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디카는요?" 바다에 빠진 카메라가 잡아낸 보성 연쇄살인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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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 디카는요?" 바다에 빠진 카메라가 잡아낸 보성 연쇄살인범

2025. 07. 02 16:33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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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학생 커플·간호사 등 4명 살해한 69세 오종근 사망

"70세 늙은이가 어떻게 죽이나" 뻔뻔한 거짓말로 일관

바다서 건진 디지털카메라 메모리카드가 결정적 증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우리 딸이 어딜 가든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그 카메라를 찾으면 증거가 나올 거다"


2007년 전남 보성 앞바다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오종근(1938년생)이 작년 7월 교도소에서 병사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당시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87세로 생을 마감한 오종근은 우리나라 최고령 사형수였다.


19세 대학생 커플 실종⋯처음엔 "동반자살"로 결론

손수호 변호사는 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보성 어부 살인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설명했다.


2007년 8월 31일, 19세 대학생 1학년 남녀커플이 보성으로 여행을 갔다가 연락이 끊겼다. 선착장으로 걸어가는 CCTV 영상이 확인됐고, 여학생이 4차례나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5~8초 정도의 짧은 통화에서는 선박 엔진음만 들렸다.


실종 4일째인 9월 3일 여성 시신이 바닷가로 떠밀려 왔고, 이틀 뒤 남성 시신도 발견됐다. 하지만 시신이 심하게 손상된 상태였고 타살의 증거를 찾지 못해 해경과 경찰은 동반자살로 결론지었다.


한 달 후 또 다른 여성 2명 실종⋯이번엔 타살 흔적 발견

그런데 한 달 뒤인 9월 25일, 20대 초반 간호사와 회사원 여성 2명이 또 실종됐다. 다음날 시신들이 발견됐는데, 이번에는 찔리고 찍힌 자국, 목 졸린 흔적 등 명백한 타살의 증거가 발견됐다.


경찰은 8월 사건에 이은 연쇄살인을 의심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휴대폰 문자가 남긴 결정적 단서

수사의 실마리는 뜻밖의 곳에서 나왔다. 두 번째 사건의 피해자 두 여성이 오종근의 배에 타기 직전, 옆에 있던 30대 여성 조씨가 이들로부터 휴대폰을 빌려 남편과 통화를 했다.


몇 시간 후 조씨의 남편에게 긴급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희 아까 전화기 빌려드린 사람인데요. 배 타다가 갇힌 것 같아요. 경찰 보트 좀 불러주세요"


띄어쓰기도 없이 급박하게 쓰인 이 문자로 경찰은 그날 출항했다가 들어온 배를 찾기 시작했다. 단 한 척, 오종근이 소유한 1톤짜리 무등록 주꾸미잡이 배만이 해당됐다.


배 내부에서 피해자 물품 발견⋯오종근 긴급체포

경찰이 배 내부를 수색한 결과 피해자의 신용카드, 볼펜, 머리끈, 머리카락 등이 발견됐다. 집에서 붙잡힌 오종근은 처음엔 "70세 힘없는 늙은이가 어떻게 젊은이들을 죽일 수 있냐"며 뻔뻔하게 부인했다.


2차 범행의 증거가 나오자 "한 명이 먼저 실수로 물에 빠졌고, 구하려던 여성도 물에 빠져 죽었다. 나는 신고 안 한 잘못밖에 없다"고 둘러댔다. 시신에서 타살 증거가 발견되자 어쩔 수 없이 2차 범행까지는 인정했지만, 여전히 대학생 커플 1차 범행은 모른다고 버텼다.


기적처럼 발견된 디지털카메라⋯바다 속 2개월 만에

그때 1차 범행 여성 피해자의 아버지가 중요한 증언을 했다. "우리 딸이 어딜 가든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그 카메라를 찾으면 증거가 나올 거다."


바다 한가운데 빠진 디지털카메라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사건 발생 2개월 만에 인근 어부가 꼬막을 잡으려고 쳐놓은 그물에 디지털카메라가 걸린 것이다.


물에 젖은 메모리카드 복원 성공⋯오종근 사진 발견

두 번째 기적이 이어졌다. 두 달간 바닷물에 잠겨 있던 디지털카메라 안의 메모리카드를 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사진 50여 장을 복원했고, 그 중에는 오종근을 찍은 사진 2장도 들어있었다.


1차 범행 커플을 배에 태우지 않았다던 오종근의 뻔뻔한 거짓말이 완전히 깨진 순간이었다.


"성적 욕구 충족 위해 가차없이 살해"⋯사형 확정

오종근의 범행 동기는 오직 성욕이었다. 특정 신체 부위에 집착하며 추행을 시도하다가 저항하는 피해자들을 '학갓대'(갈고리 달린 긴 막대 형태의 어업도구)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1차 범행에서는 대학생 커플을 배에 태운 후 여성을 추행하려다 방해가 되는 남성을 먼저 바다에 밀어 빠뜨리고 학갓대로 살해했다. 이어 공포에 떨던 여성도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


2차 범행은 더욱 계획적이었다. 추석을 맞아 여행 온 두 여성을 의도적으로 인적 드문 선착장으로 데려가 추행을 시도하다가 저항하자 모두 살해했다.


법원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피해자들을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가차 없이 살해한 지극히 반사회적이고 포악한 범행"이라며 사형을 선고했다.


17년간 사형 미집행⋯최고령 사형수로 병사

오종근은 2010년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리며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연합뉴스


오종근은 항소심에서도 입장을 바꿔가며 저항했다. 다시 살인을 부인하고,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심지어 사형제 위헌법률심판 제청까지 신청했다.


하지만 2010년 헌법재판소가 5대 4로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이후 14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채 교도소에서 지내다가 작년 7월 만 86세로 병사했다.


현재 사형 확정자는 56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며 교도소에서 일반 복역도 하지 않은 채 대기 중이다.


손수호 변호사는 "사형 선고를 할 거면 집행까지 하거나, 아니면 사형제를 폐지하든가, 대안으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만들든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종근의 죽음으로 다시 한번 우리 사회의 사형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남긴 "우리 딸 디카는요?"라는 간절한 한마디가 진실을 밝혀냈지만, 14년간 집행되지 않은 사형이 과연 정의였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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