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300억, 줬어도 무효"…대법, 최태원 이혼 소송 2심 판결 뒤집은 법리는?
"노태우 300억, 줬어도 무효"…대법, 최태원 이혼 소송 2심 판결 뒤집은 법리는?
"불법 비자금은 기여분 안 돼"
대법, 줬는지 여부 따지지도 않고 2심 판결 핵심 논리 파기

최태원 회장(왼쪽)과 노소영 관장 모습. /연합뉴스
사상 최고액인 1조 3808억 원의 재산분할 판결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이 대법원에서 파기되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의 핵심 근거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지원'에 대해, 설령 그 돈이 오갔다 하더라도 불법적인 자금인 이상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665억 vs 1.4조…천당과 지옥 오간 1·2심
이번 이혼 소송의 최대 쟁점은 단연 재산분할 액수였다.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손수호 법학박사는 1심과 2심의 극적인 차이를 먼저 짚었다.
1심은 재산분할 665억에 위자료 1억을 선고했지만, 2심에서는 재산분할액이 무려 1조 3808억 원으로 치솟고 위자료도 20억으로 상향됐다. 손 박사는 "위자료 20억도 다른 사건에 비하면 엄청나게 큰 액수"라며 2심 판결의 파격성을 설명했다.
이처럼 액수가 20배 이상 불어난 이유는 2심 법원이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약 2조 원 가치)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부부가 결혼 후 함께 일군 '공동재산'만 나누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쪽이 결혼 전부터 가졌거나 상속·증여받은 '특유재산'이라도 상대방이 그 재산을 유지하거나 늘리는 데 기여했다면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손수호 박사는 "특유재산이라도 일방이 노력을 해서 그 재산의 감소를 방지하거나 증식에 기여한 경우 재산분할 대상으로 본다"며 "바로 이 기여도에 대한 판단이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에서 엇갈린 것"이라고 핵심을 짚었다.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기여를 폭넓게 인정해 SK㈜ 주식을 공동재산으로 판단했고, 이것이 천문학적인 재산분할액의 출발점이 됐다.
"줬다" vs "안 받았다"…300억 비자금 진실 공방
2심 재판부가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한 결정적 근거는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이었다. 1991년 SK그룹(당시 선경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사돈인 SK 측에 300억을 지원했고, 이 돈이 그룹 성장의 '시드머니'가 됐다는 논리였다.
이 300억의 존재를 두고 양측은 치열하게 맞섰다.
노소영 관장 측 "300억 지원은 사실"
노 관장 측은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메모와 약속어음 뭉치를 결정적 증거로 제출했다.
손수호 박사에 따르면, 김 여사가 보관하던 '선경 300억'이라고 적힌 봉투 안에는 선경건설이 발행한 50억짜리 약속어음 6장이 들어있었다. 이는 비자금 300억을 건넸다는 명백한 물증이라는 주장이었다.
최태원 회장 측 "받은 적 없다"
최 회장 측은 "억울하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손 박사는 최 회장 측 주장을 이렇게 전했다. "문민정부 시절 대대적인 비자금 수사에서 SK는 처벌받지 않았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노태우의 사돈인 SK를 봐줄 이유가 없었는데도 증거가 없었던 것"이라는 주장이다.
약속어음에 대해서도 "비자금을 받고 써준 영수증이 아니라, 정권 실세들의 자금 요구에 못 이겨 퇴임 후 활동비 명목으로 마지못해 발행해 준 것"이라고 반박했다.
대법원 "설령 줬다 해도, 불법 자금은 기여 아니다"
이처럼 '줬다, 안 줬다'를 두고 첨예하게 다퉜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예상 밖의 지점에서 나왔다. 손수호 박사는 "대법원은 300억을 받았는지 여부를 따지는 판단을 건너뛰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노태우가 최종현에게 300억을 지원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라고 가정하면서, "그러한 행위가 내포한 불법성, 반사회성이 현저해 보호 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노소영 관장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하면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뇌물로 조성된 비자금을 '불법 원인 급여'(민법 제746조)로 본 것이다. 손 박사는 "도박 자금이나 성매매 대가처럼 법질서에 반하는 돈은 돌려받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라며 "불법 비자금을 재산 형성 기여로 인정해 돌려받게 해준다면 법률 전체의 이념에 반한다고 본 것"이라고 해설했다.
300억 원의 실체를 따지기에 앞서, 그 돈의 성격 자체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검은돈'이라고 규정해버린 셈이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2심이 재산분할 대상으로 포함했던 '최 회장의 1조 원대 사전 증여분'에 대해서도 법리 오해가 있다며 파기했다.
이제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으로 돌아가 파기환송심을 거치게 된다. 손수호 박사는 "300억 지원이 기여로 참작될 수 없고, 1조 원대 증여도 포함될 수 없게 된 만큼, 지난 1심 판결(재산분할 665억)과 유사한 수준에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