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배드파더스' 검사의 난감하고, 난처했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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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배드파더스' 검사의 난감하고, 난처했던 하루

2020. 01. 15 20:32 작성2020. 01. 15 20:39 수정
안세연 인턴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y.ah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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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 재판에서 '돈 안 준 부모' 편 들어야 했던 검찰

대형 변호인단에 맞선 한 명의 공판검사

이기기 위해 꼭 필요한 '반대신문'도 생략한 채 의기소침

15일 '배드파더스(Bad Fathers)'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나왔다. 법정에 있던 모두가 환호했지만, 한 명은 그러지 못했다. 이날 공판을 맡은 신병우 검사였다.

'배드파더스(Bad Fathers)'에 대한 무죄 선고는 사회적 반향이 컸다. 법원은 15일 '양육비 제때 주지 않은 나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건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날 15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은 다소 일방적이었다. 피고인석에 앉은 구본창(57) 대표 곁에는 변호사 10명이 함께 앉았고, 재판정을 가득 채운 방청객 60여명도 대놓고 구씨를 응원했다. 유일하게 반대편에 선 사람은 공판검사 한 명뿐이었다.


이 때문에 이날 공판검사를 맡은 수원지검 신병우 검사는 재판 내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재판 구도상 양육비를 떼어먹은 것이 분명한 사람들을 대변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인 변호인단 vs. 의욕 안 보였던 공판검사

지난 14일 오전 9시 30분 수원지방법원 204호 법정. 피고인 구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재판 시작과 동시에 변호인단이 불을 뿜었다. 변호인단은 "구씨를 처벌하기 위해선 '네 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한다. 우리는 이 네 가지에 대해 모두 부정한다"고 선언하며 변론을 시작했다. 목소리는 우렁 찼고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반면, 신 검사는 목소리부터 작았다. 뒷자리에 앉은 방청객들이 들리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이크 자체를 멀찌감치 놓은데다 목소리까지 작아서 발언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준비한 원고를 단조로운 어조로 줄줄이 읽을 뿐이었다. 시선은 주로 바닥을 향했다. 변호인의 변론을 들을 때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머리를 쓸어넘겼다. 심지어 왼손 엄지에 끼운 파란 골무로 귀를 파기도 했다.


변호인단과 달리 '증인 신문'도 이례적으로 생략

재판에 출석한 증인을 신문할 때도 양측의 온도 차는 분명했다. 변호인들은 증인에게 수십 개의 질문을 던졌다. 구씨가 운영한 배드파더스의 취지와 목적 등을 듣기 위해서였다. 배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질문이 다양한 각도에서 던져졌다.


변호인단의 이런 노력 끝에 한 증인은 "이 사건에서 원인을 보고 판단해달라"며 "법의 무능함에 좌절했고, 기댈 곳이 없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법은 정의로운 것이라고 알고 있다.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오자 방청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한 방청객은 오열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배심원들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반면, 검사는 '반대신문 있으시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그저 "없다"라고 답했다. 표정은 무표정했다. 피고인 측에 불리한 질문을 해서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려야 이길 수 있는 재판이었지만, 공판검사는 모두 생략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의 제기' 한 번 했다가, 방청객의 야유 받기도

신 검사가 내내 침묵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말 한 마디 꺼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아야 했다.


증거조사 때 제출된 사진 한 장이 문제였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나쁜 엄마'가 클럽에서 파티를 벌이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날은 크리스마스로, 두 딸에 대한 첫 번째 면접교섭일이었다. 변호인 측은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며 "(이 엄마가) 부모로서 의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을 보지 않고 클럽에 갔다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검사가 사진의 출처에 대해 지적했다. 신 검사는 "이 엄마가 사진을 직접 SNS에 올린 건 아니다"라며 "다른 사람의 계정에서 올라온 사진"이라고 했다.


즉시 방청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게 뭐가 중요해!" 변호인단도 곧바로 반박했다. "검사님. 그게 무슨 취지냐"며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맞다"고 했다. 누가 올렸든 면접교섭일에 클럽에 간 건 사실이라는 취지였다.


검사는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피고인 향해 "증인에게 묻겠습니다" 실수

진땀을 빼던 신 검사는 기어코 실수를 저질렀다. 피고인 신문 때였다. 변호인에 이어서 검사가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검사는 생뚱맞게 피고인을 향해 "증인에게 묻겠습니다"라고 했다. 재판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곧바로 검사에게 "피고인에게 묻는 것이지요?"라고 물었다. 검사는 머쓱해하며 "아, 예. 피고인에게 묻겠습니다"라고 정정했다.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과 '증인'은 다르다. 신 검사가 호칭 실수를 한 것이다.


홀로 기뻐하지 못했던 '무죄 선고'의 순간

이날 선고는 15일 새벽 0시 30분쯤 나왔다. 검사는 피고인 구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만장일치로 무죄가 나왔다.


선고 직후 법정에서는 환호성이 나왔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고, 구씨는 눈물을 흘렸다. 변호인들도 서로를 얼싸 안았다. 서로에게 "그동안 고생하셨죠"라는 덕담도 이어갔다.


어색한 사람은 딱 한 명, 신 검사였다. 신 검사는 선고가 이어지는 동안 줄곧 표정이 없었다. 그러다 선고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나오자, 조용히 법정을 빠져나갔다.


모든 관심이 구씨에게 쏠려있느라 그가 퇴정하는지 눈치 챈 사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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