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폐기하고 케이블타이 숨긴 경찰 아빠⋯ 결국 장윤기 '역공' 무기 됐다
리얼돌 폐기하고 케이블타이 숨긴 경찰 아빠⋯ 결국 장윤기 '역공' 무기 됐다
경찰 조직적 은폐 의혹에 '강간등살인' 입증 비상
변호사 "증거 신빙성 다툴 여지 커져"

검찰에 송치되는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광주 도심에서 일면식도 없는 여고생을 납치하려다 살해하고, 이를 돕던 남학생까지 흉기로 찌른 20대 장윤기.
당초 경찰은 구애를 거절당한 분풀이로 인한 일반 살인으로 사건을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보완 수사를 통해 범행 수법과 사전 준비 정황 등을 종합하여 장씨에게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재판의 최대 쟁점은 장씨의 성범죄 목적 유무다.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인 일반 살인죄와 달리, 강간등살인죄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뿐이라 유기징역 선고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라진 3대 핵심 실물 증거… 경찰 간부 아버지의 '노골적 개입'
중형을 가를 핵심 단서는 모두 장씨의 성범죄 목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정작 수사 단계에서 실물 증거들이 줄줄이 사라지거나 누락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그 배후에는 현직 경찰 간부인 장씨의 아버지가 있었다.
경찰이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핵심 증거는 크게 3가지다.
- 훼손된 리얼돌: 장씨 주거지에서 발견된 성인용 인형으로, 장씨의 폭력적 성적 판타지를 보여주는 정황 증거다. 하지만 장씨 아버지가 수사팀으로부터 주거지 비밀번호를 건네받아 이를 직접 폐기해 버렸다.
- 공업용 케이블타이: 피해자를 결박하려 한 계획범죄 물증이다. 장씨 차량 수색 영상에는 50cm 길이의 케이블타이가 명확히 찍혀있었으나 실물은 압수되지 않았고, 훗날 아버지 집에서 발견됐다.
- 혈흔 남은 범행 차량: 조수석 뒷문에 피해자 혈흔이 남은 범행 장소임에도, 경찰은 이를 장씨 아버지에게 조기 반환했다. 아버지는 이후 이 차량을 직접 운행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상 삭제 지시 의혹"… 경찰 수사팀장 구속영장 청구 파장
전문가들은 실물 증거 부재가 오히려 재판에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역공 빌미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로엘 법무법인의 김강호 변호사는 10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과의 인터뷰에서 "피고인 측은 사진만으로는 실제 훼손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거나, 다시 감정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식으로 증거 신빙성과 증명력을 다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단순한 수사 부실을 넘어 경찰의 조직적 은폐 정황도 짙어지고 있다.
실제로 차량 수색 당시 케이블타이가 찍힌 영상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의혹을 받는 담당 광산경찰서 수사팀장에 대해서는 긴급체포 후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태다.
살인 증거 지운 경찰 아빠, '친족상도례' 방패로 처벌 피하나
시민들의 공분이 극에 달한 지점은 또 있다. 아들의 살인 및 성범죄 증거를 대놓고 은폐한 장씨 아버지를 현행법상 처벌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법의 친족상도례 특례 규정 때문이다. 가족의 범죄를 숨겨주는 것은 인지상정으로 보아 처벌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법리다.
하지만 법을 집행해야 할 사법기관 종사자가 잔혹한 강력 범죄 증거를 훼손한 행위까지 가족의 도리라는 이름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쏟아지고 있다.
살인범을 돕기 위해 움직인 공권력. 경찰 조직 전체의 신뢰가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사법 정의를 가로막는 낡은 법리 개정이라는 무거운 입법적 과제가 법정 밖의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