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살아있는데 왜 집행은 멈췄나…대한민국이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된 이유
법은 살아있는데 왜 집행은 멈췄나…대한민국이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된 이유
헌재는 두 차례 합헌 결정했지만
국제사회 압박·오판 우려에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1997년 마지막 사형 집행 이후, 지금도 사형수 57명이 복역 중이다. 법은 살아있지만 집행은 멈췄다. /셔터스톡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세금으로 밥을 먹는 57명의 사형수가 있다. 법원의 가장 엄중한 판결을 받았지만, 1997년 12월 30일 이후 누구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다.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지만, 27년째 멈춰버린 사형 집행 시계는 요지부동이다. 법은 살아있는데, 왜 집행은 멈춘 걸까.
멈춰버린 사형 집행,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국제적 압력, 정치적 부담, 인권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우선 법적으로 사형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사형 집행은 1997년에 멈춰 섰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형 집행은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따라 이뤄지지만, 역대 법무부장관들은 정치적·사회적 부담감 속에 집행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1948년 유엔(UN)의 세계인권선언 채택 이후 사형 폐지를 강력히 권고하는 국제사회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는 압박이다.
오판 가능성 역시 사형 집행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한번 집행되면 되돌릴 수 없기에, 만에 하나 재판이 잘못되었을 경우 회복할 방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정신적 충격과 인권 문제, 그리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등 대체 형벌이 가능하다는 점도 사형 집행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철창 너머 57명,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들은 어떤 죄를 저질렀을까. 대부분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흉악범들이다.
'묻지마 살인' 공포, 정상진과 원언식
2008년 논현동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화마를 피해 뛰쳐나오는 이웃들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정상진이 대표적이다. 그는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분노로 4년간 범행을 준비했다.
1992년 여관에 불을 질러 2명을 살해하고 18년간 도망 다니다 또다시 불을 질러 22명의 사상자를 낸 원언식 역시 같은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희대의 연쇄살인마, 유영철과 강호순
20명을 살해한 유영철, 여성 8명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강호순 등 우리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던 연쇄살인범들도 사형수로 복역 중이다.
국가안보를 위협한 범죄
1987년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해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희생시킨 북한 공작원 김현희 역시 사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극단의 비윤리적 행위"라며 사형을 확정했지만, 그녀는 이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처럼 사형은 연쇄살인, '묻지마' 방화 살인, 테러 등 반인륜적이고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극악한 범죄에 한해 선고되고 있다. 법적으로는 전쟁범죄와 같은 일부 중대 범죄에 사형을 규정하고 있어, 최후의 형벌로서 여전히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사형제 존폐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국민 법 감정과 흉악범죄 예방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과, 생명권 존중 및 오판 가능성을 들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법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사형수 57명의 존재는 우리 사회에 정의와 인권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