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잘못해도 책임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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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잘못해도 책임이 없나?

2022. 11. 18 12:15 작성
정형근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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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의뢰인의 법률사건을 맡아서 처리해 주는 대가로 받은 보수(수임료)로 생활한다. 변호사법은 의뢰인을 ‘당사자와 그 밖의 관계인,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그 밖의 공공기관’이라고 예시하고 있다. 이 범위에 들지 않는 사건당사자의 친구라 할지라도 좋은 변호사를 소개해 줄 수도 있다. 소개해 준 대가를 받지 않으면 누구든지 훌륭한 변호사를 도움이 필요한 분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각종 인연으로 변호사는 의뢰인을 만난다. 그리고 의뢰인의 법률사건을 처리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다했어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조금 전까지 좋았던 관계가 이내 냉각될 수 있다.


법률사건이 재판까지 하였다면, 대개는 승소판결을 받거나 패소판결을 받기 때문에 어느 한쪽 당사자는 재판결과에 불만일 수밖에 없다. 재판에 불복할 때 상급심의 재판을 다시 받을 수 있도록 3심제를 두고 있지만, 앞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지라도 일단 나쁜 결과를 받은 의뢰인은 낙담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재판을 하여왔던 자신의 대리인이었던 변호사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런 불만을 맘속에 품고 드러내지 않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나쁜 결과가 초래된 것을 변호사의 잘못으로 돌리고 시비를 하기도 한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를 이어주는 끈은 신뢰관계이다. 우리 민법은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관계를 위임계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신뢰관계가 깨지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도록 위임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한다.


대부분의 계약은 한번 체결되면 함부로 해제나 해지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격언도 있다. 그러나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위임계약은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언제든지 자유롭게 해지할 수 있다. 물론 수임약정을 할 때 해지를 임의로 할 수 없도록 특약을 할 수 있다. 아무튼 변호사와 의뢰인의 존속관계가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라는 특성 때문에 그 신뢰가 무너지면 무서운 불신관계로 변할 수 있다. 그 어떤 사이보다 차가운 말이 오갈 수 있다. 서운하다는 말을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변호사를 공갈과 위협을 하기도 한 사례도 있다.


대법원이 1972년에 선고한 판결 중에는 변호사 법률사무소에서 발생한 사건 내용이 나와 있다(대법원 1972. 1. 31. 선고 71다1688판결 [약속어음금]). 판결 내용을 요약한 판시사항을 보면, 변호사 사무실에서 농성함은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 요로에 비행을 진정하겠다는 등 공갈과 위협을 하면서 업무수행을 방해함을 강박으로 인정한 사례라고 되어 있다. 보다 자세하게 판결 내용을 기재한 판결요지를 읽어보면 그 사건 내용이 나온다.


변호사인 피고의 잘못으로 패소하였고 또 항소기간에도 도과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피고의 사무실에서 농성함은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요로에 피고의 비행을 진정하겠다는 등 온갖 공갈과 위협을 하면서, 피고의 업무수행을 방해하므로 피고가 하는 수 없이 손해배상금조로 약속어음을 발행하였다면, 이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서 취소할 수 있다 할 것이다.


판결이 선고된 해가 1972년이니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다. 그런데 그 사건 내용이 오늘날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의 모습과 차이가 없다. 물론 이 사건에서 변호사가 잘못하여 의뢰인이 불만을 가질만한 사정은 있다. 변호사가 1심을 맡아서 86만원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지만 패소하였다. 원고는 항소하여 다투기를 원했다. 그런데 변호사는 항소기간 안에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아서 더 이상 다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게 1심 판결이 확정되자 그 변호사는 86만원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하기로 원고(의뢰인)와 합의를 하였다. 변호사의 잘못으로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 금액을 그 변호사가 전부 물어내겠다는 합의를 한 것이다. 그날 변호사는 현금 5만원을 일단 지급하였고, 나머지 액수인 81만원에 대해서는 약속어음을 발행해 주었던 것 같다. 위 대법원 판결에는 변호사가 손해배상을 해주기로 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원고였던) 소외 1은 1968.11.20 소외 4와 함께 피고의 사무실을 찾아와서 피고의 잘못으로 위 손해배상 사건에 패소하였고, 항소도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피고가 이로 인한 위 사건의 청구금액인 전 손해를 배상하지 아니하면 피고의 사무실에서 농성함은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요로에 피고의 비행을 진정하겠다는 등 온갖 공갈과 위협을 하면서 피고의 업무수행을 방해하므로 같은 날 17:00경 피고는 하는 수 없이 위 소외인들의 강박에 이기지 못하여 동인들에게 손해배상금조로 현금 50,000원을 지급하면서 이건 약속어음을 발행하였으나, 그 후 1969. 2. 20 변론기일에 위 손해배상 약정은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취소한 바 있음을 엿볼 수 있으므로, 소외 1과 피고 간의 위 손해배상 약정은 무효로 되었다 할 것이므로, 원고의 예비적 청구도 이유없다하여 배척하였는바, 위 판시는 정당하다 할 것이고, ···


원고가 지인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와서 변호사의 잘못으로 재판도 이기지 못하였고, 항소까지도 못하게 되었으므로 재판에서 청구하였던 금액 전부를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얼마나 험악한 분위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무실을 찾아가 온갖 공갈과 위협을 한 때가 1968년 11월 20일이라서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그러니 변호사의 잘못을 청와대와 권력기관에 진정을 하겠다고 한 것 같다. 그래서 변호사는 현금 5만원과 약속어음을 발행해 주어 더 험악한 사태를 모면하였다. 만약 변호사가 저렇게라도 해주지 않았다면 무슨 험한 일을 당했을는지 모른다. 변호사는 나중에 손해배상금조로 약속어음을 발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로 행한 것이라서 취소한다는 재판을 청구하여 승소하였다.


물론 변호사가 항소시간을 지키지 못하여 항소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은 잘못이다. 그런 경우에 법원은 변호사의 잘못에 대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독특한 법리를 적용하고 있다. 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를 하거나, 항소심 판결에 대하여 대법원에 상고를 하려는 경우에 항소기간을 도과하거나, 상고이유서를 제출해야 하는 날짜를 어겨 상고심 재판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경우에는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승소’를 하였을 것이라는 점에 관한 입증을 요구한다. 항소나 상고를 하였으면 승소했을 것이라는 사정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패소할 사건이라면, 항소나 상고를 해도 승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런 입장을 오래전부터 유지하고 있다.


소송대리인의 항소 기간도과로 인하여 입은 손해액의 범위는 적법히 항소를 제기하였더라면 어느 정도 유리하게 변경될 수 있었을런지를 심리하여 결정함이 옳다(대법원 1972. 4. 25. 선고 72다56 판결 [손해배상]).


원심은, 전소송의 항소심에서 패소한 원고로부터 상고사건을 수임한 변호사인 피고가 수임사건을 태만히 하여 상고이유서제출기간 내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지 아니하여 원고의 상고가 기각됨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이 사건에 관하여 피고가 전소송의 상고이유서제출기간 내에 상고이유서를 제출하였더라면 원심판결이 취소되고 원고가 승소하였을 것이라는 점에 관한 입증이 없다고 하여 원고의 청구를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는바,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은 기록에 비추어 정당한 것으로 보이고 거기에 인과관계 및 민사소송법 제399조의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5. 5. 12. 선고 93다62508 판결 [손해배상(기)]).


다만, 상급심 재판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여 재판청구권 행사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에 대한 위자료는 인정된다.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 소송의뢰인에게 상고제기기간을 잘못 고지하는 바람에 소송의뢰인이 상고제기기간을 도과하여 상고의 기회를 잃게 한 경우, 수임변호사는 이로 인하여 소송의뢰인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1,500만원을 위자료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대법원 1997. 5. 28. 선고 97다1822 판결 [손해배상(기)]).


문제는 변호사가 자신의 잘못으로 상급심 재판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의뢰인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한 경우에 난처한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장님! 어차피 이 사건은 재판에서 승소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 잘못으로 항소를 하지 못했다고 하여 의뢰인에게 손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의 소는 기각해야 합니다.”


변호사는 이렇게 주장하고 입증해야 손해배상책임을 면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뢰인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 것인가!


“아니! 이길 수 없을 거 같으면 처음부터 사건수임을 하지 말았어야지, 이기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 사건을 맡았습니까? 결국 수임료만 챙기려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변호사가 항소기간을 도과하거나, 상고이유서를 제출해야 하는 날짜를 어겨 상고심 재판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경우에 그 사건이 승소할 수 있었을 것으로 인정될 때 변호사는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한 판례는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승소할 수 없으면 패소할 것이라서 손해가 있다고 할 수 없으니, 변호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적·관념적이다. 항소심이나 상고심 재판이 실제로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다른 재판부가 뒤늦게 변호사 잘못으로 확정되어 버린 사건의 재판결과를 예상한다는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의뢰인이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재판하는 재판부가 이미 확정되버린 재판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피해자인 의뢰인은 자신의 사건이 항소심이나 상고심에서 ‘승소’를 하였을 것이라는 입증을 해야 한다. 그러니 변호사의 잘못에 대하여 법원이 관대한 법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은 하지 않고 변호사와 직접 해결하려고 법률사무소를 찾아 농성을 하는 등의 행위도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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