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맡긴 요양사가 1억 5천 빼돌렸다"'경도 치매' 아버지, 법은 지켜줄까
"믿고 맡긴 요양사가 1억 5천 빼돌렸다"'경도 치매' 아버지, 법은 지켜줄까
법률 전문가들 "사기·횡령 고소와 성년후견 신청, '투트랙'으로 싸워야"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4시간 돌봄을 약속했던 요양사의 계좌였다. 경도 치매를 앓는 80대 시아버지의 통장에서 불과 몇 달 만에 1억 5천만 원이 증발해 흘러간 곳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아버지와 "아버님과 함께 은행에 갔다"는 요양사의 엇갈린 주장 앞에, 믿음은 배신감으로, 안심은 불안감으로 뒤바뀌었다.
비극의 시작은 지난 1월이었다.
홀로 남은 시아버지를 위해 며느리 A씨 가족은 한 요양사와 2년 돌봄 계약을 맺었다.
선금만 7천만 원. 하지만 이후 요양사에게 8천만 원이 추가로 흘러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가족의 시름은 결국 법정으로 향하게 됐다.
1단계 '수상한 계약', 사기죄로 엮을 수 있나
법률 전문가들은 요양사가 시아버지의 '경도 치매' 상태를 악용했을 가능성에 칼끝을 겨눈다. 만약 아버지가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임을 이용해 재산을 빼돌렸다면 형법상 '준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
모두로 법률사무소 한대섭 변호사는 "준사기죄는 상대방의 판단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이용해 재물을 가로채는 범죄"라며 "결국 아버님의 치매 상태가 법적으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경도' 치매라는 진단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인지 기능이 일부 떨어졌더라도, 법원이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보면 죄를 묻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요양사가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속여 돈을 보내게 했다는 '기망 행위'를 입증해야만 일반 사기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2단계 사라진 1.5억, '투트랙 소송'으로 되찾아야
요양사를 처벌하는 것과 별개로, 가족의 가장 큰 숙제는 이미 사라진 1억 5천만 원을 되찾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동시에 진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주문했다.
먼저 요양계약서, 은행 이체 내역, 치매 진단서 등을 근거로 요양사를 사기나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소해야 한다. 신동우 형사전문변호사는 "정상적인 돌봄 대가를 넘어선 금액이라면 사기나 횡령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형사 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이를 근거로 민사 소송에서 돈을 돌려받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동시에 민사상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해,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돈을 준 것이 아니므로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해야 한다.
최후의 방패: '성년후견' 신청으로 추가 피해 막아야
여러 변호사가 이구동성으로 가장 시급한 조치로 꼽은 것은 바로 '성년후견 개시 신청'이다. 성년후견제도는 질병이나 노령으로 판단 능력이 부족해진 성인을 위해 법원이 후견인을 지정, 재산 관리와 법률행위를 대신하도록 하는 제도다.
조선규 변호사는 "치매 증상이 있다면 후견인 선임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후견인이 지정되면, 가족은 아버지를 대신할 법적 대리인 자격을 얻는다. 이를 통해 요양사와의 불공정한 계약을 직접 취소하고, 소송을 주도하며 추가적인 재산 유출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든든한 방패를 얻게 되는 셈이다.
결국 A씨 가족의 법정 싸움은 '시아버지의 판단 능력이 온전치 못했음'을 입증하는 데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가족의 비극을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 모두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가장 믿어야 할 돌봄의 손길이 재산을 노리는 위협으로 돌변할 수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부모님의 남은 생과 재산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법정으로 향한 A씨 가족의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