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콘티 그대로 베껴 정식 연재한 웹툰 회사…"허락했다" 변명 안 통했다
테스트 콘티 그대로 베껴 정식 연재한 웹툰 회사…"허락했다" 변명 안 통했다
재판부 "독자적 사상·감정 표현된 창작물" 저작권 인정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현직 웹툰 콘티 작가로 활동하는 A씨의 작품이 자신도 모르게 정식 웹툰으로 연재됐다. '테스트용'이라는 말만 믿고 제작사에 제공했던 콘티였다. 법원은 회사의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고 2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테스트인 줄 알았더니…
웹툰 콘티 작가로 일하는 A씨는 2019년 8월, 콘텐츠 제작사 B사의 구인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B사는 A씨에게 웹소설 몇 편을 제시하며 "관심이 가는 작품의 2화분 콘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일종의 '실력 검증 테스트'였다.
A씨는 웹소설의 콘티를 제출했지만, B사는 "재미 면에서 각색 효과가 떨어진다"며 다른 작품을 제안했다.
A씨는 다른 웹소설을 선택해 3화 분량의 콘티를 그려 B사에 보냈다. 하지만 이후 정식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고, A씨는 콘티 작업을 중단했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는 끝나는 듯했다.
1년 뒤 발견한 내 작품…뒤늦은 사과와 '꼼수'
사건은 1년 뒤 터졌다. B사가 2020년 12월, A씨가 작업했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을 유명 플랫폼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A씨는 웹툰의 장면 구성과 구도, 대사 각색 등이 자신이 제출했던 테스트 콘티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A씨가 2021년 1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콘티를 무단 도용당했다"는 글을 올리자, B사는 뒤늦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B사는 "원고의 작업물을 무단으로 도용한 점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합당한 배상을 해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후 B사는 웹툰의 일부 장면을 수정한 뒤 연재를 계속했다.
팽팽한 법정 공방…"관행" vs "창작물"
결국 A씨는 B사를 상대로 10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에서 B사는 "업계 관행상 테스트 콘티에는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웹소설 원작의 표현이 구체적이라 누가 그려도 비슷할 수밖에 없고, 우리가 수십 번 수정 지시를 했으므로 우리도 공동저작자"라고 맞섰다. 심지어 "A씨가 '참고해도 된다'며 이용을 허락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A씨는 "콘티 5화 분량의 작업 대가와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반박했다.
'테스트'여도 명백한 저작권 침해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재판장 김양훈)는 B사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의 콘티가 저작권법상 보호받는 저작물이라고 명확히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웹소설의 핵심 정보만 간결하게 구성하고, 원작에 없는 대사를 추가하거나 대화 공간을 변경하는 등 작가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또는 감정의 표현을 담았다"고 밝혔다.
B사가 일부 수정 의견을 낸 것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수준일 뿐, 창작적 표현에 기여한 공동저작자로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B사가 A씨의 이용 허락을 받았다는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별도의 대가 없이 자신의 창작물을 무상으로 이용하도록 허락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B사가 뒤늦게 사과하고 웹툰 일부를 수정한 행동은 스스로 적법한 이용 권원이 없음을 인정한 것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B사가 A씨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손해배상액은 200만원…왜?
다만 재판부는 B사가 A씨에게 지급할 손해배상액을 200만 원으로 산정했다. A씨가 요구한 1000만 원에는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재판부는 "B사가 다른 콘티 작가에게 1화당 20만 원을 지급한 점, A씨의 콘티를 사용함으로써 웹툰 제작에 도움을 얻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A씨가 청구한 테스트 콘티 작업 대가와 최저시급 상당의 손해 등은 "업계 관행과 증거 부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참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3나80724 판결문 (2025. 2. 14.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