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촉'이 1894명의 피해자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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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촉'이 1894명의 피해자를 찾아냈다

2021. 03. 19 12:20 작성2021. 03. 29 16: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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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park@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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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검찰청 '2020 올해의 수사관' 선정된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 정효진 수사관

피해자 1894명, 피해금액 523억의 대형 사건⋯수사에 기여한 공로

경찰에서 무혐의 났지만⋯"수사해야 한다"는 의지와 지검 지원으로 실체 밝혀

2년간 2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사람당 2800만원 꼴로 사기당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대부분 '무혐의' 처리를 했다. 서울동부지검 정효진 수사관이 맡은 사건도 전형적인 사건이 안 되는 고소 사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 수사관은 이전 사람들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박선우 기자

2년간 2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 사람당 2800만원 꼴로 사기당한 사건이 있었다. "대기업 정직원 택배기사로 취업시켜주겠다. 한 달에 500만원씩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은 사람들은 캐피탈 업체에 빚까지 지면서 사기꾼들이 지정하는 택배 차량을 구매했다.


알고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사기였다. 대기업 정직원이 아니라 대리점 택배 기사였고, 슈퍼맨이 아니고선 한 달에 200만원도 벌기 힘든 낙후 지역에 배치됐다. 그사이 대출 할부금만 꼬박꼬박 빠져나갔다.


전 재산과 다를 바 없는 돈을 잃게 된 피해자들은 앞다퉈 경찰을 찾았고, 언론에도 피해 사실을 제보했다. 수십 건의 사건이 접수됐고, 지상파 방송 9시 메인 뉴스에 여러 번 실렸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 사이 사기꾼 일당은 같은 수법을 계속해서 써먹었다.


지난 2019년 7월 30일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에 올라온 사건도 전형적으로 '사건이 안 되는' 고소건이었다. 최초 수사를 맡은 서울송파경찰서는 "피해자가 택배 기사로 취업시켜준다는 업체에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검토 결과 죄가 안 된다"는 의견을 붙여 보내왔다.


대검찰청 '2020 올해의 수사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서울동부지검 정효진 수사관이 동부지검 회의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세연 기자
대검찰청 '2020 올해의 수사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서울동부지검 정효진 수사관이 동부지검 회의실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세연 기자


검찰 입장에서는 경찰 의견(혐의없음)에 따라 종결해버리면 그만인 사건이었다. 실제로도 1년에 수천건이 이렇게 종결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정효진 서울동부지검 형사2부 검찰수사관(42·7급)은 다르게 움직였다.


Q.그냥 끝내면 사건 하나 쉽게 정리하는 건데, 굳이 사건을 파헤친 이유가 있나요?

"저도 처음엔 (경찰이 '혐의없음'으로 정리한 대로) 업체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피해자랑 통화는 해보고 종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더니 60대 고소인이 하염없이 사기였다고 호소하시더라고요. '업체가 처음에 대기업 일자리를 약속했다' '월 500만원 보장했다'와 같은 말씀이셨죠."


Q.곧바로 이상함을 발견하셨나요?

"아니요. 그때까지도 여전히 업체 쪽 말이 일리 있게 들렸어요. 사실 대리점이긴 했지만 취업을 한 건 맞고 알아보니 택배 기사 중에는 월 500만원을 버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긴 했어요. 벌이에 편차가 있었는데, 잘 버는 사람은 그 정도 벌었거든요. 결정적으로 고소당한 물류회사가 얻은 '이익'도 발견되지 않았고요."


사기죄는 상대방을 ①기망(欺罔⋅남을 속여 넘김)해 ②재산상의 이익을 취했을 때 성립한다. 그런데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물류회사가 고소인을 속였다는 점(①)도, 그들이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는 점(②)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정 수사관이 피해자의 이 말 '한 마디'에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제가 택배 트럭을 사면서 700만원 덤터기를 썼다'는 말을 하셨거든요. 트럭 개조비용은 (개조업체가 받는 돈이니) 물류회사의 이익이 아닌데, 피해자는 물류업체의 장밋빛 약속을 믿고 비싼 돈을 들여 트럭을 샀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항의하니 물류업체는 '나 몰라라'한다고 하셨고요."


물류업체와 개조업체의 역할이 나눠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들었다고 했다.


이러한 '그림'을 경찰이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도 정 수사관의 문제의식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Q.경찰은 왜 확인을 못 했던 걸까요?

"택배 시장의 인력구조에 훤한 업체들이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게 교묘히 둘러댔더라고요. 고수익을 올리는 택배 기사의 실제 '500만원짜리 월급명세서'를 경찰에 내밀며 500만원을 버는 게 맞다고 하는 식이었죠."


'여기 500만원 버는 사람이 실제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열심히만 하면 그들도 이렇게 벌 수 있는데, 노력하지 않은 것까지 어떻게 책임지느냐'고 주장하는 식이다.


Q.실제로 물류회사가 얻은 이익이 서류에 전혀 나타나지 않은 건가요?

"경찰이 택배 업계 전문가도 아니고 그 한 건의 사건을 조사하려고 택배 업자들을 모아 확인해볼 수도 없었던 거예요. 게다가 물류업체는 세부내역 없이 총액만 찍힌 세금계산서를 내밀면서 '(피해자가 개조업체에 낸) 2800만원은 택배 트럭 구입비 1600만원과 개조비용 1200만원을 합친 것'이라고 잡아떼니, 경찰이 더 나아가지 못했어요. 그들이 제시하는 '세금계산서' 상에 물류업체가 얻은 재산상 이익이 없었던 거니까요."


이에 대해 정 수사관은 "무혐의로 처리하기 좋은 밥상이 차려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2020 올해의 수사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서울동부지검 정효진 수사관. /박선우 기자
대검찰청 '2020 올해의 수사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서울동부지검 정효진 수사관. /박선우 기자


Q.그러면 바로 수사에 돌입하셨나요?

"아뇨. 이미 정해놓은 여름 휴가를 앞둔 시점이었어요. 일단 사건을 두고 휴가를 갔죠. 그런데 사건이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그 덤터기 썼다는 부분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찝찝함 때문에. 그런데 이상한 건 또 있었어요."


Q.무엇이 이상했나요?

"인터넷에 사건을 검색해봤더니 지상파 9시 뉴스에 비슷한 사례가 여러 차례 보도됐더라고요. 피해자가 하는 말도, 업체 측 변명도 비슷했어요. 결론도 하나 같이 무혐의였어요. 똑같은 사례가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발생하는데 똑같은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것도 이상했죠. 안 되겠다, 조사를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바로 담당검사에게 연락했어요. 휴가 끝내고 복귀해서 사건을 더 보겠다고."


Q.업무에 복귀해서 무엇부터 확인하셨나요?

"유사 사건을 싹 모아봤어요. 형사사법정보포털시스템에 관련 사건을 검색해보니까 50건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그랬더니 건별로 볼 때는 안 보이던 사기 패턴이 보였습니다."


Q.업체의 사기 패턴은 어땠나요?

"일자리가 필요한 피해자들에게 달성 불가능한 약속을 하는 거죠. 택배기사로 월 500만원 수입이 보장된다고 했지만 실제 버는 건 월 200만원 정도였고, 배달하기 편한 아파트 지역에 배치시켜준다면서 계단이 많은 험한 지역으로 보냈어요. 언뜻 보기에도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곳들이었어요. 일해보고 힘들면 차량을 승계해준다는 약속도 나중엔 지키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에게 팔았던 냉동탑차도 그래요. 택배를 시원하게 할 필요가 없는데도, 개조비를 부풀리기 위해 고가의 냉동기가 달린 트럭을 사도록 만들었어요."


Q.업체가 했던 약속과 현실은 달랐네요?

"네, 그런데 업체 측은 피해자들을 속이지 않았다고 주장한 거예요. 연봉으로 1억을 버는 기사들도 있는데 고소인들이 월 500만원을 못 버는 이유는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다, 일을 하기 싫어서 트럭값을 환불받으려고 고소한 것이라고 주장했어요."


유사 사례 분석으로 사기 패턴을 알아냈던 상황. 하지만 업체 측으로 흘러간 돈이 확인되지 않은 탓에 업체가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지점을 파헤칠 수 없었다. 돈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해야 사기죄를 적용할 수 있었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정 수사관은 택배업 구조를 공부했다.


정효진 서울동부지검 수사관은 이 사건으로 공로를 인정 받아 대검찰청 '2020 올해의 수사관'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안세연 기자
정효진 서울동부지검 수사관은 이 사건으로 공로를 인정 받아 대검찰청 '2020 올해의 수사관'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안세연 기자


Q.택배업 구조를 알아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울시 교통과, 한국교통연구원 등에 문의해가면서 택배업에 대해 공부했어요. 택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니까 저희가 업체 측 주장을 공격한다기보다 방어만 하는 것 같았거든요. 택배 전문지식을 보완하려고 택배사 관계자, 트럭비용을 대출해준 캐피털회사와도 많이 통화했어요."


Q.하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한참 뒤에 시작됐죠?

"담당검사님과 부장검사님을 설득하는 데 두 달 정도 걸렸어요. 아무래도 수사관의 의심만으로 수사를 확대하기 어렵고 결과가 어떨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왜 이 수사를 해야 하는지 계속 보고서를 냈어요.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 하나라도 제대로 처리한다면 제 공직 생활 전체에 떳떳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사건 피해액은 총 523억이었다. 게다가 피해자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어려운 서민들이었다.


Q.결국 수사는 시작됐어요. 무혐의가 난 사안을 뒤집기 위해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트럭 개조업체의 계좌를 확인하자고 제안했어요. 피해자들이 캐피탈회사에서 대출받은 2800만원은 개조업체로 갔거든요. 트럭을 사서 개조하는 건 개조업체니까요. 이처럼 겉보기에 개조업체가 돈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물류업체는 일자리만 알선했지 돈은 가져가지 않았다고 발뺌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개조업체의 계좌만 열어보면 2800만원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겠다 싶었죠. 만약 거기에서 개조업체와 물류업체간 돈거래가 발견되면 사기를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피해자 1894명, 피해금액 523억의 대규모 '택배 기사 취업 알선' 사기 사건 개요도. /그래픽 = 조소혜 디자이너
피해자 1894명, 피해금액 523억의 대규모 '택배 기사 취업 알선' 사기 사건 개요도. /그래픽 = 조소혜 디자이너


❶트럭을 사고 ❷그 트럭을 택배용으로 개조하는 비용 2800만원. 정 수사관이 보기에 업체가 피해자들을 눈속임할 수 있는 부분은 개조비용 1200만원(❷)이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정품 트럭 가격은 물류업체라도 속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장을 다니며 개조비용을 알아보니 600만원. 1200만원이라던 개조비용이 뻥튀기된 금액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Q.그런데 경찰은 계좌를 열어볼 생각을 안 했던 건가요?

"네,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어요. 어쨌든 피해자들은 취업을 했잖아요. 택배기사 자리를 구한 건 맞죠. 그리고 업체가 '계좌번호를 알려주겠지만 우리가 받은 건 없다'고 잡아떼니까 열어보지 않았더라고요."


이 지점에서 경찰은 포기했다. 허황된 약속을 한 물류업체와 실제로 돈을 받은 개조업체가 달랐는데, 두 업체 사이에 오간 돈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었다.


Q.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했겠어요.

"네, 막상 경찰서에서 고소장을 안 받아준 경우도 많았어요. 피해자들은 법을 잘 모르니까 주눅이 들고 더 싸워보는 것을 포기했더라고요. 그런데 트럭값으로 대출받은 할부금은 갚아야 하고. 죽으려고 옥상에 올라갔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여럿 있었어요. 제가 휴가 가기 전에 받았던 그 사건은 아마 변호사가 선임돼 있어서 검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피해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계층이었다. 하지만 캐피탈회사를 통해 할부 계약이 가능한 정도의 신용을 지켜온 성실한 시민들이었다. 정 수사관은 "피해자들은 마지막 남은 신용마저 털어 업체에 내줬던 것"이라고 했다.


그 상황에서 정 수사관이 연락하자 피해자들은 "도와달라고 사정할 때는 안 도와주더니 왜 전화했냐"며 울분을 토했다. 정 수사관은 "당시 피해자들이 얼마나 절박했는지,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깊었는지 느껴져서 부끄러웠다"고 했다.


그러던 중 계좌추적 과정에서 업체가 피해자들의 돈을 빼돌린 정황이 쏟아졌다. 정 수사관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았다"고 했다.


초기 경찰에서 무혐의로 넘긴 사건을 정효진 수사관은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래픽 = 조소혜 디자이너
초기 경찰에서 무혐의로 넘긴 사건을 정효진 수사관은 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래픽 = 조소혜 디자이너


Q.어떻게 업체가 피해자들 돈을 빼돌린 거를 확인하신 거죠?

"차량 개조업체 2곳, 물류업체 14곳, 피의자 차명계좌 등 24개의 계좌 2년치를 압수수색했어요. 그랬더니 개조비용이라고 한 1200만원 중에 600만원이 물류업체로 흘러갔더라고요. 그전까지는 계좌를 확인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었어요.


개조업체는 물류업체 덕에 개조 건수를 확보할 수 있으니 허위견적서를 만들어 준 것이고요. 피해자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견적서에 따라 캐피털회사에서 대출을 받았어요."


정리하면 이렇다. 물류업체는 허위광고로 피해자들을 현혹해 택배차량을 사도록 했다. 이후 개조업체는 피해자들이 대출받은 2800만원에서 트럭 구입과 실제 개조 비용을 제외한 600만원을 물류업체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개조업체는 따로 영업할 필요 없이 물류업체가 개조 건수를 대량으로 물어다 주니 사기에 가담한 것이었다.


Q.실제 취업률도 알아보셨다고 했어요.

"네, 그런데 취업률을 알려면 피해자 인적사항이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알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 피해자와 대출 계약을 맺은 캐피탈회사에는 명단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캐피탈회사 협조로 명단을 확보했고 대기업 택배회사에 취업 여부를 문의했죠."


정 수사관은 명단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기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나온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다수의 피해자들이 택배기사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좌추적과 취업률 확인으로 하나의 고소 사건이 대규모 사기 사건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정효진 수사관은 계좌추적 과정에서 업체가 피해자들의 돈을 빼돌린 정황을 찾아냈다. 정 수사관은 그 당시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았다"고 했다. /안세연 기자
정효진 수사관은 계좌추적 과정에서 업체가 피해자들의 돈을 빼돌린 정황을 찾아냈다. 정 수사관은 그 당시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았다"고 했다. /안세연 기자


Q.수사량이 상당했을 텐데, 수사 인력은 어느 정도였나요?

"내부적으로는 수사 초기에 전담 TF(태스크포스)가 구성됐어요. 대검찰청 서민범죄TF로부터 계좌추적 전문수사관을 파견 받아 자금 흐름 추적을 협조받고, 동부지검 내에서도 엑셀 작업에 능한 수사관들을 파견 받아 방대한 자료를 정리할 수 있었어요."


Q.수사 성과는 좋았지만 그 과정은 강행군이었을 것 같아요.

"네, 주말에도 출근하고 야근도 자주 했어요. 수사 기간 중에 부장검사 2번, 담당검사가 3번이나 바뀌어서 그때마다 사건 싸 들고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다니며 수사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수사보고서만 700건 정도 됐어요. 경찰에서 넘어온 수사기록이 300페이지였는데 나중에는 2만 페이지가 넘어갔죠.


Q.강행군을 버티게 해 준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검사장님, 부장검사님, 담당검사님이 격려를 많이 해줬어요. 특히 부장검사님이 주재하시는 회의에 주3회 참여해 수사 진행 상황, 수사 방향 등에 대한 격의 없는 토론을 했어요. 사실 수사관이 그러한 회의에 참여하는 경우가 없었거든요. 제 입장에서는 지원과 격려였죠.


그리고 부장검사님이 이 사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줬어요. 그 덕분에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될 수 있었고 무혐의 사건에서 신종경제범죄를 파악해낼 수 있었어요."


정효진 수사관은 "이 사건 하나라도 제대로 처리한다면 공직 생활 전체에 떳떳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안세연 기자
정효진 수사관은 "이 사건 하나라도 제대로 처리한다면 공직 생활 전체에 떳떳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안세연 기자


검사실에서 의사결정권자는 검사이며 검찰수사관은 검사의 지휘를 받는다.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이 검사에게 배당되고, 그 중 보완 수사가 필요한 경우 수사관들에게 다시 배당을 하는 구조다.


하지만 검사와 검찰 수사관을 막연히 수사를 '지휘하고 보조하는' 관계로만 보기는 어렵다. 수사관과 의논하기를 좋아하는 검사도 있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수사관도 있기 때문이다. 정 수사관은 검사와 수사관이 팀워크가 좋을 때 우수한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 수사관도 본인 혼자 이뤄낸 성과가 아니라며 검찰 전체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특히 부장검사의 도움을 받아 대형로펌 소속인 피의자 측 변호인에게 대응하는 연습을 한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부장검사가 피의자 측 역할을, 정 수사관이 검찰 측 역할을 맡아 상대방 주장에 반박하는 대응법을 공부했다는 것이었다. 정 수사관은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부족한 법 논리를 보완할 수 있었다고 했다.


Q.앞으로 수사관을 꿈꾸는 준비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번 수사 경험을 통해 억울한 피해를 입어도 법적으로 다툴 기회조차 없는 사회적 약자를 돕기위해 검찰 수사관으로서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수사관의 노력 정도에 따라서 제2, 제3의 피해를 막아 직접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기회가 있다는 것이 이 직업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정효진 수사관의 업무공간. 그녀는 이곳에서 택배 사기 사건에 대해서만 2만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박선우 기자
정효진 수사관의 업무공간. 그녀는 이곳에서 택배 사기 사건에 대해서만 2만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박선우 기자


다만, 야근이나 휴일 근무가 적지 않고 복잡한 사건에서 단서를 찾아내야 하는 업무의 난이도, 범죄자를 상대할 때의 심리적 스트레스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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