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사실을 아무리 쌓아도 진실이 되지 않는다면
[로드무비] 사실을 아무리 쌓아도 진실이 되지 않는다면
[law de movie]
64 (ロクヨン), 2016 제제 다카히사 감독
![[로드무비] 사실을 아무리 쌓아도 진실이 되지 않는다면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1662618274938604.jpg?q=80&s=832x832)
유괴된 여자아이가 숨진 채로 발견된 쇼와 64년 1월 7일 히로히토 천황도 죽었다. 조기가 걸린 도로를 범인 검거에 실패한 경찰들이 지나고 있다. / TOHO
쇼와(昭和)는 일본의 지난 연호로 64년이 마지막 해이다. 서기 1989년인 쇼와 64년은 1월 7일까지이고 1월 8일부터는 헤이세이(平成) 1년이다. 죽어서 쇼와로 불리는 히로히토 천황이 1월 7일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주일뿐인 쇼와 64년은 입에도 귀에도 잘 붙지 않는 단어다. 일본 사람들은 1989년을 헤이세이 1년으로 기억한다. 영화 <64>는 잊혀진 쇼와 64년을 '로쿠욘(6과4)'라고 부르며 환기시킨다. <64>가 소환하는 것은 천황의 죽음이 아니라 살해당한 당한 어느 소녀의 죽음이다. 쇼와 64년 발생한 미제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 이야기이다.
군마현 경찰청 공보관 미카미(사토 고이치 연기)는 하루하루 힘들게 산다. 기자들은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간부들은 공보관이 기자도 못 다루냐고 질책한다. 공보관인 미카미는 기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경찰도 아니다. 기자를 상대하는 그에게 경찰이 정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이 교통사고 사건에 대해 가해자가 임신 중이라는 이유로 실명을 비공개하기로 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언제부터 경찰이 그런 배려를 했느냐며 가해자의 이름을 밝히라고 한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미카미는 기자들의 성화에 언론에 이름을 알려주자고 상부에 건의하지만 소용없다. 이에 기자들은 경찰청장의 유괴살해 피해자 방문 취재를 거부하겠다고 공언한다. 당시는 '쇼와 64년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 공소시효 15년을 1년 앞두고 경찰청장이 피해자 유가족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던 때였다. 간부들은 이에 어떻게든 경찰청장 취재를 성사시키라고 미카미를 질책한다.
미카미는 쇼와 64년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을 담당한 형사이자, 작전에 실패한 수사팀의 일원이었다. 이렇게 해서 미카미의 실패한 수사와 지난 세월이 되살아난다.

미카미는 유괴 살해된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가 경찰청장을 만나달라고 한다. 경찰청장이 방문하면 사건이 다시 보도되면서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설득하지만 거절당한다. 사실 미카미의 딸도 집을 나가 연락이 끊긴 상태인데, 딸의 부재라는 점에서는 미카미도 유괴 사건 피해자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아버지를 설득할 방법을 궁리하며 주변을 조사하던 미카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당시 과학수사팀이 범인 전화를 녹음하지 못했고 이를 보고했지만, 간부들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것을 우려해 이 보고를 묵살했다. 그리고 해당 과학수사팀원을 조직에서 자른다.
범인 목소리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인 피해자 아버지는 유괴범을 계속해서 쫓았는데, 마침내 같은 목소리를 찾아낸다. 전화번호부에 실린 모든 번호에 차례대로 전화를 걸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씩 지워가던 이름이 어느 이름에서 멈췄고 그가 범인이었다. 이렇게 스스로 범인을 찾아낸 그이기에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의 전시성 방문을 거부한 것이다. 아버지가 찾은 범인의 이름은 과학수사팀에서 잘려 경비원을 전전하던 전직 경찰관에게도 전해진다.
영화에서 기자들은 좀처럼 설득되지 않는 존재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타협하지 않는 존재이고 정확히는 성마르고 단순한 사람들이다. 깊이 생각하는 법이 없고 배려 같은 건 더욱 없다. 이런 묘사를 부정할 수 있는 기자는 많지 않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도 기자 생활을 10년 넘게 했다. 하지만 언론은 여론의 거울이다. 언론이 여론의 취향이나 요구와 달라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이렇게 단순하게 움직이는 언론으로 인해,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는 실명을 감춘 가해자가 사실은 경찰 간부의 딸이었다.
이렇게 언론의 막연한 의심이 진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수사기관을 비롯한 국가기관은 언론을 비난한다. 40년 전인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검찰백서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신문의 무책임한 보도로 인한 국민의 의혹의 눈이었다. 수사팀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신문 보도의 영향으로 국민적 의혹은 좀처럼 가시지 아니했던 점을 생각하면 언론기관에 대한 홍보체제의 정립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이 시절 군사 정부가 '무책임한' 언론 보도로 무너졌다.
인터넷 시대에 언론사가 폭발적으로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책임과 해악의 양상이 달라졌다. 특히 한국 언론은 수사기관을 감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추종하고 애원한다. 누구를 소환했다거나 어디를 압수했다는 단편적인 수사 중계에 단독이란 얄팍한 이름을 붙여 포털 사이트를 채운다. 서너 시간이면 알려질 일을 먼저 쓰겠다고 검사실 주변을 서성인다. 검찰이 흘려주는 정보는 설령 사실이 아니어도 오보임이 드러나기 힘들어서이다. 기자가 먼저 써놓고 검찰이 공소장에 적으면, 피고인이 부인할 뿐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경찰청장의 유괴살해 피해자 방문을 앞두고 지방경찰청 관할에서 유괴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쇼와 64년 유괴사건의 판박이다. 몸값을 담으라는 여행가방도, 요구하는 현금 액수도, 부모를 불러내는 장소도 같다. 이러한 정보는 당사자와 경찰밖에 모르는 것이다. 14년 전 이 사건에 관련된 누군가가 복수극을 벌이고 있음을 미카미는 직감한다. 복수 사건의 범인은 경비원을 전전하는 과학수사팀 전직 경찰이었고, 유괴 대상은 14년 전 사건 범인의 딸이었다. 쇼와 64년 유괴살해 사건 피해자를 위해 전직 경찰이 나선 것이다.

쇼와 64년 유괴살해 사건 범인이 잡혔지만, 경찰 상부가 풀어준다. 피해자 아버지가 기억한다는 목소리 말고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10년 넘게 이어진 은폐 공작이 드러날 것을 걱정해서였다. 이렇게 되자 공보관 미카미가 14년 전 범인을 찾아가 진실을 말하라며 주먹을 휘두른다. 이를 목격한 기자가 공보관이 폭행수사를 했다고 보도한다. 이 기사를 계기로 경찰의 은폐 전모가 드러난다. 공보관에서 물러난 미카미는 기자에게 말한다. "자네는 기자로서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면 됐다." 기자는 별다른 말 없이 돌아선다.
영화 속 기자는 무능하고 병든 경찰을 바꾸려 기사를 썼을까. 아니면 경찰이 피의자를 폭행했기에 기사를 썼을까. 원작 소설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는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가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기자 일을 하면서 아쉬움이 있었다. 사실의 이면은 포착할 수 있었지만, 마음의 이면은 잡을 수 없다. 사실을 아무리 쌓아도 진실이 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을 쓰고 싶었다." 미카미의 말에 기자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돌아서는 이유는, 기사를 쓴 데 별다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의 역할은 진실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었을 테다.
기자들이 담당하는 분야를 언론사에서는 출입처라고 부른다. 대부분 출입처는 기자와 움직이는 방향이 같다. 다수의 지지와 구매로 작동하는 곳들이라 알려지기를 원한다. 입법부, 행정부로서는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지지를 얻으려는 일은 정치로 불리며 그 자체로 선(善)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부정적 속성을 포착한 표현에 불과하다. 이들 입법과 행정은 언론과 근본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다. 부정적으로 확산하는 여론만 막으면 되는 단순한 관계다. 언론의 영향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다르다. 수사의 전제는 밀행이다. 수사 사실을 알리는 일은 중대한 인권침해이다. 검찰이 언론과 야합해 수사 정보를 퍼뜨린 결과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인데, 이런 조작은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경심 교수 수사 당시 어느 방송사는 그가 제출한 업무용 컴퓨터에서 총장 직인 파일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검찰은 정 교수 아들의 상장 파일과 이 파일에서 총장 직인만 잘라내 저장한 파일을 보도 사흘 뒤에야 강사 휴게실 컴퓨터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검찰이 추정하는 내용을 기자에게 알려주자 그대로 보도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사법기관도 마찬가지다. 사법기관이 다수를 추종하는 순간 공동체에 불행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다수의 지지는 달콤한 유혹이고 그래서 언론과 이들의 관계는 복잡하다. 법원이 다수의 지지를 앞세워 내린 결정이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전종익 서울대 교수는 "핵심적인 인물들에 대한 형사재판이 곧 예정되어 있고 국회의원 총선거가 2016년 봄에 있을 예정이었던 상황에서 사법적인 판단보다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과정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과정 이론에서 보면 더욱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통진당 해산 이듬해 논문에서 밝혔다.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은 여론에 구속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다. 이러한 지위를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은 교묘하게 이용한다. 여론의 비판은 짐짓 외면하다가도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서는 여론을 이용한다. 그래서 수사도 재판도 마음대로 하고, 자기 자리도 스스로 만든다. 검찰의 쪼가리 수사정보와 법원의 그럴듯한 이론에 언론이 굴복하는 순간 민주주의도 위태로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