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49)] 내 사전에 판결선고는 없다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49)] 내 사전에 판결선고는 없다

2022. 04. 11 11:17 작성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지난 2016년 형법에 규정되어 있던 간통죄는 폐지되었다. 이제 간통을 해도 수사기관에 잡혀가서 조사받고 재판받을 일도 없게 되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른 아침 내가 출근하기도 전에 의뢰인이 먼저 사무실에 와 있었다. 손에는 두툼한 봉투를 들고 있었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따라 들어와서 봉투 내용물을 꺼내기 시작했다. 무슨 서류를 가져왔나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남녀가 옷을 벗고 있는 상태에서 원치 않게 찍힌 당황스러운 표정의 사진들이었다. 의뢰인은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진행 중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어서 지난 밤에는 뒤를 밟아서 모텔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였다고 했다. 그래서 112에 범죄신고를 하여 출동한 경찰관과 함께 방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카메라부터 들이대고 촬영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아침 일찍 급하게 사진을 인화하여 가져왔다. 배우자가 부정행위를 하였다는 확실한 증거라면서 수십 장도 넘는 그 사진을 전부 법원에 제출해 달라고 했다. 너무 민망한 모습의 사진이라 서너 장만 골라서 제출하자고 했다.


의뢰인은 간통죄가 폐지되기 전이었기에 배우자에 대한 간통 고소도 이미 해놓은 상태였다. 그 사진을 간통죄 형사 사건에도 제출한다고 했다. 그 영향인지 한참 후에 부정행위를 한 배우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구속 전에 법관이 피의자를 심문하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하는 날에 검사가 법정에 나와서 피의자의 구속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는 검사는 법정에 나오지 않던 때였기에 매우 이례적인 경우였다. 사회적 이목을 끄는 사건도 아닌 간통죄 피의자를 구속해야 한다고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영장담당 판사님도 검사에게 "간통 피의자를 구속시켜야 한다고 검사님이 법정까지 나올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가요?"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비아냥거리는 것도 같고, 진짜 궁금해서였는지 알 수 없다. 간통죄로 재판을 받으면 몇 개월 징역형이 선고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구속영장은 어김없이 발부되었다.


간통죄로 기소된 어느 피고인이 1988년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에서는 징역 8월이 선고되자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다. 피고인은 재판 중에 간통죄를 규정한 형법 제241조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헌법재판소는 1990년 간통죄는 합헌이라고 했다(헌재 1990. 9. 10. 89헌마82). 그때 내린 결정문을 다음과 같다.


선량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혼인제도의 유지 및 가족생활의 보장을 위하여서나 부부간의 성적성실의무의 수호를 위하여, 그리고 간통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사회적 해악의 사전예방을 위하여, 간통행위를 규제하고 처벌하는 것은 성적자기결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헌법 제36조 제1항의 규정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간통죄의 규정은 남녀평등처벌주의를 취하고 있으니 법 앞의 평등에도 반하지 아니한다.


이 합헌 결정이 나오고 10년이 지난 후에도 간통에 대한 형사처벌을 하여도 인간사회에 간통은 그치지 않았다. 간통죄를 범하여 재판을 받게 된 사람들은 다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으나, 다시 합헌 결정이 나왔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결론은 종전과 동일하였지만, 뭔가 큰 변화가 있는 듯한 언급을 하여 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이 부분을 살펴보기로 한다.


입법자로서는, 첫째 기본적으로 개인 간의 윤리적 문제에 속하는 간통죄는 세계적으로 폐지추세에 있으며, 둘째 개인의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내밀한 성적 문제에 법이 개입함은 부적절하고, 셋째 협박이나 위자료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넷째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대부분 고소취소되어 국가 형벌로서의 처단기능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섯째 형사정책적으로 보더라도 형벌의 억지효나 재사회화의 효과는 거의 없고, 여섯째 가정이나 여성보호를 위한 실효성도 의문이라는 점 등과 관련, 우리의 법의식의 흐름과의 면밀한 검토를 통하여 앞으로 간통죄의 폐지여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헌재 2001. 10. 25. 2000헌바60).


간통죄의 폐지 여부에 대하여 진지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확인하였다는 것은 간통죄의 근간이 어느 정도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 후 15년이 지난 2015년 2월 26일에 드디어 간통죄는 헌법에 위반된다는 위헌결정이 나왔다. 간통을 해도 형사처벌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위헌결정문은 아래와 같다.


사회 구조 및 결혼과 성에 관한 국민의 의식이 변화되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간통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고, 비록 비도덕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그다지 크지 않거나 구체적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추세여서 전 세계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고 있다.


또한 간통죄의 보호법익인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지, 형벌을 통하여 타율적으로 강제될 수 없는 것이며, 현재 간통으로 처벌되는 비율이 매우 낮고, 간통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난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낮아져 간통죄는 행위규제규범으로서 기능을 잃어가고, 형사정책상 일반예방 및 특별예방의 효과를 거두기도 어렵게 되었다. 부부간 정조의무 및 여성 배우자의 보호는 간통한 배우자를 상대로 한 재판상 이혼 청구, 손해배상청구 등 민사상의 제도에 의해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고, 오히려 간통죄가 유책의 정도가 훨씬 큰 배우자의 이혼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일시 탈선한 가정주부 등을 공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헌재 2015. 2. 26. 2009헌바17 등).


이처럼 위헌결정이 나오자 2016년 형법에 규정되어 있던 간통죄는 폐지되었다. 이제 간통을 해도 수사기관에 잡혀가서 조사받고 재판받을 일도 없게 되었다. 다만, 간통은 민법상 배우자의 부정행위가 되어 이혼사유가 되는 것은 종전과 마찬가지다.


내가 수임하였던 이혼사건을 처리하던 때는 간통죄를 처벌하던 때라 배우자는 당연히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제 이혼판결이 나오는 것은 확실하게 되었고, 위자료 액수를 결정하는 것에 관심이 모아졌다. 재판장은 그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였다. 오후 2시에 원고 본인과 함께 법원 조정실로 갔다. 그런데 의뢰인은 피고 측 사촌 동생이 판사로 있어서 분명히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잘 봐달라고 부탁을 했을 것이라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의뢰인의 예상처럼 재판장은 오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2시간 30분 동안 원고에게 위자료 500만원을 받고 이혼하는 것으로 하라고 했다. 권유가 아니라 완전한 강요였다. 원고가 그런 내용으로 조정할 수 없다고 하였음에도 재판장은 계속적으로 설득하기도 하고 겁도 주면서 집요하게 요구했다. 의뢰인은 결혼생활 10년이 넘도록 했고, 피고의 부정행위로 가정이 깨져서 이혼을 하는데, 판사는 위자료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돈 500만원을 받고 헤어지라고 강요했다. 판사는 2시간 30분 동안 집요하게 원고 본인을 설득시켰다. 고을에서 벌어지는 원님 재판이 바로 그런 거였다.


나는 그런 조건으로 조정할 수 없으니 판결로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재판장은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나에게 "원고 본인하고 이야기 할테니까 변호사님은 돌아가셔도 좋다"고까지 하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원고만 남겨놓고 조정실을 나올 수 없었다. 의뢰인이 조정에 들어오면서 피고 친척 중에 판사가 있어서 전화를 했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반 이혼사건에서 그렇게 무리하게 조정을 강요할 필요가 있겠는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이런 멋진 문구를 헌법에 규정해 놓았지만, 현장에서는 독단적인 재판을 하는 법관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사람 만나는 것도 복이라고 한다. 특히 판결문 쓰지 않고자 그런지 조정으로만 끝내려는 재판장도 보게 된다. 오후에 열린 어느 법정에 갔더니, 그 재판장은 거의 모든 사건을 조정으로 처리하려고 하였다.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나온 사건에서도 당사자 본인에게 지금 전화하여 조정할 의사가 있는지를 확인하라고 하였다. 의뢰인은 조정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변호사가 하였음에도, 재판장은 지금 당장 법정 밖으로 나가서 전화하여 다시 설득하라고 요구하였다. 심지어 당사자 본인을 지금 당장 법정에 출석시키라고 하기도 하였다. 어떤 사건도 판결로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너무도 분명했다. 다행히 얼마 후에 그 재판장은 법원을 떠났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