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그리고 광화문 살리기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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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그리고 광화문 살리기 에피소드

2022. 03. 14 17:45 작성
정진섭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jsjung@soul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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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이 더 즐겁게 걷고, 더 편하게 누릴 수 있게 변모되어 명실상부한 국가중심거리로 자리 잡고 점점 더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든든하기도 하다. /셔터스톡

평소 존경하고 사숙(私淑)하던 이어령 선생께서 별세하셨다. 영결식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소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문화체육부 주관행사로 열렸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행사 당일 국립중앙도서관 광장이 너무 썰렁했다는 점이다. 날이 덜 풀려서 영결식을 실내행사로 진행한 점은 이해한다 해도, 문화체육부 장(葬)으로 치른다는 언론발표와 달리 외부 안내문 하나 볼 수 없고, 텅 빈 광장에 기념될만한 사진 한 장 준비된 게 없었다. 그렇게 쓸쓸한 광장을 쳐다보다가, 지난해 가을 프랑스 국민배우 장폴 벨몽도(Jean-Paul Belmondo)의 장례식을 마크롱 대통령 참석 하에 엄숙히 치른 장면이 떠올라서, 문화선진국의 저력을 기대한 내 눈높이가 너무 높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 국립중앙도서관은 내가 틈날 때마다 찾는 산책길이며, 20년 넘게 매일 걸어 다니는 출근길이기도 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 삶은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어떤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잃을 것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는 이 삶과 세상 자체가 꿈과 다를 바 없고, 결국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삶의 종착점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어령 선생과 나의 인연, 만남을 추억해 본다. 그분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어릴 적 우리 집 책장에 꽂혀 있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수필집을 들춰본 것이 첫 기억이다. 그리고 사회 초년병 시절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탄복한 기억이 두 번째이고, 88서울올림픽 개막식 당시 '굴렁쇠 소년'을 깜짝 등장시켜서 모두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 게 세 번째 기억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나는, 그 감동이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시발점이었다는 것은, 한참 뒤에나 깨닫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드디어 그분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대검찰청 중간간부(전산관리담당관)로 근무하던 시절 매달 명사초청 강연이 있었다. 내가 행사담당 책임자라서 선생님께 직접 전화 드리고 강연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셨다. 강연 줄거리는 워낙 오래전 일이라 그대로 옮기기 어렵지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융합을 주제로 한 것이었고, 검찰이 솔선수범해서 한글2.0 프로그램 불법복제 범죄를 추방하고 소프트웨어 저작권문화를 조성하는데 공로를 세웠다는 칭찬을 하면서, 그래서 초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덕담을 해주신 데, 아직까지 감사한 마음이 남아 있다.


사실 그 즈음 나는 이어령 선생께 커다란 무례를 범한 적이 있다. 우면산 남쪽 기슭에 있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원장이라는 직책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비교적 한가한 연구소 분위기에 편승해서, 당시 나는 연세대 법무대학원에 한 학기동안 '사법제도론' 강좌를 맡았고, 매달 직원들과 함께 서울 4대문 안 고궁산책 등 문화행사를 즐겨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광화문 살리기 캠페인"이라는 엉뚱한 일을 벌이게 되었다.

공무 해외 연수차 프랑스 유학시절, 파리 중심가의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며 부러움이 들었고, 서울의 4대문 안에 사람 아닌 차가 주인처럼 행세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서 문득 그런 목표가 생긴 것이다. 대학원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내 구상을 설명해서 호응을 얻었고,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신 이어령 박사님 댁을 찾아가 그 캠페인을 이끌어 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분이 제창한 '쌈지공원' 아이디어를 광화문 살리기에 접목시키고 싶어서, 보자기에 선생님의 저서 여러 권을 싸가지고 평창동 자택에 방문해서, 만용을 부린 기억이다.


그 즈음 나는 광화문 살리기 운동에 거의 몰두하다시피 했다. 젊은 사회지도층 인물들이 모여서 만든 '미래를 경영하는 연구모임'(미경연)이라는 공부모임에서 내 구상을 가다듬어 PPT로 발표한 적도 있고, 국립외교원에서 중견 외교관들을 상대로 이 주제로 특강을 한 적도 있는데, 그분들로부터 선견지명과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칭찬도 들었다.


아래 그림은 그때 내가 손수 그려본 메모지와 디자이너에게 부탁해서 그린 PPT 도면이다.


세종대왕 공원/ 이순신 장군 공원/ 역대 대통령 공원의 3파트로 나누고, 이어령 선생이 초대 문화부장관 시절부터 주창한 쌈지공원 아이디어도 담아보았다.


광화문 살리기 운동에 몰두할 당시 그린 구상도. /정진섭 변호사 제공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사람들과 상의해서, 광화문 살리기 <공약 10조>을 만들기도 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정도 600년의 수도 서울을 옛 모습으로 재현, 복원하여 역사 도시로서 서울의 역사성을 부각시킨다.

​1. 미래를 준비하는 21세기 통일한국의 수도로서 광화문을 위시한 중심거리를 획기적으로 재편한다.

1. 조상의 아름다운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공간적 터전으로 삼는다.

1. 도시거리에 횡행하는 차본주의(車本主義)를 추방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활보하고 즐길 수 있는 인본주의(人本主義)의 거리로 만든다.

1. 광화문을 중심으로 역사적 유물이 산재해 있는 4대문안 거리를 개발하여 세계적 문화유적지로 발전시킨다.

1. 외국인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고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전통문화 공간을 확보한다.

1. 국가와 민족 발전의 초석이 되어온 위인들을 중심거리에 모심으로써 조상경배사상을 고취시킨다.

1. 자투리 공간을 이용한 시민들의 쉼터를 조성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공간이용의 본보기로 삼는다.

1. 우수한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살려 문화적으로 생동감 있는 거리문화의 기틀을 만든다.

1. 근대사의 경제, 정치의 모순된 역사를 소개함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훈으로 삼는다.


이런 내 구상을 듣고 나서, 이어령 선생께서는 취지는 좋지만 광화문 일대의 교통처리 대책과 지하의 통신시설 이전과 문화재 훼손 문제 등을 걱정하시면서, 대중 캠페인 방식으로 서두를 일은 아니라는 의견을 주셨다,


어느 재계 중진인사로부터, 우리 국력으로는 시기상조이며, 국민소득 2만불 시대가 될 때 추진해 볼만한 프로젝트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때 나는 검사 생활하던 공직자여서, 계속된 외도(外道)는 맞지 않는 일이었고, 당시 우리나라 1인당 GNP는 1만불 가량이었다. 결국 <광화문 살리기>는 내 개인의 힘으론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1년여 집착하던 그 문제에서 손을 놓게 되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10년에 드디어 '차 없는 거리' 광화문 광장이 탄생하였다. '미경연' 모임의 회장을 지낸 오세훈 변호사가 서울시장에 취임하면서, 우리의 <광화문 살리기> 구상을 자신의 정책으로 실현해 낸 것이다. 이어령 선생도 광화문광장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처음 걱정하던 것보다 훨씬 잘 만들었다는 메시지를 보내 주셨다.


돌이켜 보면, 1997년 우면동 형사정책연구원에 근무할 적에 "차 없는 거리 세종대로"를 주장하면서, 직원들과 함께 경복궁, 창덕궁 문화답사를 다니고, 이어령 선생의 자택을 방문하던 시절의 나는 열정이 넘쳤지만, 상식에는 맞지 않게 너무 앞선 독단적 행동이었다. 하지만 추억은 늘 그립고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그래서 2010년 광화문광장의 탄생에 그분의 뜨거운 애국심과 폭넓은 문화적 안목과 지성적 판단이 커다란 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그 사실을 꼭 남기고, 널리 알리고 싶다.


이어령 선생은 일찍부터 노트북 컴퓨터 애용자로, 인터넷 문명이 한국 사회에 처음 도입될 때부터, 누구보다도 앞서서 우리 한글을 컴퓨터에서 잘 활용할 수 있게 하도록 '한글 기계화'에 커다란 공헌을 하신 분이다. 그분은 한글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의 저작권 보호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광화문 살리기 캠페인에 대해서도,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며, 목적이 숭고해도 시대여건과 절차에 맞게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걸 내게 일깨워 주셨다. 나의 무례한 행동을 용서하고, 대검찰청 명사 초청 강연에 귀중한 시간까지 내주신 그분의 영전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올해 2022년 여름에는 광화문광장이 더 넓어진 공간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시민들에게 다시 개방된다. 이처럼 광화문광장이 더 즐겁게 걷고, 더 편하게 누릴 수 있게 변모되어, 명실상부한 국가중심거리로 자리 잡고, 점점 더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든든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분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지금의 나'는 무엇을 배우려고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하고, 나의 지성을 모두 동원해서 통찰해 보아도, 정답을 찾기란 요원하기만 하다.


누가 자기를 대신해서 꿈을 꾸어줄 수는 없다. 내게 꿈을 꾸게 해주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설령 위대한 성현의 가르침이라 해도 마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그 말이나 언어가 진리 자체는 아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비록 '지금의 나'라 할지라도 반드시 꿈에서 깨어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스스로 의도적으로, 능동적으로 이 삶과 세상에 집착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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