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레깅스를 입었다는 사실이 당신의 '불법촬영'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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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깅스를 입었다는 사실이 당신의 '불법촬영'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2021. 01. 06 19:41 작성2021. 01. 07 17:50 수정
엄보운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eom@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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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레깅스 불법촬영 사건'⋯대법원에서 '불법촬영 유죄' 취지로 2심 돌려보내

2심에서는 신체노출 적은 일상복이고, 성적 수치심 느끼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

변호사가 본 판결 의미 "옷차림이 불법촬영을 정당화하는 사유 되지 않는다"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것을 무죄로 본 판단을 대법원이 뒤집었다. 신체 노출이 적은 일상복을 입었더라도 당사자 의사에 반해 몰래 촬영하는 건 범죄라는 것이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레깅스 입고 나온 건 너니까, 찍혀도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게 싫으면 안 입으면 되잖아?"


대법원이 이런 주장을 낱낱이 깨부쉈다. 앞으로 법정에서 이렇게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주장을 하기 쉽지 않아졌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020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모든 사람은 자기 의사에 반하여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천명했다. 그동안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지 않을 자유' 정도에 머물렀던 성적 권리를 대폭 확장한 판결이었다.


나아가 '성적 수치심'에 대해서도 새 지평을 열었다.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만을 의미했던 '성적 수치심'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적 빡치심'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이로써 앞으로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가 수치심 대신 분노나 공포만 느꼈다 하더라도 성범죄는 성립한다.


이 판결에 한 변호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옷차림이 불법촬영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대법원이 확실하게 정리했습니다."


레깅스 입은 여성의 하반신 사진을 몰래 찍었다면⋯1심 "불법촬영 유죄" 2심 "무죄"

이 사건은 한 남성 A씨가 버스에서 레깅스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영상 촬영하다가 적발되면서 시작됐다.


1심(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장원석 판사)은 A씨의 행동이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촬영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지만, 2심(의정부지법 오원찬 부장판사)은 이를 무죄로 뒤집혔다. 오원찬 부장판사가 이 사건을 무죄로 본 이유는 크게 네 가지였다.


① 외부 노출된 맨살 부위가 적었다

②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치는 모습을 그대로 촬영했다

③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다

④ 피해자는 "기분 더럽다"고 했지 명시적으로 수치심을 나타내진 않았다


"무죄"로 본 2심 판결의 근거 하나하나 깨트린 대법원

하지만 대법원은 이 네 가지 이유를 모두 깨고, "다시 재판하라"며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①신체 노출이 적어도 불법촬영

대법원은 맨살이 훤히 드러나지 않은 신체 부위를 촬영했어도,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면 처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 주심인 김선수 대법관은 "피해자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촬영 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법률사무소 우진의 김혜진 변호사는 "피해자의 신체 부위의 노출여부를 불문하고 특정 신체부위를 촬영하거나 당했을 때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면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했다.


신체가 노출되지 않아도 엉덩이 등 몸의 윤곽이 드러난다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이 만들어졌다는 취지다. 또 그 신체 부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부분이더라도 장소와 상황, 방식에 따라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킬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률사무소 다담의 조강현 변호사 또한 "대법원의 결정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대한 범위를 원심(2심)의 결정보다 넓게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법률 자문
(왼쪽부터) 법률사무소 우진의 김혜진 변호사, 법률사무소 다담의 조강현 변호사. /로톡 DB
(왼쪽부터) 법률사무소 우진의 김혜진 변호사, 법률사무소 다담의 조강현 변호사. /로톡 DB


②각도와 상관 없이 몰래 찍었으니 불법 촬영

2심은 피고인 A씨가 확대 등 별다른 카메라 조작 없이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를 찍었기 때문에, 죄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잘못된 법 적용"이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의 핵심 논리는 '일반적인 시야각과 똑같은 범위를 사진을 찍었다면, 그건 죄가 안 된다'였다. 눈에 보이는대로 찍었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러한 기계적인 법적용이 잘못됐다고 꾸짖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통상 일반인의 시야에 드러나도록 한 신체 부분은 일정한 시간 동안만 관찰될 수 있고, 관찰자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으며, 기억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며 "그러나 그 모습이 촬영되는 경우 고정성과 연속성, 확대 등 변형가능성, 전파가능성 등에 의하여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고 나아가 인격권을 더욱 중대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했다.


한 마디로 눈으로 본 것은 변형되거나 전파될 수 없지만, 카메라로 찍힌 건 그럴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결론이다.


③무슨 옷을 입었든 불법촬영과 상관없다

2심 재판부는 레깅스가 일상복이 돼가고 있다는 문화적인 요인을 무죄의 한 근거로 삼았다.


당시 재판부는 "소재가 다를 뿐 몸매를 드러내는 데는 몸에 딱 붙는 청바지(스키니진)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판시했다. 레깅스가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옷이 아니기 때문에 유죄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거나, 피해자가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다는 사정은 레깅스를 입은 피해자의 모습이 타인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김혜진 변호사는 "피해자가 몸에 딱 붙는 옷을 일상복으로 입고 있었다는 이유는 불법 촬영을 정당화하는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④분노와 모멸감도 성적 수치심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의는 한 가지 더 있다. 성범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 요건인 '성적 수치심'의 개념을 크게 확장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 2심 법원은 이를 두고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성적 수치심의 개념을 '부끄럽게 느끼는' 좁은 의미의 수치심으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해석이 잘못됐다고 보았다. 김선수 대법관은 "성적 수치심이 분노⋅공포⋅무기력⋅모욕감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피해감정을 포섭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피해자의 다양한 피해감정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넓게 확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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