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희 씨 등신대는 왜 부쉈나…19년 만에 등신대 걷어찬 '마지막 동행인'
이윤희 씨 등신대는 왜 부쉈나…19년 만에 등신대 걷어찬 '마지막 동행인'
2006년 전북대생 이윤희 씨 실종 사건, 유족과 지인 간 갈등 지속

훼손 전 이윤희씨 등신대 모습. /연합뉴스
"야, 너 왜 거짓말로 알리바이 만들면서 친구들까지 이용하는데. 네가 내 속옷 가져갔니?"
19년 전 실종된 이윤희 씨의 사진으로 만든 등신대에 적힌 질문이다. 그리고 지난달, 이 등신대를 부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바로 19년간 이씨 가족이 범인으로 의심해 온 대학 동창 김모씨였다. 풀리지 않는 미제사건의 아픔이 결국 새로운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손수호 법학 박사는 "한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부른 상황"이라며 "이 등신대 훼손의 배경과 의미를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6년 그날 밤, 컴퓨터에 남은 '성추행'과 '112'
사건은 2006년 6월 6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8살이던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 씨는 종강 총회를 마치고 동기 김씨의 배웅을 받으며 자신의 원룸으로 들어간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녀가 사라진 방 안에는 의문투성이 흔적만 가득했다. 이씨의 컴퓨터는 새벽 2시 58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사용된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검색어는 단 3분 분량의 '성추행'과 '112'뿐이었다.
손수호 박사는 "누군가 전문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터넷 검색 기록 일부와 메신저 대화 내용을 삭제한 것이 드러났다"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범인이 일부러 해당 검색 기록만 남겼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사건 사흘 전 날치기를 당해 휴대전화가 없던 이씨에게 컴퓨터는 외부와 소통할 유일한 창구였다.
사라진 망치와 찻상, 세탁기 속 속옷
현장의 미스터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방 안에서 없어진 물건은 단 두 가지, 공구함에 있던 망치와 다용도로 쓰던 찻상이었다. 찻상은 며칠 뒤 원룸 앞 도로변에서 발견됐는데, 4개의 쇠 다리가 나사못으로 정교하게 분리된 채 상판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세탁기에서는 소량의 수건과 속옷 한 장이 세탁이 끝난 채 발견됐다. 손 박사는 "자취하는 사람이 그 적은 양만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대에 널지도 않은 것은 수상한 점"이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아는 사람이 방문해 몸싸움을 벌이다 범행을 저지른 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세탁기까지 돌린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왔다.
하지만 범인을 특정할 결정적 증거들은 사라진 뒤였다. 이씨가 학교에 나오지 않자 걱정된 친구들이 경찰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경찰은 '가출'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사이 원룸에 남아있던 친구들이 어질러진 방을 깨끗하게 청소하면서 모든 흔적이 지워지고 말았다.
19년간의 의심, 등신대 훼손으로 폭발
이씨의 가족은 마지막 동행인이자 이씨에게 호감을 표했던 김씨를 줄곧 의심해왔다.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김씨가 이씨의 원룸 비밀번호를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고 사건 초기 진술이 다소 오락가락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가족들은 김씨가 운영하는 동물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다 접근금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김씨의 집과 병원 주변에 "네가 내 속옷 가져갔니?" 등 김씨를 직접 겨냥하는 문구가 담긴 이윤희 씨의 등신대 10개를 설치했다.
이에 김씨는 "19년간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결국 등신대를 훼손하다 덜미를 잡혔다.
손수호 박사는 "딸을 잃고 고통받는 가족, 사회적 의심을 감수하고 있는 동창,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오지 못하는 실종자 이윤희 씨까지 모두가 비극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 씁쓸한 싸움의 끝에서 우리는 과연 이윤희 씨의 마지막 행적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