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6)] 사람보다 귀하게 여기는 짐승
[정형근 교수 에세이 (56)] 사람보다 귀하게 여기는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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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건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단 멈춤 같은 배려도 없던 차량들이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도로 중앙을 천천히 지나가니 일제히 멈췄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광주에서 심야에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자동차가 통행하는 시내 한복판 도로에 소들이 어슬렁거린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정말 그런지 인도(India)를 여행하고 싶었다. 출발 시간이 오전 8시경이라서 자정이 넘은 밤 시간에 출발하여 이른 새벽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떨어져 있는 지방에서 지내는 불편이었다. 먼저,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홍콩공항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후 인도 델리행 항공기에 탑승했다. 여행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검푸른 원피스에 바닥에 닿을 듯이 기다란 스카프를 목에 걸친 승무원들은 허리 부분이 노출된 옷을 입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 얼마쯤 지났을 때 어디선가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 나는 쪽을 둘러보니 대학 신입생쯤으로 보이는 여학생이 울고 있었다. 어떤 분이 무슨 일 때문에 우느냐고 물었더니, 인터넷 카페에서 인도여행 팀을 만들어서 그날 홍콩공항에서 만나 델리행 비행기를 타자고 했는데, 함께 가기로 했던 일행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혼자 탑승을 하였지만, 인도에서 머물게 될 숙소는 다른 팀원들이 정한 것이라서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더욱이 외국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게 혼자 가도록 버려둘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어떤 분이 "혹시 단체로 가는 인도여행 팀 중에서 이 여학생을 끼워줄 수 있는 팀이 없나요?" 하니까, 대학생들로 보이는 여러 명의 청년들이 손을 들었다. 다행히 그 일행 중에 여학생도 몇 명 보였다. 어디 학교 학생들이냐고 묻고, 혼자 가게 된 그 여학생에게 저 여행팀과 합류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으니 함께 가겠다고 했다.
인도 시각으로 밤 11시경 델리공항에 도착하였다. 차창 밖 어둠 속의 불빛들이 마치 인도인들의 눈빛처럼 반짝거렸다. 수많은 눈동자들이 낯선 여행객을 지켜보는 듯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서양인처럼 훤칠한 인도인들의 큰 키가 시선을 끌었다. 늦은 시간에 입국하는 것이라 엄격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입국절차를 마치고 나오니 후끈한 열기가 덮쳐왔다. 그 열기 속에 인도 특유의 향냄새가 짙게 배 있었다. 공항 내부가 무척 어둡다고 느끼며 밖으로 나왔더니, 밖은 더 어두웠다. 가로등이 켜있는데 어둡긴 마찬가지였다. 건물을 나오는 바로 입구에 차량들이 들어서 있어 대단히 혼잡스러웠다. 널찍한 도로 공간도 없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숙소로 가기 위하여 택시를 타야 했다. 그곳에서는 승차하기 전에 요금을 흥정하였다. 시골 정류장에 있는 창구 같은 곳에서 요금흥정을 마친 후 택시에 올랐다. 봉고차와 비슷한 자동차로 매우 작았다. 차가 출발하는데 어두운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어두운 심야에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자마자 광란의 질주를 하는 것 같았다. 차선도 제대로 그어져 있지 않은 도로에서 서로 추월경쟁을 하였다. 단 몇 초도 차분하게 앞차를 뒤따르지 않았다. 요란한 경적을 울리면서 추월을 하였다. 모든 차량의 후미에는 "Keep Distance!"라고 적혀 있었다. 안전거리를 지켜달라는 것이지만, 그것을 지키는 차들은 없었다. 그리고 "HORN, PLEASE!" 또는 "BLOW HORN"이라는 문구가 차량 후미에 있었다. 추월할 때 경적을 울려 달라는 의미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엄청 빵빵거렸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경적소리는 귀를 먹먹하게 하고 혼을 빼는 듯하였다. 그 경적소리는 자동차의 숨소리요, 잘 달리고 있다는 자동차의 흥얼거림 같았다. 자정이 가까운 심야인데도 거리에는 소들이 있었다. 비포장도로 근처의 쓰레기통 주변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대도시에 사람들과 공존하는 황소들을 보니, 소를 신처럼 섬긴다는 말이 사실 같았다.
인도 여행 첫날 새벽 6시 20분에 눈을 떴다. 밤새 에어컨이 켜져 있었던지 무척 추웠다. 덜덜 떨다시피 하면서 긴팔 옷을 찾았다. 밖에는 비가 내릴 듯 어둡고 잔뜩 흐린 날씨였다. 아침 식사로 망고와 사과, 바나나 등의 과일과 계란을 넣은 토스트 빵을 먹었다. 아직 맛이 들지 않은 풋사과는 우리나라 사과의 절반 정도로 아주 작았다. 인도 사람들은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고, 왼손으로는 용변을 처리하기 때문에 왼손 사용은 금지된다고 했다. 따라서 왼손으로 음식에 손을 대거나, 가게에서 상품을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물건을 건네거나 악수를 하는 경우에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한다고 했다.
먼저 시장 구경에 나섰다. 우리의 재래시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루피'라 부르는 지폐에는 간디의 화상이 새겨져 있었다. 시장은 굉장히 독한 향신료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냄새가 많이 났다. 그런 냄새는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나올 때부터 강렬하게 엄습해 왔다. 온 천지를 향냄새로 덮여있는 것 같았다. 무더운 날씨에 계속 맡게 되는 향냄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상가를 둘러보다 보니 모든 상가입구의 한쪽 벽 부분에 한두 뼘 남짓한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주 작은 힌두교 신상이 놓여 있었다. 10cm 정도의 크기로 보였다. 그 신상 앞에 향을 피우고 있었다. 바로 그 향 연기와 냄새가 도시의 대기 속에 스며있는 듯했다. 상가가 밀집한 지역 때문인지 냄새가 워낙 강하여 숨쉬기도 힘들었다. 종교와 삶이 일체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펀잡'이라는 의상을 입은 여인들의 햇볕에 그을린 검고 구릿빛 나는 얼굴, 이목구비가 분명하고 유난히 커 보이는 검은 눈동자가 매혹적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도로를 건너는 모습은 정말 아찔했다. 도로는 차선도 보이지 않고 횡단보도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중앙선 부근에는 작은 화단을 만들어 놓아 반대차선과 구별해 놓았다. 보행자가 도로를 건너고 있어도 자동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경적을 울리며 그대로 돌진하였다. 보행자는 사냥꾼 앞에 황급히 도망치는 산토끼 같았다. 보행자를 자동차의 진행을 방해하는 물건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단 멈춤 같은 배려도 없던 차량들이 어디선가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도로 중앙을 천천히 지나가니 일제히 멈췄다. 경적을 울리거나 옆 차로를 빠져나가려고 하지도 않은 채 소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에게 해야 할 배려를 짐승에게 하는 문화가 낯설었다. 무덥고 후덥지근한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비를 피할 곳이 없어 맥도날드 가게로 들어갔다. 우산이 있었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폭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