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사건' 상고기각에도⋯피해자 대리 박준영 변호사는 "희망적"이라 한 까닭
'형제복지원 사건' 상고기각에도⋯피해자 대리 박준영 변호사는 "희망적"이라 한 까닭
형제복지원 원장 결국 무죄⋯가해자 처벌은 못 했지만
피해 사실 처음 알려진지 35년 만에 대법원 '인권침해' 인정

지난 11일 서초동 대법원에서 고(故) 박인근 전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법정에서 나온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나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길거리에서 무고한 청소년과 장애인, 노숙자들을 무단으로 끌고 가 '부랑인'으로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낮에는 불법 노동을 시켰고, 밤에는 자물쇠로 잠근 수용소 안에 가뒀다.
끔찍한 인권유린 사건이었지만, 주범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은 줄곧 무죄 상태였다. 지난 1989년 대법원이 박 원장이 저지른 감금 행위에 대해 무죄를 확정한 탓에, 이를 번복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균열을 만든 건,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지난 2018년 문 전 총장은 형사소송법이 검찰총장에게만 부여한 권한인 비상상고(非常上告)를 형제복지원 사건에 발동시켰다. 박인근을 무죄로 판결한 대법원의 판결에 문제가 있으니, 다시 판단해 달라는 '최후의 카드'였다.
하지만 2021년 대법원은 지난 11일 이러한 상고를 기각했다. 문 전 총장이 주장한 '법령위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무죄 판단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결정이었다.
박인근 원장이 저지른 '인권유린'에 대한 제대로 된 죗값을 물을 수 없다는 결정에 많은 사람들이 좌절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는 희망 섞인 반응을 내놨다.
그는 "대법원이 (형제복지원을 둘러싼) 국가의 조직적 불법행위를 인정했다"며 "피해자들의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에서 도움이 됐으면 됐지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가 대법원의 기각 결정에 이런 의미 부여를 한 건 무슨 이유인지 로톡뉴스가 이번 사건을 정리해봤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형제복지원 사건에 있어서 가장 분노한 지점은 법원이 박인근 원장에게 내려준 면죄부였다. 박 원장은 경비원과 경비견을 동원하고, 쇠사슬과 자물쇠 등으로 감금해 사람들을 형제복지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런 일체의 감금 행위에 대해 법원이 "죄가 아니다"고 판단한 점은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피해자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 판결은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박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를 유죄로 만들기 위해 지난 34년 동안 8번의 시도를 펼쳐왔다.

과거 대법원은 대체 왜 박인근을 처벌할 수 없다고 했을까. 이유는 형법 제20조에 있다.
우리 형법 제20조는 누군가가 법령에 따라 행동했다면, 그 행동을 처벌할 수 없다고 본다. 박 원장은 당시 내무부훈령(제410호)에 따라 형제복지원을 운영했다. 이 훈령에 따라 '부랑인'들을 가둔 것이니, 그 행동을 특수감금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문무일 전 총장은 이러한 과거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내무부훈령이 위헌적인데, 위헌적인 훈령을 토대로 특수감금죄에 면죄부를 주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오직 검찰총장에게만 부여된 특별한 권한을 발동시켰다. 2018년 11월의 일이다.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441조)
'2021년 대법원'은 '1989년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을까.
대법원은 끝내 박인근 원장의 특수감금죄를 유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이 형사소송법이 말하고 있는 비상상고를 인정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비상상고가 성립한다"고 본 문무일 전 검찰총장의 논리 구성은 다음과 같다.
① 형제복지원이 부랑아들을 가둬둘 수 있도록 한 내무부훈령(제410호)은 위헌적이다.
② 위헌적 요소를 지닌 내무부훈령(제410호)을 형법 제20조(법령에 의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를 적용해 해석한 것은 잘못됐다.
③ 그렇다면 형법 제20조에 의해 박인근 원장을 무죄로 판단한 1989년 대법원 판결은 잘못됐다.
④ 판결에 오류가 있으니 비상상고가 가능하다.
'2021년 대법원'은 내무부훈령이 위헌적(①)이라는 데까지는 동의했지만, 그것이 형법 제20조와 결합되는 대목(②)에서는 문 전 총장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원판결(1989년 대법원 판결)이 훈령이 상위법령에 저촉되어 무효임을 간과하였다는 사정은 형법 적용시 전제 사실을 오인했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는 형사소송법 제441조 비상상고의 사유로 정한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할 때는 '이유 없음'이란 말 외엔 다른 평을 남기지 않는다. 붙여넣기 하듯 이뤄지는 판결로 인해, 10초 재판이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한다.
그런데도 유독 이번 사건에선 특별한 판시 사실을 밝혔다.
❶ 국가기관의 주도로 형제복지원 내에서의 인권유린이 묵인됐다.
❷ 피해자들은 부랑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사회로부터 고립됐다.
❸ 그로 인해 헌법상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됐다.
과거 판결에서 무죄로 희석됐던, 기본권 침해 사실을 35년 만에 인정했다. 사실상 대법원의 입으로 국가의 배상책임을 공론화한 셈이다. 형식적으론 '기각'이었지만, 실질적으론 피해 회복이라는 상고의 목적이 달성됐다.
피해사실을 인정한 뒤에는, 구제 방향성도 함께 제시했다.
대법원은 "정부가 나서서 희생자와 피해자,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도 주문했다.
국가의 책임소재를 인정한 만큼, 소멸시효 논란도 잠재울 수 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시효는 최대 10년이다. 하지만 국가를 대상으로 한 사건에선 다르다. 중대한 인권침해로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시효 없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우리 법원의 태도다.
검찰과 법원 모두, 과거에 확정된 '무죄'를 뒤집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형제복지원 사건에 뛰어든 이유가 있다. 국가의 불법행위로부터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한 노력 끝에, 3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가 갚아야 할 형제복지원의 피해가 인정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