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안 봤는데 "우리 아이 반 바꿔 달라"…새 학기 교실 흔드는 반 배정 민원
얼굴도 안 봤는데 "우리 아이 반 바꿔 달라"…새 학기 교실 흔드는 반 배정 민원
역할극 '매니저 놀이'를 갑질·학대로 과잉 해석
아이들 화해해도 부모 감정은 그대로

개학 첫날부터 “우리 아이 반 바꿔달라”는 학부모 민원이 쏟아져 교실 균형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셔터스톡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설렘을 안고 새 교실로 들어서는 개학 첫날. 정작 학교 현장 교사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 하루를 보낸다. 아직 친구들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아이 반을 바꿔 달라"는 학부모들의 단골 민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유승민 작가는 최근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초등학교 반 배정 민원의 실태를 짚었다.
"유치원 때 싸웠으니 떼어주세요"… 개학 첫날 교실 덮친 기피 명단
초등학교 반 편성의 핵심 키워드는 '균형'이다. 학교 측은 지난해 갈등이 있었던 학생들을 분리하고, 리더 성향의 학생, 말썽을 부리는 학생, 민원이 잦은 학부모의 자녀, 특수 지원이 필요한 학생 등을 고루 분포시킨다.
학교폭력 직전까지 갔던 사안이라면 결론이 나지 않았어도 우선 분리한다. 유 작가는 "이 반 배정 민원을 받아들인다는 건 이미 맞춰 놓은 균형을 또다시 흔드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부모들의 기피 대상 명단이 누적된다는 점이다. 상담 과정에서 "유치원 때 안 좋았고, 1학년 때 안 좋았고, 3학년 때 안 좋았으니 다 떼어놔 달라"는 식의 무리한 요구가 빈발한다.
"애들은 친해졌는데 부모가 반대"… 자녀와 감정 동일시하는 어른들
아무런 정보가 없는 1학년 반 편성에서도 민원은 발생한다. 유 작가가 전한 현장 교사의 목소리에 따르면, 병설 유치원 시절 학부모끼리 심하게 다퉜다는 이유로 "얘랑은 같은 반 안 하게 해 달라"는 연락이 온다. 같은 아파트에 살며 육아관 차이로 부모들끼리 갈등을 겪은 경우다.
현장 교사는 "아이들보다 부모님들 싸움이 더 어렵다"며 "결국 한 명이 전학 가야 끝나는데, 이사 갈 때까지 분쟁이 계속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아이들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 다시 부모 싸움이 아이들 단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학부모가 자녀 감정에 과도하게 이입해 불씨를 키우는 사례도 많다. 한 학부모는 교장실을 찾아와 "작년에도 우리 애만 혼자 아는 애 없이 지내서 마음고생을 했다. 애는 매일 학교 가기 싫다 하고 그걸 지켜보는 어미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아느냐"며 오열했다고 한다.
유 작가는 "어머니들이 자녀와 본인의 감정을 동일시한다"며 "아이들은 한 일주일 지나면 다시 잘 지내는데, 부모들은 본인 감정이 상해서 그 아이하고 내년에 같은 반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범한 '매니저 놀이'가 학폭으로 둔갑
최근에는 아이들의 단순한 놀이를 어른의 잣대로 과잉 해석하여 민원을 제기하는 현상도 늘고 있다. 쉬는 시간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른바 '매니저 놀이'가 대표적이다.
연예인과 매니저로 역할을 나누어 "색연필 갖다 줘", "종이접기하게 준비해 줘"라며 서로 번갈아 가며 노는 일종의 역할극이다.
당사자인 아이들은 "재밌었다"고 반응하지만, 이를 전해 들은 학부모는 분노한다. 어른들의 눈에는 이 놀이가 갑질이나 심부름, 심지어 학대로 비치기 때문이다.
유 작가는 "부모가 '이건 좋지 않은 거야'라고 가치를 주입한다"며 "연예인 역할을 했던 아이가 탐탁지 않게 느껴져 같은 반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민원을 넣거나, 심할 경우 학교폭력이라고 단정 짓는 경우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유연한 세계를 어른들의 경직된 시각으로 재단하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반 배정 갈등이 창조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