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탈출 SOS 주 10건 쇄도... 현지에서 본 납치 실태는
캄보디아, 탈출 SOS 주 10건 쇄도... 현지에서 본 납치 실태는
"여행 동행" 미끼로 공항서 납치
폭행 후 다른 조직에 팔아넘기고, 현지에선 반한 감정까지
캄보디아 한인회장 "정부 차원 강력 대응 절실"

캄보디아 검찰에 기소된 한국인 대학생 살해 혐의 중국인 3명 모습. /연합뉴스
지난 7월 캄보디아에서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A씨. 그와 함께 감금됐다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생존자는 당시 A씨의 상태에 대해 "목부터 종아리까지 전부 피멍이 들어 있었고, 무릎 살이 벌어져 뼈가 드러나 있었다"며 "픽업트럭에 태웠을 땐 이미 눈이 뒤집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고수익 알바'의 유혹에 빠져 캄보디아로 향한 청년들이 범죄 조직의 노예로 전락하는 비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 한인회 정명규 회장은 1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현지의 처참한 실태를 전하며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정 회장에 따르면, 한인회와 대사관에 접수되는 구조 요청만 일주일에 5건에서 10건에 달한다.
'사이버 범죄 공장'이 된 캄보디아
캄보디아는 왜 한국 청년들을 노리는 범죄 조직의 소굴이 됐을까. 정명규 회장은 "보이스피싱뿐만 아니라 로맨스 스캠(SNS로 신뢰를 쌓은 뒤 돈을 갈취하는 수법), 주식 리딩방, 온라인 카지노 등 다양한 사이버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범죄 조직은 주로 중국에서 넘어왔지만, 최근에는 여러 국적의 점조직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추세다. 이들이 캄보디아를 거점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 정 회장은 세 가지를 꼽았다.
- 느슨한 규제와 편리한 이동: 비자 발급이 쉽고 태국, 베트남 등 인접국으로의 육로 및 항공 이동이 자유로워 조직원 유입과 도주가 용이하다.
- 코로나19의 역설: 팬데믹으로 문을 닫은 폐공장들이 많아 감금 장소로 활용하기 좋았다.
- 경제 위기: 정상적인 사업보다 적은 비용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이버 범죄에 조직들이 몰리고 있다.
정 회장은 "범죄 조직 내 한국인은 3~5% 수준이지만, 경제적으로 더 나은 한국인들이 투자 사기 등의 주요 표적이 되면서 피해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류만 전달해주세요"…진화하는 납치 수법
초기 범죄 조직들은 '통번역 고수익 알바'와 같은 전형적인 구인 광고로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법이 더욱 교묘해졌다. 정 회장은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 '캄보디아에 서류만 전달해주면 큰돈을 주겠다'거나, '여행에 동행만 해주면 비행기 값을 대주겠다'는 식의 글을 올린다"고 경고했다.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이들은 대부분 "신용불량자 등 금전적으로 절박한 청년들"이라고 한다. 정 회장은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있겠냐는 막연한 안도감 때문에 왔다가 끔찍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말 안 들으면 폭행 후 재판매"…피해자의 비극적 최후
숨진 대학생 A씨의 사례는 범죄 조직의 잔혹한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준다. 정 회장은 A씨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고도 '대포통장'을 만들어 캄보디아로 들어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 회장은 "통장에 들어온 불법 자금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자, 조직이 A씨를 폭행했을 것"이라며 "양심의 가책 등으로 A씨가 조직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구타가 시작됐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피해자를 다른 조직에 팔아넘기는 행태다. 정 회장은 "한 장소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조직에 피해자를 넘긴다"며 "A씨를 사들인 두 번째 조직 역시 자금 회수를 위해 추가적인 폭행을 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A씨는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살려주세요" SOS 쇄도…반한 감정까지 번져
현재 한인회와 대사관은 감금됐다가 탈출한 피해자들의 귀국을 돕고 있다. 하지만 정 회장은 "탈출 과정에서 조직에 다시 붙잡혀 더 심한 폭행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너무 많은 건수가 생겨 돕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올해 대사관 등을 통해 신원이 파악돼 귀국한 사람만 300~400명에 달하며, 신고되지 않은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태가 악화하면서 현지에서는 반한 감정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정 회장은 "캄보디아인들은 '범죄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저지르는데 왜 캄보디아가 범죄 도시로 낙인찍히고 여행 금지 조치를 당해야 하냐'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K-컬처에 우호적이던 분위기가 악화되고, 현지 교민들의 경제 활동까지 위축되는 실정이다.
정 회장은 최근 우리 정부가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하고, 캄보디아 경찰과 협력하는 '코리안 데스크' 설치를 논의하기 시작한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강력한 정부 대응이 있어야 현지 상황이 바뀔 수 있다"며 신속한 조치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