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완벽한 무죄 사건이어야 즉일선고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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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완벽한 무죄 사건이어야 즉일선고 하시겠습니까?

2020. 12. 17 17:31 작성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mea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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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8차 사건' 재심 청구인 윤성여씨, 17일 무죄 선고받아

12차례 심리 거쳐 검찰도 무죄 구형했지만, 법원은 즉일선고 미뤄

17일 억울한 누명을 썼던 윤성여씨가 1만 1182일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재판부가 재심 무죄를 선고하면서다. 이 '역사적 순간'은 20일 먼저 찾아올 수도 있었다. 20일 전에 열린 결심공판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면 가능했을 일이다. /연합뉴스⋅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20년간 감옥에 살았던 윤성여(53)씨가 17일 드디어 억울함을 풀었다. 1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거공판에서 윤성여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 1990년 5월 8일 대법원이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한 지 정확히 1만 1182일째였다.


재판을 맡은 박정제 부장판사는 "오랜 기간 옥고를 치른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사과드린다"며 "이 선고가 피고인 명예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무죄가 선고된 직후 재판정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고, 윤씨는 밝게 웃으며 자신에게 '무죄'를 구형한 공판검사와 악수를 나눴다.


검찰 손에서 시작된 재심 공판, '무죄 구형'으로 이어져

윤성여씨 무죄 선고는 예견된 결과다. '진범' 이춘재가 "8차 사건은 내가 저질렀다"고 털어놓은 직후 검찰이 직접 재심 절차를 밟은 탓이 컸다. 검찰은 자체 수사를 거쳐 지난해 12월 "'이춘재 8차 사건'에 활용된 국과수 감정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며 법원에 재심 의견서를 제출했다.


기조는 지난달 19일 열린 결심공판까지 유지됐다. 이날 검찰 측은 무죄를 구형했다. 통상 형사재판에선 검찰과 변호인이 범죄 성립 여부를 두고 공방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재심에선 양측 모두 윤성여씨 무죄를 주장했다.

검사와 피고인 모두 '무죄' 주장했는데⋯법원도 바로 선고할 수는 없었나?

윤성여씨는 이번 재심을 위해 지난 2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공판기일에 출석했다. 윤씨는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지만,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재심 청구인임과 동시에 '살인' 죄목에 해당하는 피고인이었기 때문이다.


윤씨는 최후 진술에서 "32년 전 법정에 섰을 땐 옆에 아무도 없었다"며 "이번 재판이 끝나면 좋은 사람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고 진술했고, 검찰 측도 "윤성여씨가 이미 20년 넘게 억울하게 옥고를 치렀다는 점에서 신속하게 구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끝까지 신중하게 재판을 진행했다. 특히 마지막 결심공판 당일에도 뜸을 들였다. 결심공판 당일에도 선고를 내리지 않고, 별도의 선고공판기일을 잡은 것이다. 이 때문에 윤성여씨는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4주라는 시간을 더 보내야 했다.


즉일선고가 원칙인데, 왜 4주가 더 필요했을까

우리 형사소송법(제318조의4 제1항)이 정한 원칙은 "변론을 종결한 날에 판결을 선고한다"이다. 이른바 '즉일선고 원칙'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선고기일을 따로 지정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변론종결 후 14일 이내로 지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같은 조 제3항).


즉, 원칙은 당일선고이지만 예외적으로 14일 이내 선고인 셈이다. 하지만 법원의 관행은 정반대다. 대부분의 선고가 당일에 이뤄지지 않는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당일에 선고가 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2020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제1심 형사공판 처리 인원 23만 5887명 가운데 '즉일선고'를 받은 피고인은 1만 1218명(4.7%)에 불과하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로스쿨 교수. /이창현 교수 페이스북

형법 전문가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법원 관행을 시급한 개선과제로 꼽았다.

이창현 교수는 이날 로톡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미 20년간 억울한 수감생활을 한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법원이 무죄가 증명된 사람에게 이를 선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온정의 선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수차례 공판을 거쳐 심리가 충분히 이뤄졌고, 다툼이 있는 사안이 아닌 데도 즉일선고를 하지 않은 것은 '게으른 법원 관행'에 불과하다는 게 이창현 교수 설명이다.

'민청학련' 고(故) 박형규 목사 재심사건에선 검찰과 법원 모두 사과하고 '즉일선고'

지난 2012년 9월 있었던 '민청학련' 재심 사건은 여러모로 이번 사건과 유사했다. 38년 만에 재심이 결정됐고, 피고인의 거동이 불편했으며, 공판 검사로 나선 검찰 측도 무죄를 구형했다. 모두 이번 사건과 동일한 지점이다.


당시 재판장을 맡은 김상환 부장판사는 즉일선고로 결심공판 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윤성여씨 사건을 맡은 수원지법 재판부는 즉일선고 대신 '20일 후의 선고'를 선택했다.

수원지법, "즉일선고되는 사안 드물어⋯일반적인 재판 절차였을 뿐"

선고 당일인 17일, 로톡뉴스는 수원지법에 20일 전에 열렸던 결심공판에서 '즉일선고를 할 수는 없었는지'를 문의했다. 형사소송법에 명시된 시한보다 선고가 늦춰져야 했던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도 함께 문의했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검찰 구형과는 별개로 결국 최종 판단은 재판부 몫"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즉일선고 사건은 많지 않고, 이번 재심 역시 일반적인 기준에서 선고공판을 지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고기일 지정은 재판부의 재량이며,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선고기일을 별도로 잡았다는 설명이었다.


이 같은 결정에 따라 결과적으로 윤성여씨가 공식적으로 명예를 회복하는 데에는 20일이 지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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