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녹음한 경우는 어쩌나⋯" 성관계 녹음 처벌법, 보완 없는 입법은 위험
"피해자가 녹음한 경우는 어쩌나⋯" 성관계 녹음 처벌법, 보완 없는 입법은 위험
상대방 동의 없이 몰래 성관계 녹음하면 처벌하는 법안 발의
벌써 찬반 팽팽⋯"피해자 협박 악용 막을 수 있다" vs. "녹음 자체를 막는 것은 부적절"
변호사들 "지금 법안으로 통과되면 부작용 많을 것"⋯그 이유는?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관계 음성 녹음'을 처벌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취지는 좋지만 보완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래픽 = 조소혜 디자이너
최근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받고 있다. 법안의 정식 명칭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 성관계 상황을 허락 없이 녹음했을 때 처벌하는 내용이다.
법률안 심사 전, 국민들에게 법안을 소개하는 '국회입법예고 시스템'에는 23일 오후 기준 2만 3397명의 찬반 의견이 달렸다. 발의한 지 닷새 만이다.
찬성 측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관계 음성 녹음'이 다양한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범죄에 이용되면 협박죄나 공갈죄 등으로 처벌하면 되지, 녹음 자체를 막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해 변호사들은 어떤 생각일까. 예상외로 절대다수가 법안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녹음을 악용하는 행위를 처벌할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법안이 통과될 경우 오히려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대화 당사자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 아니다. 성관계 상황을 녹음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녹음한 파일을 상대방 동의 없이 유포하면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받을 뿐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그러한 녹음 행위를 '성범죄'로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 제1항'에 "녹음기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음성을 동의 없이 녹음한 경우 처벌한다"는 규정을 새로 만들었다.
제2항에는 "녹음 당시에는 동의를 받았지만 추후 그 녹음 파일을 허락 없이 퍼뜨렸을 때도 처벌된다"는 조항도 들어갔다. 둘 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받는다.
제3항에서는 만약 영리를 목적으로 녹음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녹음 파일을 인터넷 등에 유포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해뒀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기회의 김완수 변호사는 "법안이 보복 유포 등을 방지하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발의된 법안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① 피해자가 녹음하면 그래도 처벌하나?
이 법안이 오히려 피해자를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법률사무소 오페스의 송혜미 변호사는 "피고인(가해자) 측만 녹음을 하는 것은 아니다"며 "신변의 위협을 느꼈지만 (가해자의) 위력을 느껴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도 녹음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무도 없는 폐쇄된 공간에 가해자와 단둘이 놓였다고 해보자. 이때 피해자가 그 상황을 녹음할 수 없다면 추후 범죄 피해를 입증할 방법은 본인의 진술뿐이다. 만약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거나 축소한다면 피해자가 불리해질 수 있다. 이때 녹음 파일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취지의 법안이 오히려 피해자를 곤경에 빠뜨릴 경우도 만들 수 있다.
② 성범죄 가해자로 누명 썼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나?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렸을 때 무죄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는 변호사 대부분이 지적한 점이다. 법무법인 미담의 이광웅 변호사는 "억울하게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녹음은 유일한 구제 수단일 수 있다"고 했다.
성범죄의 경우 객관적 증거가 거의 없고 피해자 진술만으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녹음 파일과 같은 객관적인 증거는 억울함을 벗는 데 도움이 된다.
경기남부법률사무소의 김정훈 변호사도 "억울한 피고인이 발생했을 때 녹음은 강력한 무죄 입증의 증거가 될 수 있다"며 "준강간의 경우 피해자가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만 말하면서 간음 당시 상황 자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면 사실상 모순된 진술을 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반대로 피고인(가해자) 측이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할 때도 마찬가지로 작용할 수 있다.
법률사무소 해밀의 박지용 변호사 역시 "녹음 파일은 억울한 성범죄 피고인이 기댈 수 있는 물적 증거"라며 "억울한 성범죄 피의자 내지 피고인이 자신의 억울함을 해명할 기회가 더욱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③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음성의 기준은 무엇인가?
법무법인 동광의 민경철 변호사는 법안에서 금지하는 대상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다고 했다. 법안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음성'을 녹음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은 '성관계'보다 더 넓게 해석될 수 있다.
민 변호사는 "성관계 시에만 처벌할 것인지, 아니면 몸을 만지는 등의 행동도 법안에서 녹음을 금지하는 상황이 아니라고 볼 것인지 그 기준이 모호하다"며 정확하지 않은 기준이 애꿎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불명확한 개념으로 형사처벌을 한다면 그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변호사들은 개별 법률로 처벌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녹음을 갖고 협박하면 협박죄, 공갈을 하면 공갈죄로 처벌하는 것이다. 대신 그 처벌 수위를 지금보다 높이는 방안이다.

송혜미 변호사는 "전면적인 금지는 양측에 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다양한 범행 사례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정훈 변호사 또한 "녹음 파일을 통해 개별 범죄(명예훼손, 협박 등)를 저지르는 경우 특례조항을 두어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웅 변호사는 "성폭력처벌법의 적용이 필요하면, 상대방을 협박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성폭행 하는 경우 등을 가중처벌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법의 존재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 변호사도 있었다. 현재 논란은 '성관계 당사자들 간'의 분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그게 아니라 "제3자가 피고인일 경우에 꼭 필요한 법"이라고 평가한 경우다.
'변호사 박세훈 법률사무소'의 박세훈 변호사는 "제3자의 녹음 행위만큼은 녹음과 유포행위에 대해 별도로 '성폭력범죄'로서 처벌하는 법률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고 했다.
성관계 당사자 간 녹음은 다툼의 여지가 있지만, 제3자가 녹음한 경우 단순히 사생활 침해를 넘어 타인의 대화만을 녹음한 것에 비해 비난 가능성의 정도가 높기 때문이다.
현행 법률로는 모텔에서 타인의 성관계 음성을 몰래 녹음한 모텔업자들을 성범죄로 처벌하지 못한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모텔에서 투숙객들의 성관계 소리를 녹음한 사람을 처벌함에 있어 방실 침입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죄목만이 적용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즉, 타인이 녹음한 경우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성폭력 관련 법을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는 취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