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43)] 판사하고 이야기가 끝났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43)] 판사하고 이야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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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장전담 판사는 법정에 들어올 때 항상 뒷짐을 지고, 목에 힘을 가득 준 것과 같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셔터스톡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뭔가 활용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생해서 받은 학위를 썩히기보다 학문적 영역에서 활동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전남 해남에서 광주로 법률사무소를 이전하였다. 서울에서 해남으로 내려갈 때는 아름다운 시골 풍광을 즐기면서 한가하고 여유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할 것 없이 치열했다. 특히 남의 송사를 대신 처리해 주는 직업이다 보니, 시골의 아름다운 산천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았다.
재판하려고 법원에 갈 때 차창 밖에 스쳐 가는 들녘과 그 끝에 자리한 나지막한 민둥산을 힐끔 쳐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해안도로를 돌면서 횟집에서 멋진 점심을 하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여유는 많지 않았다. 그런 생활 중에 가장 큰 일은 박사학위 논문을 쓴 것이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학위를 받았으니 학회에도 나가고 학술 활동도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제까지 늘 지도교수님의 조언에 충실하게 따라왔고, 새로운 일에 대한 기대도 솟구쳤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퇴근 후에는 논문 쓰느라고 정신없이 지냈는데, 목표한 일을 마치고 나니 할 일이 없어 무료했다. 늘 뭔가 새로운 일을 찾아서 그에 몰두하는 성격 영향도 있었다. 그래서 대학이 있는 광주로 올라가고 싶었다.
해남에서 3년 6개월 정도를 지냈는데,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것은 힘들었다. 퇴근 후에 아무도 없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무거운 공기가 확 밀려드는 것 같았다. 오후 늦게 해가 떨어진 후에 들어가면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거실로 몇 걸음 옮기는 그 순간이 마치 어두컴컴한 낯선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혼자 있는 적막한 분위기를 없애려고 TV를 켜놓는다. TV에서 사람 소리가 나오면 마치 누군가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광주로 법률사무소를 이전하였다. 광역시라고 하지만, 매우 좁은 도시였다. 출신 고등학교와 같은 학연이나 같은 고향이라는 지연 등으로 엮어진 인간관계로 움직이는 거 같았다.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 중에는 판사나 검사들과 친분을 과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판, 검사와 어느 자리에서 식사라도 한번 한 사람들은 무슨 영향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친분을 자랑하였다. 판·검사들이야 그 지역 주민 중 한 명 만난 것에 불과한 거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인연으로든 판·검사들과 사적인 만남을 가진 사람은 잠잠히 있지 않았다. 그들과의 친분을 자랑하니까 널리 소문이 퍼진다. 그런 사람은 판·검사에게 들인 접대비를 뽑으려는 본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무리한 사건청탁으로 이어지고, 바로 그런 일로 공직자는 낭패를 보기 쉽다.
여러 차례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피의자가 나를 찾아왔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며칠 후에 구속 전 피의자신문(영장실질심사) 기일이 잡혀 있었다. 과거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을 낸 적이 있고, 이번 사건도 구속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였다. 그는 나에게 수임료는 300만원을 착수금으로 제시하였다. 영장이 기각되더라도 성공보수는 줄 수 없다고 했다. 구속영장 담당하는 판사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는 형식적으로 선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영장 판사와 지난 주말에도 골프를 쳤기에 당연히 구속영장은 기각될 것이라고 했다.
"변호사님은 법정에서 형식적으로 몇 마디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면서 판사하고는 이야기가 끝났다고 했다. 그의 거만한 태도가 불쾌해 보였지만, 나는 잠잠히 듣고만 있었다. 설마 판사가 이런 사람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재판을 허술하게 할까 싶었다. 평상시 같으면 변호인이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발부될까 염려해야 할 상황인데, 그 사건은 피의자가 하도 기각된다고 장담을 하여 그런 부담은 없었다. 과연 그의 말처럼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인지 궁금했다. 실제로 영장 담당 판사는 골프를 좋아하고 상당히 잘 친다고 소문도 자자했다. 나 역시 동료 변호사들과 운동을 하러 갔을 때, 그 판사를 골프장에서 만난 적도 있었다.
아무튼 구속 전 피의자신문 기일에 피의자와 함께 법정에 나갔다. 그 영장전담 판사는 법정에 들어올 때 항상 뒷짐을 지고, 목에 힘을 가득 준 것과 같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법정에 있는 법관 출입문에서 법관 좌석까지는 단 몇 걸음에 불과하다. 그 몇 미터를 뒷짐을 지고 걷는 모습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다. 법정에서 그분은 세상에서 최고의 권세자로 보였다. 그 판사는 피의자에 대하여 호의적인 발언이나 표현은 하지 않았다. 나는 준비한 변론을 하고 법정을 나왔다.
그날 오후 그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되었다. 피의자가 큰소리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 후 그는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기소되었고, 매우 경미한 형이 선고되었다. 내가 변론한 피고인에 대한 결과가 좋게 나온 것이라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공정한 재판이 이뤄졌는지에 대하여 의문이 드는 찝찝한 뒷맛을 남겼다. 의뢰인의 말처럼 판사가 사건관계인과 함께 골프를 하고, 재판에서도 선처를 베푼다면 누가 공정한 재판이라고 하겠는가 싶다.
판사와 지역 유지들과의 유착관계는 한 지역에서 장기간 근무하는 향토 법관제와도 관련이 깊었다. 공직자가 장기간 근무하기를 원하는 지역은 출신 학교가 있는 학연이나 지연, 혈연과 같은 연고 관계로 얽혀 있다. 지역유지들은 판사와 검사들과 교류하고자 어떤 끈이라도 만들어 접근하려고 한다. 재판을 받는 사건관계인은 재판부와의 어떤 연고라도 내세우려고 노력한다.
지방의회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어 나를 찾아왔다. 재판 기일을 앞두고 내가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반대신문' 사항을 그 의원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분은 "피고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지요?" 이 질문 부분을 "피고인은 1982년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였지요?"라고 변경해 달라고 했다. 내가 굳이 고등학교 이름을 넣어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분은 재판장이 광주일고를 졸업한 동문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어찌하든 학연 관계를 고려해 줄 것을 기대한 것이다. 그의 요청대로 법정에서 피고인이 '광주일고를 졸업하였음'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