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영국 판결문 11건 직접 확인⋯영국 '비밀번호 자백법' 한국 적용 어려운 이유
[팩트체크] 영국 판결문 11건 직접 확인⋯영국 '비밀번호 자백법' 한국 적용 어려운 이유
법무부 장관의 '비밀번호 자백법' 제정 검토 논란⋯"헌법에 위배된다"는 거센 비판 이어졌지만
"영국에도 관련 법 있다"며 예시로 든 '수사권한 규제법'⋯과연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영국 사례 11건 확인해봤다⋯설령 도입되더라도 '한동훈 사건'에 적용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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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처벌하자는 내용의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된 가운데, 추 장관은 영국의 사례를 들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연합뉴스⋅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법무부 장관의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 제정 검토 지시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대한변호사협회, 16일)
"추 장관은 이 지시를 반드시 철회하여야 한다. 더불어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도외시한 이번 지시에 대하여 자기 성찰과 국민들에 대한 사과가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13일)
지난 12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처벌하자는 내용의 법률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진보⋅보수를 망라한 거의 모든 단체들이 추 장관을 비판했다. 16일에는 여당 최고위원까지 나서서 "비밀번호 강제 공개는 과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추 장관은 "영국에는 이미 입법례가 존재한다"며 '법안 필요성'에 대한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수사권한 규제법'(RIPA)이 그것인데, "자기부죄거부권이 있는 영국에서도 '비밀번호 자백법'이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지난 15일에는 추 장관의 이런 입장을 보강하는 듯한 보도도 있었다. "영국판 '비밀번호 자백법'인 RIPA는 '자기에게 불리한 죄를 스스로 드러내지 않을 권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기사였다.
추미애 장관이 RIPA를 콕 찝어 언급한 건, 선진국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 '비밀번호 자백법'과 유사한 법률이 있으니 "우리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특히 "형사상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헌법상 자기부죄거부권의 효시가 바로 영국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런 '입법 정당성'이 더욱 도드라진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 비교에 불과하다. 영국의 자기부죄거부권은 '수많은 예외를 허용하는' 상대적인 권리에 불과하지만, 대한민국의 자기부죄거부권은 헌법에 특별히 명시된 절대적인 권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영국 대법원 판례를 보면 '영국에서의 자기부죄거부권 위상'이 어느정도인지 드러난다. 당시 영국 대법원은 테러용의자 A씨에게 RIPA가 적용된 사건에서 이런 법집행이 A씨의 자기부죄거부권과 충돌하지는 않는지를 검토했다.
영국 대법원은 결론적으로 RIPA가 자기부죄거부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 핵심 근거로 "자기부죄거부권이 얼마나 절대적인 권리인지"를 검토했다.
재판부는 "자기부죄거부권은 관습법에 뿌리박고 있는데, 이 원칙은 특정 상황에서 수많은 법적 예외가 적용된다"(It is well understood that the principle is subject to numerous statutory exceptions which limit, amend, or abrogate the privilege in specified circumstances)고 했다. 자기부죄거부권이 상대적이고, 상황에 따라 침해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자기부죄거부권이 헌법에 명시돼있고, 헌법조항에 위배되는 법률은 위헌으로서 효력을 갖기 어렵다. 입법화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장헌법률사무소의 김동우 변호사는 "자기부죄거부권은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명백히 헌법에 명시되어 있고 이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헌법제37조 제2항(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의 과잉금지원칙을 준수해야하는바, 이 법률은 과잉금지원칙 위배소지가 많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대구의 배동천 변호사도 "위헌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어떤 법률이 헌법에 위배됐을 때, 헌법불합치 또는 위헌 결정을 내린다. 헌법불합치의 경우, 법률을 개정할 시간이 있다. 반면 위헌 결정이 나오면 해당 법률은 즉시 효력을 잃는다.
설령 위헌 논란을 넘어 영국과 같은 RIPA를 입법화해서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한동훈 검사장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 지는 별개의 문제다.
영국도 'RIPA'를 적용하는 범위를 매우 좁게 설정했다. RIPA 제3부 제49조, 이른바 '제49조 통지서'에 따르면 지역 법원(Circuit judge)이 발부한 서면 허가에 의해 피의자에게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때 △국가안보 이익 △범죄 탐지와 예방 △영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통지 명령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 지난 10년간 '제49조 통지서'가 적용된 사례 11건을 찾았다. 모두 군사정보 유출, 총기 범죄, 아동성착취, 마약 유통, 살인 혐의에 국한돼 있었다.
지난 2월, 영국의 법원에서 징역 6년 9개월을 선고받은 B씨는 코카인 헤로인 등의 마약을 유통한 혐의로 휴대전화 비밀번호 공개를 요청받았다. 지난 2018년, 공공장소에서 총기 소지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C씨도 그런 경우다.
이렇게 최소한의 범위에만 적용하는 대신, 통지에 불응하면 기존의 범죄 혐의에 대한 것뿐 아니라 별개로 처벌받는다. 이 11건 사건의 피의자들도 휴대전화 등의 비밀번호를 공개하지 않아 모두 추가 처벌받았다.
이런 영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한동훈 검사장이 '비밀번호 자백법'을 적용받을 가능성은 적다. 예를 들어 한 검사장의 혐의가 테러위협 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동훈 검사장이 개입됐다는 '채널에이 강요미수' 의혹은 이동재 채널에이 전 기자가 한 검사장과의 친분관계를 과시해 취재원을 압박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한 검사장이 일정 부분 개입했다는 것인데 이를 국가안보 등과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