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프로그램 썼다고 직원에게 3000만원 청구…"정품 안 사준 건 회사인데"
불법 프로그램 썼다고 직원에게 3000만원 청구…"정품 안 사준 건 회사인데"
변호사들 "1차 책임은 관리 소홀 회사"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퇴사한 직원에게 회사가 3000만 원을 청구했다. 회사 업무를 위해 불법 복제된 3D 설계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게 이유다. 직장인 A씨는 "개인적 이득을 취한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회사는 '구상권(대신 갚은 돈을 청구할 권리)'을 내세워 막무가내로 압박하고 있다.
A씨의 항변은 구체적이다. 업무에 프로그램이 꼭 필요했지만 회사는 정품을 제공하지 않았다. 모든 작업 파일은 회사 서버에 저장했고, 심지어 개인 휴대폰 데이터를 쓰는 '테더링'으로 접속해 회사 시스템에 부담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실히 일한 대가가 거액의 빚 독촉으로 돌아온 이 부조리한 상황,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구상권의 첫 번째 관문…"회사가 먼저 돈 물어줬나?"
회사가 직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높다. 법무법인 쉴드의 조재황 변호사는 "구상권이 성립하려면 회사가 먼저 소프트웨어 저작권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등 실질적인 금전 지출이 있었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단순히 직원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구상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가 저작권사로부터 고소당해 합의금을 물어주거나 배상 판결을 받는 등, 실제 손해를 입증하지 못하면 직원에게 책임을 물을 법적 근거 자체가 희박하다.
책임의 무게추, 직원보다 '관리 소홀' 회사로 기운다
설령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고 해도, 법적 다툼의 핵심은 책임의 무게추가 누구에게 더 기우느냐다. 다수의 변호사는 직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회사 책임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A씨처럼 업무 목적으로만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결과물을 모두 회사에 귀속시켰다면,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법무법인(유한) 한별의 김전수 변호사는 "업무 수행에 필요한 환경을 마련하고 불법 사용을 막아야 할 1차적 책임은 회사에 있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정품 구매 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불법 사용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그 책임을 온전히 직원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의미다.
근거 없는 3000만원, '압박용 카드'일 가능성 농후
회사가 요구한 3000만 원이라는 금액 역시 법적 근거가 부족한 '압박용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
클리어 법률사무소 김동훈 변호사는 "어떤 근거로 3000만 원을 산정했는지 명확한 자료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만약 합리적 근거 없이 과도한 금액으로 압박한다면, 이는 형법상 공갈이나 협박에 해당할 소지도 있다"며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법무법인 유안의 조선규 변호사 역시 "실제 소송으로 가더라도 법원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 배상액을 감액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회사가 실제 손해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구상권 청구는 법적 힘을 갖기 어렵다. 지금 A씨에게 필요한 것은 부당한 요구에 대한 단호한 거절과 함께, 자신의 업무 기여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확보하고 변호사를 통해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