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
[로드무비]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
[law de movie]
방가? 방가!, 2010 육상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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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방태식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한국인 사장들이 사용하는 욕을 알려준다. 개새는 새가 아니라 개새끼에서 축약된 강아지 계열의 욕이라며 꼭 알아두라고 한다. / 시너지
조선인 노동자가 본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때는 1915년 이후다. 앞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은 대부분 유학생이었다. 조선인 노동자의 이주는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배경이다. 일본은 연합국으로 참전했지만 주로 전투가 벌어진 곳이 유럽이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러시아와 유럽 국가들의 군수품 주문이 밀려들면서 경기가 좋아졌다. 당시 일본 노동자는 세계적인 저임금 노동력이었지만, 그보다 저렴한 조선 노동자를 일본 기업과 정부가 원했다. 이에 따라 조선인의 일본 이주가 급증했다. 전쟁을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일본의 이해에 따라 조선인 노동자는 일본으로 도항했다. 조선인의 일본 이주는 일본의 노동력 동원으로 시작됐다. 재일조선인 탄생 배경에는 한일합병이라는 정치적 변화와 함께 일본제국주의 자본의 급격한 성장이란 이유가 함께 있다.
1920년대 들어 일본에 실업자가 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종전과 함께 일본 경기가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도 조선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가려는 노동자가 줄지 않았다. 조선총독부가 벌인 토지조사사업(1910~1918)으로 조선 농촌이 파탄이 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실업자 증가의 원인으로 이주 조선인을 지목하는 사람이 늘었다.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도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다. 식민지 정책 실패가 1920년대 실업 증가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조선 노동자 유입의 원인은 식민지 정책의 실패에 있다⋯병합 이래 (일본제국의) 산업 발전이란 것이 (내지 일본의) 일본인에게 부의 집적을, (외지에 사는) 대다수 조선민중에게는 몰락을 의미한다"고 1929년 현역 중의원이 주장하기도 했다.
1925년 일본 정부는 조선인 도항을 크게 제한하는 조치를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노동자 도항을 제한하면서도 필요한 노동자 공급에 계속 관여했다. 가령 행정당국과 오사카 공장주들이 제주도에 제주공제회를 만들어 '고분고분한(從順な)' 노동자를 일본으로 송출했다. 이렇게 재일조선인 증가는 조선인 도항 제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조선 농촌이 붕괴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농민들이 일본의 산업지역인 오사카, 교토, 고베 등으로 이주했다. 일본 경기가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조선의 농촌 붕괴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이들은 밀항 등의 방법으로 도항하지만, 일본에서도 실업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1938년부터 일본 정부는 정반대 입장이 되어 조선인 노동자를 일본으로 강제 동원하기 시작했다. 중일전쟁(1937~1945)을 계기로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했다. 이 법은 조선, 타이완, 사할린에도 적용됐다. 1939년 노동력 동원 계획을 발표하고, 조선총독부에 '조선인 노무자 내지 이주에 관한 건'이라는 통첩을 내무성‧후생노동성 차관 명의로 보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재해가 잦은 중노동 현장인 탄갱과 광산으로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로 동원했다. 이렇게 해도 전시 산업 노동력 부족이 해소되지 않자 철강‧토목사업에도 조선인 노동자를 강제 동원했다. 1942년 내각이 만든 '반도 노무자 활용에 관한 방침'이 근거다. 강제 동원을 위해 노동보국대, 관알선, 징용 등의 방법을 썼다 1925년 10월 시작된 도항 제한 방침을 1944년 폐지했다. 각료회의에서 조선 및 타이완 동포에 관한 처우개선에 관한 건을 처리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이 패전하는 1945년까지 재일조선인이 대량으로 늘어난다.
영화 <방가? 방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국인 청년 방태식(김인권 연기)이 외국인 노동자로 위장해 의자공장에 취업하는 이야기이다. 외모가 동남아시아 사람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던 주인공이 베트남인 몽골인 네팔인을 차례로 흉내를 내다가, 마침내 부탄 사람 행세를 한다. 출신자가 적은 부탄이라야 들키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처음에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처럼 출신자가 많은 나라 노동자들 텃세에 시달린다. 이에 고향 친구 용철(김정태 연기)이 꾸민 불법 체류자 단속을 태식이 막아내 외국인 노동자의 신뢰를 얻는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한국어 욕 알아듣기 특강에 나서고, 휴일 근무 안 하기를 두고 벌이는 한국인 직원과의 족구 시합 등에서도 활약한다.

영화에서 방태식이 외국인을 가장하는 이유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등급이 낮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다. 한국 노동시장은 노동자의 숙련도나 부가가치 생산 정도와 무관하게 국적에 따라서도 구분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외국인 학생의 수업연한을 늘리거나 학점을 한 등급 낮게 주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외국인 배우자와 이혼할 때는 양육권을 주지 않거나 위자료를 깎아서 주라고 법원이 판결하는 일을 생각할 수도 있다. 외국에서 학습권, 양육권이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달라진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데 이러한 권리의 가장 상위에 참정권이 있다. 많은 나라에서 일정 조건을 갖추면 외국인에게도 참정권을 준다. 한국에서도 영주권 자격을 얻고 3년이 지난 18세 이상 외국인에게 지방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3월 대통령선거에서는 외국인이 투표하지 못했지만, 오는 6월 전국지방동시선거에는 외국인도 참여할 수 있다.
지난날 식민지 시절 제국일본이 조선인 노동자를 차별한 나름의 근거는 헌법이다. 1910년 8월 일본 식민지배가 시작됐지만, 일본헌법이 조선에 시행되지는 않았다. 한일합병 두 달 전인 1910년 6월 일본 각의는 '병합 후 한국에 대한 시행 방침'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는 '조선에는 당분간 헌법을 시행하지 않고 대권에 의해 통치한다'돼 있다. 이에 따라 식민지배 35년 동안 대일본제국헌법이 조선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대권은 천황의 권한을 가리키지만 사실상 조선총독의 전권으로 행사됐다. 천황의 형식적인 확인만 받았다. 조선총독은 법률이 위임 없이 자의로 발한 제령(制令)으로 조선을 통치했다.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이던 미노베 다쓰키치(美濃部達吉)는 신영토에 헌법이 적용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영토를 획득하기 전에 제정된 헌법이 당연히 적용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했다. 식민지 시절 조선인은 헌법에서 비롯되는 권리와 의무가 없으면서, 제국의 신민이자 국민으로 호명되는 분열적인 상태였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헌법은 어떨까. 일본의 영향을 받아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게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이던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 헌법에서 기본권 주체는 인민(people)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송 결정문에는 이러한 소수의견도 있다.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우리 헌법상의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국적법상 우리 국민이 아닌 외국인이라도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상당 기간 거주해 오면서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생활을 계속해 온 자라면(예컨대 귀화할 수 있는 실체적 요건을 갖추고 있는 경우) 사실상 국민으로 취급해 예외적으로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외국인이 국내에 얼마나 거주해야 하고 어떤 생활을 해왔어야 하는가 하는 등의 요건은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의해 신중히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과 외국인은 배타적이고 대립적 개념인데, 국민이라는 단어에 외국인을 포함해 해석해야 하는 어색한 상황이다.
시민으로서 권리와 구성원 자격을 분리하고 다층화하려는 시도가 학계에서 이미 활발하다. 사람과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시티즌십과 멤버십이 불가분으로 묶이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둘을 묶어 등장한 네이션 스테이트(국민국가 혹은 민족국가)도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불확실하다. 2017년에 나온 옥스퍼드대학 시티즌십 교과서(The Oxford Handbook of Citizenship)는 묻는다.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얻은 시티즌십이 다른 나라 영토에서의 경제적 기회나 정치적 자유에 접근할 권리까지 결정할까? 처음 시티즌십을 받은 나라 밖에 정착한 사람은 그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줄 권리가 있을까? 재외국민이 투표를 통해 어느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허용해야 하나? 누구를 시티즌으로 삼을지 정할 수 있는 국가의 권리가 다른 국가의 사람에게도 미치는 것일까? 국가의 한 지역 시티즌 과반수가 독립하거나 이웃 국가에 편입되기를 원한다면? 이들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질문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영화 <방가? 방가!>가 개봉한 뒤 '노동시민권'을 제안한 논문이 나왔다. 이다혜 서울대 박사는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으로서 '국민이 아닌 자'로 정의되기 때문에 헌법상 기본권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없으며,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국제인권법의 보호를 요청한다 하더라도 국내 법원의 국제규범에 대한 회의적 태도로 인하여 적극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현실은 시민권이 이론을 넘어선 하나의 규범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법적 계기를 제공한다. 최근의 여러 시민권 연구들에서 국민과 시민의 분리 현상을 지적하며 시민권을 외국인 권리 보호의 근거로 제안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시민권을 추상적인 하나의 지향점 또는 가능성으로만 인식한다는 점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노동시민권을 주장했다. 이주노동자를 국민처럼 따뜻하게 대하자는 발상도 이미 낡고 부당한 것이다.

주인공 방태식은 뜻하지 않게, 출입국관리소에 잡혀간 외국인 노동자 회장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서 선봉에 선다. 시장통을 지나는 작은 행진을 이끌면서 불법체류 노동자들과 함께 부르는 노래가 편승엽 가수의 <찬찬찬>이다. 시위 같은 것에 경험이 없는 그가 선창하는 구호는 '수차르 회장을 석방하라'에서 '카페의 여인도 석방하라'로 바뀐다. 이제 수차르 회장도, 카페의 여인도, 우리도 모두도 이주 노동자, 미래의 이주 노동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