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보다 비싼 전세금, 말 안 했으니 사기"... 법원, '침묵한 임대인'에 징역 15년
"집값보다 비싼 전세금, 말 안 했으니 사기"... 법원, '침묵한 임대인'에 징역 15년
무자본 갭투자·리베이트 구조 숨긴 채 계약하면 기망행위 인정 하급심
반환 능력 없으면서 벌인 '동시진행'에 '미필적 고의' 적용해 엄벌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최근 전세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이른바 '깡통전세' 피해가 속출하는 가운데, 법원이 사기죄의 성립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며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핵심은 집주인이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임차인에게 불리한 계약 구조를 '알리지 않은 침묵' 자체를 기망행위(속임수)로 본다는 점이다.
법원은 특히 자기자본 없이 수백 채의 빌라를 사들이는 '무자본 갭투자'와 매매·전세 계약을 같은 날 체결하는 '동시진행' 수법에 대해,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계약을 강행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보증금이 매매대금보다 크다"... 법원이 특정한 '사기 구조'
최근 하급심 판결문에 드러난 '깡통전세' 사기의 사실관계는 명확한 패턴을 보인다. 임대인은 자기 자본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오로지 임차인의 전세보증금만으로 주택을 매입한다. 이 과정에서 임차인이 지급한 보증금 중 일부는 분양대행업자, 공인중개사, 그리고 명의를 빌려준 임대인(피고인)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분배된다.
건축주에게는 이 리베이트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입금된다. 결과적으로 '임대차보증금 > 실질 매매대금(건축주 수령액)'이라는 기형적인 구조가 형성된다. 법원은 임차인이 낸 돈이 집의 실제 가치보다 크다는 점, 그리고 이 차액이 리베이트로 새어 나간다는 사실을 깡통전세의 핵심 재료로 파악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4. 16. 선고 2023고단2214 판결).
말하지 않은 '진실', 법원은 '기망(속임수)'으로 판단
법적 쟁점은 "집주인이 이를 임차인에게 고지할 의무가 있는가"에 모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거래 상대방이 알았더라면 계약하지 않았을 중요한 사실을 침묵한 것은 고지의무 위반이자 사기죄의 기망행위"라고 못 박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2024. 1. 19. 선고 2023고단4445)은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알리지 않은 ▲실질 매매대금과 보증금의 차이 ▲보증금 일부가 리베이트로 지급된 사실 ▲임대인이 수백 채를 보유하여 세금 체납이 필연적인 재정 상태 등을 사기죄의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만약 임차인이 자신의 보증금이 실제 집값보다 비싸고, 그 돈이 리베이트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신의성실의 원칙상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기라고 판시했다.
"집값 오를 줄 알았다" 변명 안 통한다... '미필적 고의' 인정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며 확정적인 편취의 고의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러한 막연한 기대나 계획만으로는 면죄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전지방법원(2023. 2. 14. 선고 2022노2025)은 피고인들이 처음부터 보증금을 떼먹으려는 확정적 고의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갭투자 구조상 반환 불능 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특히 자기자본 없이 '돌려막기' 방식으로 수백 채의 주택을 매입하고, 수백억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담보할 별다른 재산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임차인을 받은 행위 자체가 사기의 고의성을 입증한다는 것이 법원의 시각이다.
징역 15년 선고... "서민 삶 무너뜨린 중범죄"
법원은 깡통전세 사기를 건전한 거래 질서를 교란하고 서민의 생활 기반을 무너뜨리는 악질 범죄로 규정, 양형 기준을 대폭 높이고 있다.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2024. 10. 2. 선고 2023고단898)은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보증금을 편취한 주범에게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또한 서울중앙지방법원(2023. 7. 6. 선고 2023고단2019) 역시 유사한 혐의에 대해 "피해자 100명 이상, 피해액 수백억 원에 달하는 범행"이라며 엄벌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보증금을 일부 돌려받았다 하더라도, 이는 피해가 국가기관으로 전가된 것일 뿐 피고인의 죄책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들은 '설마 사기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무자본 갭투자에 대해 사법부가 명확한 경고장을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