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한다"더니 보증금 1억 올려 새 계약…사기 고소하자 '합의하자'는 집주인?
"실거주한다"더니 보증금 1억 올려 새 계약…사기 고소하자 '합의하자'는 집주인?
민사소송으로 8000만원 청구한 상황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집주인 A씨가 실거주를 하겠다며 계약갱신을 거절해 어쩔 수 없이 이사한 세입자 B씨. 그런데 얼마 뒤 A씨가 집을 7개월간 비워두다 보증금을 1억원이나 올려 새로운 세입자를 들인 사실을 알게 됐다.
억울했던 B씨는 A씨를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하고, 이사비와 중개수수료, 늘어난 월세 부담 등을 포함해 약 8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냈다.
그러자 A씨 측 변호사가 수사관을 통해 B씨에게 합의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B씨는 A씨와 합의를 해야 할까? 합의한다면 민사소송에서 요구한 8000만원을 전부 받을 수 있을까?
"실거주" 거짓말에 쫓겨났는데…사기 고소하자 '합의' 연락 온 집주인
B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집주인 A씨가 직접 살겠다며 계약갱신을 거절해, 같은 아파트 다른 동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A씨의 말은 거짓이었다. A씨는 B씨가 이사 나간 집을 약 7개월간 공실로 두더니, 기존 계약보다 보증금 1억원, 월세 10만원을 올려 새로운 세입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이는 명백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위반이었다. 화가 난 B씨는 A씨를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하고, 이사 비용과 중개수수료, 50% 이상 늘어난 월세 부담 등을 근거로 약 8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경찰서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고 며칠 뒤, B씨는 담당 수사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A씨가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그 변호사를 통해 합의 의사를 타진해 왔다는 내용이었다.
변호사들 "지금이 협상 최적기"…8000만원 요구, 가능할까?
변호사들은 A씨 측이 먼저 합의 의사를 밝혀온 지금이 B씨의 협상력이 가장 높은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공동법률사무소 온기 권장안 변호사는 "피고소인 측이 먼저 합의 의사를 타진해 온 지금이 협상력이 가장 높은 시점일 수 있다"며 "합의를 거부하기보다 조건을 유리하게 이끄는 것이 실익이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B씨가 민사소송에서 청구한 8000만원을 합의금으로 모두 요구할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요구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고 봤다.
법률사무소 길 길기범 변호사는 "형사 합의금은 민사적 기준을 넘어 '처벌을 면하기 위해 지불하는 위로금'의 성격이 포함되므로, 8000만원 또는 이에 준하는 고액을 합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원이 실제로 8000만원 전액을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법무법인(유한) 텍스트 박종태 변호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법정손해배상금과 실제 입은 손해액을 합산한 객관적 손해액은 8000만원보다 적게 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법정 인정 예상액보다 높은 수준에서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는 것이 전략적"이라고 짚었다.
사기죄 성립 어려울 수도…합의 제안이 '기회'인 이유
A씨가 서둘러 합의에 나선 이유는 사기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허위 실거주를 이유로 한 갱신거절이 사기죄로 인정되기는 생각보다 까다롭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쉴드 남천우 변호사는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임대인이 갱신거절 당시부터 실거주 의사가 전혀 없이 처음부터 임차인을 기망할 고의가 있었음이 증명되어야 한다"며 "공실 기간이나 재임대 조건 변경만으로는 고의 입증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사기죄가 불송치(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음)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A씨가 먼저 합의를 제안한 지금이 B씨에겐 유리한 기회라는 분석이 나온다.
합의한다면 '이것'만은 반드시 확인해야
만약 합의에 나서기로 했다면, 합의서 문구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변호사들은 강조했다.
법무법인 한강 허은석 변호사는 "합의한다면 형사 합의만 하고 민사청구권까지 의도치 않게 포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섣불리 '민·형사상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문구에 서명했다가, 적은 합의금만 받고 민사 소송까지 포기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세림 김환 변호사도 "상대방 변호사와 통화하기 전에 제안 내용을 서면으로 받고, 지급 시기와 민·형사 종결 범위를 분리해서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법률사무소 강현 최용석 변호사는 "상대방 제안을 먼저 받아본 뒤, 민사 청구까지 한 번에 끝낼지 아니면 형사 합의만 할지를 정하는 편이 좋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