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8)] My Life is My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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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58)] My Life is My Message

2022. 11. 07 11:04 작성
정형근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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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의 아픔은 조국 인도에 대한 300년간의 영국 식민 통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간디의 투쟁은 모든 인도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것이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인도여행 3일째, 오후 4시 15분에 간디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간디의 아픔은 조국 인도에 대한 300년간의 영국 식민 통치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간디의 투쟁은 모든 인도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것이었다. 박물관 입구에 "Truth is God."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리가 신이라는 것이다. 간디의 진리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나중에 그의 자서전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를 읽어보니, "진리는 나의 등대요, 나의 작은 방패다. 그 길이 비록 험하고 좁고 면도날같이 날카로울지라도 그것이 내게는 가장 가깝고 가장 쉬운 길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걸 보면 간디는 그의 삶을 진리에 대한 실험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는 진리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진리는 참됨이다. 참되지 않은 것 즉, 불의는 신이 아니다(Unjustice is not God)라고 했다. 박물관 한편의 간디 유품전시관에는 영국은 불의하다는 'Unjustice British'라고 기재한 천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경험한 우리도 동의할 수 있는 선언과 같았다. 그러나 진리가 신이라는 전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잠깐 스쳐 가는 여행객이 무엇이 참되며, 참되지 않은지의 기준이 무엇이며, 그것을 누가 판단할 수 있는지를 간디에게 묻고 논할 여유가 없었다. 실제로 논쟁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2층 전시실에는 간디의 일생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그가 평생 옆에 두고 읽었다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 지팡이, 낡은 샌들, 흰 이불, 치아, 안경, 물레 등의 유품이 있었다. 타고르는 간디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마하트마(Mahatma), 즉 '위대한 영혼'이라고 불렀다. 독립운동가로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그는 위대하였다. 육체와 정신 두 가지를 모두 따르며 살아갈 수 없다는 신념 아래 금욕(브라마차리아)을 행하였다고 한다. 힌두교도답게 육식을 거부하고, 계란과 우유도 먹지 않았다. 그는 과일식을 즐겨 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 카스투르바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의사가 권하는 우유도 마시지 않았다. 아내는 '그런 더러운 음식을 몸속에 넣어 회복되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진리의 실행으로 그는 철저한 봉사의 길을 걸었다. 간디는 변호사로서도 유명하였다. 그는 영국 유학 후 처음 시작한 변호사 시절에는 경험 부족과 수줍은 성격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거짓된 방법을 위하여 사용한 적이 없다고 했다. 공공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변론 활동을 하였다. 그는 의뢰인의 이익만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의뢰인이 정당한 경우에만 이기려고 노력하였다. 진리를 꺾지 않고도 법조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본을 남겼다. 같은 변호사 직업에 종사하고 있던 나에게 간디는 너무나 위대했다. 장례식 장면을 전시하고 있는 곳에는 간디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고 있는 글이 있었다.


My Life is My Message.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가! 너무도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글 앞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조금도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한참 동안 그 글을 묵상하였다. 간디 주변에는 그를 구원에 이르도록 기도하고 권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읽어보기도 하였다. 간디는 소년 시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품게 되는 몇 가지 일을 경험하였다. 기독교 선교사들로부터 힌두교를 비방하는 말을 들었고, 기독교로 개종한 힌두교인이 세례를 받은 후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복장도 양복에 모자를 쓰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역시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어린 간디의 눈에는 기독교 자체가 술과 고기를 먹게 하고, 복장을 바꾸게 하는 등 그 사회의 기존 문화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간디가 이 정도의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그의 자서전 "나의 진리실험 이야기"에서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나로서는 오직 기독교로만 천국에 갈 수 있고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그것을 몇몇 선량한 기독교인들에게 솔직히 말했을 때 그들은 크게 놀랐다. 그렇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의 고민은 더 깊은 데 있었다. 예수만이 오직 하나님의 화신이요, 그를 믿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하나님이 만일 아들을 둘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그의 아들일 것이요, 예수가 만일 하나님과 같거나 혹 하나님 자신이라면,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과 같이 생겼을 것이고 하나님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이성은 예수가 그의 죽음과 피로 세상 죄를 대속했다는 것을 글자 그대로는 믿을 수 없었다. 비유한다면 거기에 어떤 진리가 있을 것이다. 또 기독교에 의하면 오직 사람만이 영혼을 가지고 있을 뿐이요, 다른 생물에는 영혼이 없어서 그것들은 죽으면 완전히 없어져 버리고 만다고 한다. 나는 그와는 반대의 믿음을 갖는다. 나는 예수를 하나의 순교자로, 희생의 화신으로, 거룩한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일찍이 태어났던 인간 중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의 죽음은 세상에 대한 위대한 모범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에 어떤 신비롭고 기적적인 공로가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듣는 것과 꼭 같은 '새로 남'을, 나는 다른 사람들의 생애에서도 보았다. 철학적으로 말한다면 기독교의 원리들은 각별히 독특한 것이 아니다. 희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힌두교가 기독교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 기독교를 완전한 종교, 또는 모든 종교 중 가장 위대한 종교라고는 나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위 내용을 살펴보면, 간디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이유는 특별하지 않다. 흔히 듣게 되는 불신자들의 일반적인 주장과 비슷하다. 우리 헌법상 종교를 가질 것인지, 어느 종교를 선택할 것인지는 자유로운 선택 영역에 속한다. 아무튼 위대한 영혼으로 칭송받는 인도의 영웅이며, 인도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간디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인간적 차원에서 배우고 느껴왔던 마하트마 간디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있는 간디를 새롭게 보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박물관 1층에는 "Violence is Suicide" 라고 적혀 있다. 폭력은 자살행위와 같다는 그의 평화정신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영국에게 비폭력으로 간디는 대항하였다.


간디 박물관 방문을 통하여 인도와 간디가 겪었던 고통, 간디의 인간적인 위대성, 영적인 실존 등을 배우게 되었다. 그가 인도를 사랑하고, 핍박받는 동포를 향한 삶의 자취는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간디는 그의 삶을 통하여 온 인류 앞에 그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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