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먹고 한 자백, 유죄 증거될까?…"판사 앞 선서 아니면 번복 가능"
겁먹고 한 자백, 유죄 증거될까?…"판사 앞 선서 아니면 번복 가능"
변호사들 "자백 경위와 증거 불일치 입증하면, 판세 뒤집을 수 있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A씨는 3~4년 전, 전 애인 B씨의 외도와 쇼핑 중독 문제로 이별을 통보했다. 이후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지만, B씨는 A씨에게 계속해서 금전적 요구를 하거나 “현재 만나는 사람과의 성관계가 이렇다”는 식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공포와 수치심을 견디다 못한 A씨는 결국 B씨의 부모에게 연락해 “아들이 이런 문자를 보내니 멈추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로부터 3년이 흐른 현재, B씨는 돌연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씨가 과거 자신의 쇼핑몰 아이디에 무단 접속해 결제 내역을 부모에게 보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B씨는 정보통신망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를 주장하며 합의금을 요구했다. A씨는 3년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데다, 일을 키우고 싶지 않은 마음과 B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내가 한 게 맞는 것 같다”며 순순히 자백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민사소송 과정에서 B씨가 법원에 제출한 증거를 확인한 A씨는 충격에 빠졌다. B씨가 제출한 결제 내역 사진의 날짜가 3년 전이 아닌 최근 날짜였기 때문이다. A씨는 B씨가 자신의 자백을 유도한 뒤, 증거를 급조해 소송을 건 것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겁먹고 한 자백, 유죄 증거될까?
가장 큰 쟁점은 A씨가 두려움 속에서 한 자백의 효력이다. 변호사들은 A씨의 자백이 판사 앞에서 선서하고 한 ‘재판상 자백’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했다.
한대섭 변호사(모두로 법률사무소)는 “상대방의 협박이나 유도신문이 무서워 한 재판 외의 자백은 그 자체로 확정 판결 근거가 되지 않는다”며 “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경위를 재판부에 명확히 설명하고 번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형사소송법상 자백은 ‘임의성(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진술)’이 인정되어야 증거로 쓰일 수 있다. 한병철 변호사(법무법인 대한중앙)는 “피의자가 심리적 압박이나 공포감 속에서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 경우, 그 자백은 임의성이 부정될 수 있다”며 “단순히 자백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즉, A씨가 B씨에 대한 두려움과 기억의 불확실성 속에서 자백에 이른 경위를 입증한다면, 자백의 증거 능력을 충분히 다툴 수 있다는 의미다.
3년 전 범죄라더니… 최근 날짜 증거의 정체는?
오히려 판세를 뒤집을 열쇠는 B씨가 제출한 증거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B씨는 3년 전의 불법 행위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증거는 최근 날짜가 찍힌 결제 내역 사진을 제출했다.
한대섭 변호사는 “3년 전 피해를 주장하면서 왜 증거는 지금 날짜의 것인가에 대해 재판부가 당연히 의심할 것”이라며 “자백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면 오히려 상대방 주장의 신빙성이 통째로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변호사들은 B씨가 A씨의 자백만 믿고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심규덕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3년 전 사건임에도 최근 날짜의 결제내역을 증거로 제출한 것은 증거의 관련성 및 신빙성을 인정받기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조수진 변호사(더든든 법률사무소)는 한발 더 나아가 “증거 조작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오히려 A씨가 허위사실로 고소당한 피해자이므로 무고죄 역고소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정 공유했는데… 무단 접속 처벌받나
B씨가 주장하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의 성립 여부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 A씨는 교제 당시 B씨와 쇼핑몰 아이디 등을 공유하며 자동 로그인 상태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하진규 변호사(법률사무소 파운더스)는 “시스템상 자동 로그인 기능이 남아있어 의도치 않게 접근한 경우, 침입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명예훼손 혐의 역시 마찬가지다. A씨가 B씨의 부모에게 연락한 목적이 B씨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부당한 행위를 멈춰달라고 요청하기 위함이었다면 비방할 목적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 하 변호사는 “문제 해결을 위한 행위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규 변호사(법무법인 유안)는 “상대방은 두려움을 이용해 허위 자백을 유도하고 부당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법적 절차 내에서 증거에 기반해 차분하게 대응한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