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공모 아냐”…캄보디아 감금된 명의자, 손배 책임 면했다
“사기 공모 아냐”…캄보디아 감금된 명의자, 손배 책임 면했다
'통장 전달죄' 처벌 피한 계좌 명의자
'캄보디아 감금' 통장 명의자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수억 원대 사기 피해를 본 A씨가 사기에 이용된 계좌의 명의자인 B 유한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B 유한회사의 대표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접근매체를 전달한 경위에 '사기 범행 가담 의도'나 '예견 가능성'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계좌 명의자 대표가 캄보디아에서 감금된 채 접근매체를 넘겼고, 이 행위에 대해 이미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없음' 불송치 결정을 받은 사실이 이번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됐다.
억대 사기 피해 A씨, 항소심서도 '좌절'
원고 A씨는 피고 B 유한회사를 상대로 2억 7,800만 원 및 지연손해금을 배상하라는 손해배상(기)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B 유한회사 명의 계좌가 사기 범행에 이용되어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제1심 판결의 취소를 요구했으나,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항소심(사건2025나205346)에서 결국 기각됐다.
재판부는 A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제1심 판결 이유를 대부분 인용하는 한편, B 유한회사 측의 주장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추가하며 판결의 정당성을 재확인했다.
핵심은 B 유한회사 대표의 접근매체 전달 행위가 '사기 범행 공모' 또는 '예견 가능성'이 있었는지 여부와 실제 사기 피해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었는지였다.
'캄보디아 감금' 명의자, 전자금융거래법 '무혐의'가 뒤집은 판세
이번 사건의 복잡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피고 B 유한회사의 대표 D는 2024년 2월 13일, 중국인 'E'에게 속아 투자금을 입금받는 데 필요하다는 이유로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인에게 접근매체(통장, 카드, OPT, 비밀번호)를 전달한 뒤, 오히려 여권, 지갑, 휴대전화를 빼앗긴 채 2024년 3월 16일에야 귀국할 때까지 캄보디아에 감금되어 있었다.
법무법인 ○은생각 소속 변호사가 대리한 B 유한회사 측은 D가 투자금 입금에 필요하다는 말에 속아 접근매체를 전달했을 뿐이며, 사기 범행에 가담하거나 예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D가 2024년 8월 7일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에 관하여 불송치(혐의 없음) 결정을 받은 사실이다.
재판부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고려했다.
"D가 캄보디아에서의 투자금 입금에 접근매체가 필요하다는 중국인의 말에 속아서 이를 전달하였을 뿐이라는 이유로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에 관하여 불송치(혐의 없음) 결정을 받은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가 접근매체를 전달할 당시 사기 범행에 가담하였다거나 사기 범행을 저지를 것으로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법원, "접근매체 전달과 사기 간 인과관계 증명 부족"
나아가 재판부는 설령 사기 범행의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계좌의 접근매체를 전달한 행위'와 '성명불상자의 원고에 대한 사기 범행'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A씨가 입금한 돈은 입금된 직후 또는 다음 날 대부분 '사기 범행을 저지른 성명불상자들이 관리하는 다른 사람 또는 회사 명의 계좌'로 출금되었다.
원고가 신한은행 계좌에 입금한 5,000만 원, 5,400만 원, 7,400만 원과 기업은행 계좌에 입금한 1억 원 모두 입금 직후 소액만 남기고 모두 인출되었으며, 이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조직의 자금 세탁 과정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A씨가 주장한 'D의 캄보디아 체류 당시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진 피고대표자의 주소 변경 등기' 등의 사정 역시 피고의 사기 범행 공모 여부, 예견가능성 유무, 인과관계 유무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일축하며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계좌 명의자가 사기 조직에게 속아 비자발적으로 접근매체를 전달했고, 그 행위에 대한 형사상 '무혐의'가 인정된 경우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우기 위해서는 '사기 공모나 예견 가능성', 그리고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더 명확한 증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항소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