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청년경찰' 화해 권고가 혐오 표현을 걷어낼 계기? "아직은 힘들다"
영화 '청년경찰' 화해 권고가 혐오 표현을 걷어낼 계기? "아직은 힘들다"
영화 '청년경찰' 제작사, 조선족 동포와 법적 분쟁⋯ "조선족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1심, 영화상 '표현의 자유' 인정⋯2심, "제작사가 사과하라" 화해권고결정
변호사가 본 이번 화해 결정이 영화 속 '혐오 표현' 걷어낼 계기가 되기 힘든 이유 세 가지

영화 '청년경찰'을 둘러싸고 2년 넘게 이어진 다툼이 법원의 '화해권고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영화 '청년경찰' 포스터⋅셔터스톡⋅편집=이지현 디자이너
영화 '청년경찰'을 둘러싸고 2년 넘게 이어진 법정 다툼. 영화에서 조선족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됐다며 조선족 동포들이 제작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었다.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갈등은 지난 3월, 법원이 '화해권고결정'을 내리며 마무리됐다. "제작사가 사과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결정은 "외국인 집단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면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한 사법부 최초의 판단이었다. 지난 4월, 제작사는 원고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법원의 결정이 알려지자 "앞으로 영화에서 혐오 표현을 걷어내는 계기가 될 결정"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그건 섣부른 예측"이라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화해권고결정'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다른 '숨은 의미'들이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은 화해권고결정이라는 형식과 그 내용을 뜯어보면 상당히 제한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영화 개봉 4개월이 지났을 때인 지난 2017년 12월. 당시 대림동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들과 지역 주민 60여명이 "인종차별적인 영화로 인해 사회생활에 지장에 생기는 등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영화 제작사 '무비락'을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박남천 부장판사는 "관객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이 혐오스러운 조선족 집단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들과 범행에 관여한 조선족 배역을 연관 지을 묘사도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즉 영화에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없다는 취지였다.
사실 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너그럽게 인정해 주는 편이었다. 법률사무소 오페스의 송혜미 변호사는 "영화 속 표현과 표현으로 인한 편견에 대해 법원은 가급적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그 예로 영화 '실미도'를 들었다. 실제 존재했던 '실미도 684부대원'을 모티브로 한 영화에 대해 실제 부대원들의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유가족 측은 "희생자(영화 속 부대원)들을 범죄자 등으로 묘사해 고인과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감독과 제작사를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7월 15일, 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인 경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차 망인이나 그 유족의 명예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또는 표현의 자유가 보호돼야 한다"며 "영화 제작진이 상업적 흥행 등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다소간 각색하는 것은 의도적인 악의의 표출에 이르지 않는 한 상업영화의 본질적 영역으로 용인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기회의 김완수 변호사도 "실제로 영화 시장에서 제작자가 처벌을 받는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며 "창작 활동에 엄격한 진실을 요구할 수 없고, 이를 지나치게 요구하면 표현의 자유가 훼손된다는 측면의 판단이었다"고 했다.
법률 자문

그러나 영화 '청년경찰'로 불거졌던 갈등은 화해로 매듭지어졌다. 서울중앙지법 제9-2민사부(재판장 정철민 부장판사)가 '화해권고결정'을 내린 것이다. 화해권고결정은 소송당사자가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르지 않을 때, 법원의 판단으로 화해를 권고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제작사는) 본의 아니게 조선족 동포에 대한 부정적 묘사로 인해 불편함과 소외감 등을 느꼈을 원고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라"며 "영화를 제작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반감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혐오 표현은 없는지를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고에게는 손해배상소송청구를 그만할 것을 권고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영화 일부에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담은 허구 사실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원고에게 구체적으로 정신적 손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이에 대해 김완수 변호사는 "제작사에 대해 제재를 가하려는 판결은 아니지만, 구체적 손해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청구기각이 아닌 화해 권고를 통해 원고의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는 점에 재판부의 고민의 흔적이 보여진다"며 "영화 제작자들로서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집단이나 개인의 명예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에서는 '혐오'적인 표현이나 묘사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걸까. 법률사무소 서약의 신성현 변호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을 모든 사안에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다.
① 판결이 아닌 화해 권고결정 형식 택한 이유
신 변호사는 "법원이 판결이 아닌 화해권고결정의 형식으로 마무리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법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이고, 여기에 예술의 자유까지 고려하면 그 중요성이 한층 더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판결이었다면 "영화사가 잘못했다"는 점이 훨씬 더 부각됐겠지만, 그럴 경우 표현⋅예술의 자유가 더 크게 침해될 수 있었을 테니 다소 완충적인 방법으로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김완수 변호사도 "형사법적인 측면에서 표현의 자유를 통한 창작 활동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표현의 자유 또는 창작 활동이 절대적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② "사실을 표현했다면 문제 없다"는 뜻을 내포한 결정
재판부는 결정문에 "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담은 허구의 사실이 포함됐다"고 판시했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부정적 묘사가 진실한 사실일 때는 이런 화해권고결정조차도 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특정 집단이 영화에서 범죄자로 묘사되더라도,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있다면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이번 사안의 경우는 법원이 "조선족은 범죄자"라는 등의 내용을 '허구'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③ 여전히 인정받기 어려운 정신적손해 배상책임
또한, 신 변호사는 "추후 비슷한 사안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손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원고들에게 구체적으로 정신적손해가 발생했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한 부분 때문이다.
이 부분은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정신적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원고들이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꼈으니 사과하라'는 취지다. 즉 '정신적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했고, 이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번 결정 취지대로라면 정신적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