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탈의실서 남성 수리공과 알몸으로 마주쳤지만…배상금 '0원' 나온 이유
수영장 탈의실서 남성 수리공과 알몸으로 마주쳤지만…배상금 '0원' 나온 이유
수영장 측 관리 소홀 법원도 인정
'소멸시효 3년' 지나 패소

여성 탈의실에서 남성 수리공과 마주친 피해자가 수영장 측 과실을 인정받고도 소멸시효 완성으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했다. /셔터스톡
수영장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탈의실로 나온 순간, 천장에서 수리 작업을 하던 남성 수리공과 눈이 마주쳤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이 사건의 피해자 A씨는 극심한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렸고, 수영장 측을 상대로 7100만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수영장 직원들의 관리·감독 소홀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결론은 A씨의 '패소'였다. 대체 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일까.
여성 탈의실 천장에 남성 작업자가…법원 "수영장 측 책임"
사건은 지난 2021년 9월 2일, 모 주식회사가 운영하는 한 체육시설 수영장에서 발생했다.
샤워를 마친 A씨가 여성 탈의실로 나왔을 때, 천장에서는 남성 작업자가 수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탈의실에는 여성 미화원 2명이 있었지만, 이들은 탈의실에 사람이 없는지만 확인하고 샤워실 내부까지는 꼼꼼히 확인하지 않았다.
회원이 알몸으로 남성 작업자와 마주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충격을 받은 A씨는 즉각 현장 관리자를 불러 관련자들의 사과를 요구했다.
서울서부지법 정은영 판사는 수영장 측의 명백한 과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미화원들이 샤워실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 회원이 남성 작업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현장 관리자와 사용자(수영장 측)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울린 3년의 덫 '소멸시효'
가해자들의 책임이 명확히 인정됐음에도 A씨가 패소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시간이었다.
우리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해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 규정한다.
A씨가 이 사건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한 것은 사고 발생 후 3년 9개월이 지난 2025년 6월 12일이었다.
A씨 측은 "사고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상대방으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해 대응하느라 민사 소송을 제기할 여력이 현저히 곤란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법원의 잣대는 엄격했다. 재판부는 "사고 직후 관리자를 불러 사과를 요구했고, 다음 날 인터넷에 리뷰를 남겼으며, 이틀 뒤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은 점 등을 비추어 볼 때 사건 발생 즉시 손해와 가해자를 명확히 인식했다"고 짚었다.
즉, 사고 발생일부터 이미 소멸시효 계산이 시작되었고, 3년이 훌쩍 지났기에 배상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것이다.
억울함 호소하려 쓴 인터넷 폭로 글, '역고소' 부메랑으로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A씨는 소송 제기일 기준 3년 이내에 지출한 정신과 치료비라도 배상해 달라고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A씨는 사고 발생 직후 인터넷에 사건 내용을 수차례 게시했다가, 수영장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를 당해 결국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나아가 수영장 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감당해야 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명예훼손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피고들로부터 소송을 당해 계속 수사와 재판에 응해야 했던 정황이 있다"며 "2021년 10월 이후의 정신과 진료가 오직 수영장 사고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최초의 피해 사실이 인터넷 폭로 이후 벌어진 형사처벌 및 극심한 스트레스와 뒤섞이면서, 치료비와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마저 입증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결국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라"고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