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물 필요한 물고기에 '물 한 바가지' 같은 존재 되고 싶어"
"당장 물 필요한 물고기에 '물 한 바가지' 같은 존재 되고 싶어"
적어도 2박 3일 일정 잡고 육지로 가야 만날 수 있던 '변호사'
'무변촌' 울릉도로 홀로 떠난 백승빈 변호사⋯덕분에 법적 조언 받을 수 있는 환경 마련
"변호사는 '존재'만으로 무변촌에 도움⋯나가도 후임자 구하면 나갈 것"

지난 2016년 이전까지 울릉도는 무변촌(無辯村·변호사가 없는 지역)이었다. 법적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은 배를 타고 육지로 가야만 변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 백승빈 변호사가 들어가면서, 울릉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울릉도 1호 변호사'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울릉도=박선우
'1만명 : 5.34명'. 우리나라 인구 1만명 당 변호사 숫자다. 지난 11월 17일 기준으로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휴업·미개업 변호사 제외)는 2만 7520명. 지난 10월 기준 주민등록상 인구는 5145만 9626명으로, 시민 1만명당 변호사 5명꼴인 셈이다.
변호사 3만명 시대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법률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변호사를 만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변호사가 가장 많은 서울에 살아도,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변호사라는 존재. 그런데 사는 지역을 다 찾아봐도 변호사가 1명도 없는 지역이라면, 느껴지는 벽은 더 클 것이다.
개업 변호사가 '0명'인 일명 '무변촌'(無辯村·변호사가 없는 지역). 변호사 1명이라도 이런 지역에서 일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법적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의 숨통을 틔우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번 로톡뉴스 인터뷰의 첫 단추는 여기에서 시작했다.
인터뷰를 위해 도착한 곳은 울릉도. 육지(강릉항)에서 쾌속선을 타고도 3시간을 가야 하는 외딴 곳이자, 지난 2016년이 돼서야 변호사 사무실이 처음 들어선 곳. 현재 울릉도의 '유일한 변호사'이면서 '1호 변호사'인 백승빈 변호사를 만났다.
"충남 부여의 한 우체국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작 물어보러 와놓고 '내가 그런 거 물어봐도 됩니까?'라며 어려워하고 경직돼 있더라. 평소 변호사를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일이 생겨도 찾지 않고, 만나도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무변촌은 점점 심화된다. 그래서 일단 무변촌 사람들에게 변호사라는 존재가 친숙해지도록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변호사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들이네'라고 느끼고, 가까워지게 만들고 싶어 무변촌을 택했다."

실제로 백승빈 변호사는 연수원(45기)을 수료하고 불과 3개월 뒤 무변촌이던 울릉도로 향했다. 울릉도는 '독도는 우리땅' 등 익히 알려진 노래로 접한 게 전부였다는 백 변호사. 그런데 왜 울릉도였을까.
"어느 날 연수원 동기가 '너, 무변촌에 관심 있다며? 울릉도는 어때?'라고 물어보더라. 사실 기회가 생기면 무변촌으로 가려고 했지, 연수원 수료하자마자 가겠다는 계획을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들으니 재밌겠다 싶었다. "
"동기들의 표현을 빌리면 한마디로 '미쳤냐'였다. '거기를 왜 가?'라는 반응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몇몇은 '1년 안에 돌아온다, 아니다'라며 내기까지 했더라."
지인들의 놀라움과 의심 섞인 눈초리를 뒤로 하고, 백승빈 변호사는 지난 2016년 4월 경북 울릉군 울릉읍을 주소로 한 '변호사 백승빈 법률사무소'를 열었다. 5분만 걸으면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언덕에 자리 잡은 그의 사무실. 그 양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 등이 절경인 해안산책로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사무실에 이사온 지는 울릉도에 들어가고 수개월이 지난 뒤였다고 했다. 백 변호사가 울릉도에서 처음 일했던 곳은 다름아닌 '식당'이었다.
"당시 사무소 자리를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기에 함께 일하는 사무장님 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했다. 그때 책상은 고기 굽는 불판 테이블이었다. 뒤에는 음료수 냉장고가 있었다. 지난 2017년 초가 돼서야 지금 사무실로 들어왔다."
"여기도 사람 사는 데니까 갈등이 생기면 '법대로 하자'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일단 변호사를 만나려면, 포항 등 육지로 가야 했다. 법원도 관할이 있는 포항(대구지법 포항지원)까지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 당시에는 배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라, 한번 왔다 갔다 하는 데 2박 3일 정도 걸렸다. 대부분이 어민인데 그렇게 되면 생업을 팽개치고 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법으로 해결하는 문제에 대해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분쟁이 생기면 대화로 풀거나, 마을 어르신들이 나서서 중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어르신이 나서서 해결했다는 이야기는 드문드문 듣는다. 아니면 법무사 통해서 해결하고. 그런데 울릉도는 인구가 적고, 대부분 한두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 웬만해선 소송이나 재판까지 안 간다. 비슷한 이유로 범죄 발생도 드물다. 서로 조심하는 경향도 있다고 본다.
실제로 이곳에 와서 형사 사건을 맡은 적이 거의 없다. 관련 문의는 많이 받지만, 실제로 소송까지 이어져서 변호한 경험은 지난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실제로 대법원이 공개한 판결문 열람서비스에서 울릉군을 키워드로 최근 2년치 판결문을 검색하면 형사 사건의 경우 약 40건이었다(지난 11월 3일 기준). 전체 판결문 중 일부 공개된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적었다. 울릉경찰서 자료에 비춰보면, 지난해 도내 범죄 발생은 154건으로, 경상북도에서 제일 낮았다. 이에 대해 백 변호사는 "사실 울릉도 주민 관련 사건은 더 적을 것"이라며 "관광객 사건도 포함돼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울릉도 인구가 1만명이 안 되는데, 등기 사건이 제법 된다. 울릉도에는 장사하는 분들이 많아 은행에서 담보 대출을 받는다며 등기 업무를 맡긴다. 공유물(공동으로 소유하는 물건) 분할과 관련된 등기도 많다. 그러다 보니 내가 대구지방변호사회의 특별관리대상이 됐다. 특정 사건 수임이 다른 변호사에 비해 일정 비율 이상이면 관리 대상이라고 하더라.
다만 금액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다. 건당 10만원 미만의 소액 사건도 많고, 이러한 등기 업무를 100건 한다 해도 오히려 소송 1건 맡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백 변호사로 인해 울릉도에 생긴 변화를 '등기 업무 맡을 변호사가 생겼다'는 정도로 말하긴 어려웠다. 그는 어떤 변화가 생겼다고 판단할까.
"대단한 변화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과거엔 무슨 일이 생기면, 육지로 나가야 했다. 그러니 법으로 따져볼 엄두를 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급한 일이 생기면 외부로 나가지 않아도 법적 조언을 들을 수 있다. 마치 응급처치하듯 내게 먼저 문의하고, 나름 준비한 뒤 육지로 가는 경우도 많다. 사실 그 문의라는 게 간단한 내용이 많긴 하다. 그런 경우엔 상담료도 안 받는다."

사실 울릉도가 작은 사회고, 백승빈 변호사가 이곳에서 6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그의 존재를 모르는 주민은 분명히 있다. 그래서 백 변호사는 사무소 밖에서도 주민들과 접촉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난 2017년, 무료법률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울릉군청에 찾아간 백 변호사. 그때부터 그는 주민들에게 줄 빵과 우유를 사 들고 울릉읍사무소 등으로 가 무료법률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같은 사건의 당사자인 A씨와 B씨가 모두 나를 찾아와 사건을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A씨 말을 들은 상태이기 때문에, 나중에 찾아온 B씨에게는 '죄송한데 A씨가 먼저 찾아와서 도와드리기 어렵다'고 솔직히 말한다. 비일비재한 건 아니지만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한 손님이 'C씨를 상대로 소송 등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C씨가 내 지인인 적도 있었다. 당연히 그 손님은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문의한 거다. 그럴 때도 솔직하게 상황을 말해준다. 대신 '내가 C씨한테 연락해서 잘 해결하라고 중재해보겠다'는 식으로."
"멀미 때문에 배 타고 나가는 게 힘들다. 울릉도에 온 지 6년이 지났지만 멀미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항상 약을 단단히 챙겨 먹고 배에 오른다. 사실 재판에 참석 못하는 경우도 많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파도가 심해 배가 안 뜨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재판에 참석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울릉도 주민들의 감이 무섭다. 여기 어르신들은 바람을 느끼고 배가 뜰 수 있을지 여부를 맞춘다. 꽤 잘 맞는 편이라, 참고해서 배편 예약을 한다."
"드물지만 그럴 때는 포항지원 근처에 있는 다른 변호사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아니면 법원에 서면 연기 신청서를 내는 방법도 있다. 감사하게도 판사님이 먼저 '혹시 배가 뜨지 않아 못 나올 경우 연락주면 조치해주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

"처음으로 법정에 나갔던 사건이다. 당시 의뢰인이 선박 가압류를 풀어달라고 찾아왔다. 이의 신청을 해서 결국 해결해드렸는데 엄청 고마워했다. 보수를 떠나 그것만으로 보람이 있더라."
"밥벌이는 한다. 다만, 작년에서야 마이너스를 털어냈다. 학자금이나 초기 울릉도 정착 비용 등 빚이 많았는데, 이제 끝냈다."
"생존을 떠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내 경우 좋아하는 만화책이나 게임기 등을 살 수 있는 상황은 됐다. 어릴 때만 하더라도 갖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못 샀던 물건들이다. 그때 생각하면 '내가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 점에 만족하고 지낸다."
지난 10월 기준 주민등록상 울릉군 주민은 9013명. 주민 1만명당 변호사 수는 1.1명이다. 앞서 언급한 우리나라 전체 기준(인구 1만명당 변호사 수 5명)을 맞추려면 울릉도는 변호사 4명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다른 무변촌도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필요할 수 있다. 그러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일단 개인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변호사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냉정하게 보면 이를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병원을 지어주거나 의료 인력을 지원하는 의료 시스템 구축과도 다르다. 사람의 생사가 달린 문제는 아니지 않나.
다만 지자체 등에서 저렴하게 사무실 등을 대여해준다면, 변호사들이 무변촌행을 결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을 테니까. 대신 그런 혜택을 주고, 의무적으로 법률봉사활동을 하도록 하거나 해 그 지역 주민들이 법률서비스 도움을 받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처음 울릉도에 왔을 때 어려움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는 사람도, 사건도 적다 보니 변호사로서 다룰 수 있는 사건이 한정돼 있다. 다양한 사건을 경험할 기회가 적다는 점이 아쉽고, 전문성을 쌓는 데 한계가 있지는 않을지 고민이 되긴 한다."
"내가 나가면 울릉도는 다시 무변촌이 되지 않나. 후임자는 구해놓고 나갈 거다. 울릉도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가도 그냥은 안 나간다'고 줄곧 말해왔다. 그 시점도 울릉도에 첫 공항이 생긴다고 했던 2022년으로 잡아놨었다. 그래서 5년간 있겠다고 했던 거다. 울릉도 1호 공항에서 1호 변호사가 비행기 타고 나가는 생각을 하면서(웃음).
그런데 공항은 빨라도 오는 2025년이 돼야 만들어진다고 하고, 무엇보다 울릉도에 오겠다는 변호사가 없다. 그냥 나가버리면 주민들은 예전처럼 법적 도움을 받기 어려워질 테고, 이런 상황을 뻔히 알아서 마음에 걸린다. 울릉도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는 한 남아 있을 거다."

"말리고 싶다(웃음). 그럼에도 내가 무변촌행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는데 참고가 될 것 같다. 어디선가 본 글이다. 물고기 한 마리가 길에서 파닥거리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다급히 물을 요청했다. 그러자 나그네가 하는 말이 '도시의 큰 강에 가서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올게'였다. 이에 물고기가 뭐라고 했냐면 '지금 당장 물 한 바가지라도 있어야 살 수 있다고요'라고 했다.
나는 그 '물 한 바가지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 누군가 아주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한 바가지의 물로라도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응급 처치하듯 도움을 줄 수 있는 변호사. 무변촌에는 그런 변호사가 필요하다. 사실 변호사는 그 존재만으로도 무변촌에 큰 도움이 된다. 점점 변호사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법원 앞으로 몰리지 않나. 그 변호사들은 수많은 변호사 중의 한 명일 뿐이지만 무변촌에서는 정말 필요한 변호사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자부하고 있다."
로톡뉴스는 백승빈 변호사에 대한 실제 지역의 반응은 어떨지도 궁금했다. 이에 백 변호사가 고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울릉군청에 문의했다. 김재현 울릉군청 기획감사실 주무관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다. 김 주무관은 군의 자치 조례 개정 등 법률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군 내에서 민원 갈등이 생기거나 행정 집행을 할 때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고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백승빈 변호사를 고문 변호사로 위촉하기 전에는 내륙(포항 등)에 있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울릉도의 실정을 잘 모른 채 자문이 이뤄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니 민원인이 쉽게 납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현장을 직접 봐야 하는 사안도 있는데, 육지에서 들어오려면 배 때문에 날씨도 고려해야 하고. 그러니 일정을 길게 잡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그와 달리 백승빈 변호사의 경우 울릉도에 살고 있고 이곳 특성을 잘 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고 군청 입장에서도 여러 도움을 받고 있다."
"주민들 역시 법률적인 일을 처리하려면 배 타고 나가야 하고, 포항에서 최소 1박이라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법률적 자문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울릉도에 상주하는 변호사가 생겼으니 단절된 환경일지라도, 바로바로 자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주민들 반응이 좋은 게 아닐까 싶다.
또한 변호사는 권위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백승빈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 백승빈 변호사가 있어서 쉽게 자문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도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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