이 불법적인 성매매와 직접 연결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오케잇!!!" 한마디에 발목…법원은 증거로 말한다
법원이 얼마나 증거에 기반해 판단하는지는 유흥업소 손님과의 분쟁에서도 드러난다. 수원지방법원의 한 판결에서, 유흥업소 실장 B씨는 손님 A씨가 외상값 580만 원을 갚지 않자 지급명령을 신청했다. A씨는 금액이 과도하다며 버텼다.
하지만 B씨가 제시한 카카오톡 메시지가 결정적이었다. B씨가 "미수 그럼 총 … 550 이염!"이라고 보내자, A씨가 "오케잇!!!"이라고 답한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A씨가 최소 550만 원의 채무를 인정한 것으로 보고, 해당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결국 유흥업소 선불금이라는 이름표가 자동으로 '무효' 딱지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그 돈이 단순한 대여금이 아니라 성매매라는 불법 행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족쇄였음을 입증할 책임이 돈을 빌린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이번 판결들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같은 선불금을 두고 누군가는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누군가는 고스란히 갚아야 하는 엇갈린 운명은 바로 그 증거에 달려 있었다.
[참고]
수원지방법원 제4-3민사부 2024나84240 판결문 (2025. 8. 28. 선고)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24가단33968 판결문 (2025. 9. 10. 선고)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24가단31511 판결문 (2025. 9. 10.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