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준다더니 현장서 딴소리"… 구두 계약, 녹음 없으면 '휴지조각' 될 수도
"깎아준다더니 현장서 딴소리"… 구두 계약, 녹음 없으면 '휴지조각' 될 수도
구두 약속도 계약이지만 '입증' 못하면 무효
계약서 '특약 문구' 확인 필수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부동산 매매나 고액의 물품 거래 과정에서 "가격을 깎아주겠다"는 판매자의 구두 약속을 믿고 계약 현장에 나갔다가, 막상 서면 계약 체결 시 상대방이 말을 바꾸는 사례가 빈번하다.
구두로 합의된 내용은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일까, 아니면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할까. 법원은 원칙적으로 구두 계약의 성립을 인정하지만, 이를 입증할 물증이 없거나 서면 계약서에 상반된 조항이 있다면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말 한마디도 계약"… 법적 효력은 인정되나
우리 민법은 계약 체결에 있어 특별한 방식을 요구하지 않는 '불요식 계약'을 원칙으로 한다. 즉, 종이 계약서가 없더라도 당사자 간의 의사표시가 합치한다면 구두 약속만으로도 계약은 유효하게 성립한다.
대법원 역시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쌍방 당사자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의사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일치하여야 한다"고 판시하며, 이는 구두 계약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보았다(대법원 2012. 4. 26. 선고 2010다10689,10696 판결). 따라서 판매자가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했고 구매자가 이에 동의했다면, 이론적으로는 계약 내용 변경에 대한 합의가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증거 없으면 패소"… 입증 책임의 냉혹한 현실
문제는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었을 때의 '입증 책임'이다. 법원은 구두 약정의 존재를 주장하는 측에게 엄격한 입증을 요구한다.
실무상 단순히 "약속을 들었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춘천지방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구두 약정이 있었음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2015. 1. 13. 선고 2014가단4531 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역시 비슷한 취지로 구두 약정의 효력을 부정한 사례가 있다(2016. 7. 8. 선고 2015가단140544 판결).
결국 녹음 파일이나 문자 메시지 등 객관적인 증거 없이 상대방의 변심에 대응하여 법적 책임을 묻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계약서 '특약 조항'의 함정… "구두 약정 배제" 문구 주의
특히 주의해야 할 점은 구두 약속 이후 작성되는 '서면 계약서'의 내용이다. 많은 표준 계약서에는 "본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구두 약정은 효력이 없다"는 취지의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판례에 따르면, 계약서에 "본 계약서에 기술되지 아니한 구두약정은 효력이 없다"는 문구가 명시된 경우, 법원은 구두 약속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3. 14. 선고 2022가단5341525 판결). 또한 분양 계약서 확인서란에 "구두 특약은 없음을 확인한다"는 기재가 있는 경우에도 구두 약정의 효력은 부정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2. 1. 선고 2023가단5056725 판결).
법원은 처분문서인 서면 계약서의 객관적 의미를 최우선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서면 계약 체결 시 구두로 약속받은 내용이 계약서 특약사항에 명확히 기재되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말 바꾸기 대응하려면… '즉시 기록'이 살길
전문가들은 구두 계약의 효력을 보호받기 위해 철저한 증거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사자 간 대화의 '녹음'이다.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가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며 적법한 증거로 인정된다.
또한 구두 약속 직후 문자 메시지나 이메일로 내용을 재확인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제주지방법원은 수차례 보낸 문자 메시지에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관련 행위를 한 점을 들어 계약 성립의 증거로 인정한 바 있다(2023. 4. 5. 선고 2022나10347 판결).
따라서 "깎아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면 즉시 "오늘 약속하신 대로 ○○원을 감액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라는 확정적인 문자를 보내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추후 발생할 수 있는 '오리발'을 막는 최선의 예방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