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연쇄 성추행에도 무사통과? 신원 노출 공포 파고든 '학폭위'의 역설
엘리베이터 연쇄 성추행에도 무사통과? 신원 노출 공포 파고든 '학폭위'의 역설
CCTV 증거에도 가정법원서 '1호 처분'
가해자는 전학 가고 입시 타격 피해

학원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타학교 여학생을 세 차례 강제추행한 고교생이 가장 가벼운 소년보호처분을 받았다. /셔터스톡
엘리베이터에서 연쇄 강제추행을 저지른 고교생이 피해자의 신원 노출 공포를 틈타 아무런 제재 없이 풀려났다.
CCTV에 다 찍혔는데…가해 학생은 '입시 타격 0' 전학
2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는 학군지 학원가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고교생 강제추행 사건이 제보됐다.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인 학원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남학생이 타학교 여학생을 강제로 추행한 사건이다.
범행은 며칠에 걸쳐 세 차례나 이어졌고, 모든 장면은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피해 학생의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고, 피해자 측은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가해 남학생은 입시에 어떠한 타격도 받지 않았다.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가정법원에서 가장 가벼운 '소년보호처분 1호(부모나 보호자에게 학생을 위탁해 지도하게 하는 처분)'를 받는 데 그쳤다.
가해 학생 측이 꾸준히 합의를 시도했고 이후 전학을 갔다는 점이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으로 참작됐기 때문이다. 이 처분은 범죄 기록이 남지 않는 것은 물론, 학교생활기록부에도 기재되지 않아 대학 입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신상 다 퍼질라" 공포…연쇄 성범죄에도 학폭위 문 닫힌 이유
어떻게 명백한 연쇄 성추행 사건이 이렇게 끝날 수 있었을까.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가 애초에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 신고와 함께 학폭위 절차가 진행되어야 하지만, 이 사건은 학교장 자체 해결 제도로 마무리됐다.
이 제도가 성립하려면 2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거나, 재산상 피해가 없고, 폭력이 지속적이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 학생 및 보호자가 학폭위 개최를 원하지 않아야 성립된다. 세 차례나 이어진 범행이었음에도 학폭위가 열리지 않은 결정적 이유는 피해 학생 측의 '거부'였다.
사건을 담당했던 변호사는 방송 인터뷰에서 "피해 학생 측에서 학교 폭력 절차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전혀 타격 없이 처리될 수 있었던 사안이었다"고 밝혔다.
처벌을 원하면서도 학폭위를 거부한 이유는 신원 노출에 대한 공포였다. 학폭위 절차가 시작되면 출석 통지서를 통해 서로의 학교와 학년, 반, 이름이 당사자들에게 공개된다.
또한, 사안조사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이 학교 전체에 드러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담당 변호사는 "사실은 가해 학생을 징계하고 싶은데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피해 학생의 의도와는 달리 어떤 징계도 받지 않는 반사적 이익을 누리는 부분, 이런 것이 개선책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가해 학생이 공부를 매우 잘해 입시 불이익을 두려워했다는 점을 알면서도, 2차 가해를 막기 위해 징계를 포기해야만 했던 역설적인 상황이다.
"신고할래, 말래?" 스피커폰 켠 학교…합법적 면죄부 된 '자체 종결'
학교 현장에서도 피해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스템 부재가 꼬집힌다.
중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A씨는 방송에서 "학교 전담 경찰관하고 생활지도 교사랑 둘이서 스피커폰으로 전화기를 켜 놓고 피해자 학생한테 신고할 거야 말 거야라고 그 자리에서 물어보고, 그러면 이 학생이 위축돼 원래는 신고했다가도 취소하는 경우도 봤다"고 증언했다.
이어 "학생들이 안전하게 얘기할 수 있게끔 그런 상황이 보장이 돼야 되는데 전혀 그런 시스템이 없다"며 "교사도 그렇고 경찰도 다 믿을 수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 안전이 확보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딥페이크, 강간, 연쇄 강제추행 등 중대 성범죄일수록 피해자가 신원 노출과 2차 가해를 극도로 꺼리면서 학교장 종결 처리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 학생은 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합법적인 면죄부를 받고, 피해 학생은 보호받지 못한 채 홀로 두려움과 싸워야 하는 것이 오늘날 학폭 처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한번 학교장 자체 처리로 종결된 사안은 같은 이유로 다시 학폭위를 열 수 없다. 피해자는 익명성 뒤에 숨어 침묵해야 했고, 가해자는 완벽하게 일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