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 받은 아동학대범들의 공통점…판결문 속에 숨겨진 감형 키워드는 '이것'
집행유예 받은 아동학대범들의 공통점…판결문 속에 숨겨진 감형 키워드는 '이것'
2024년 이후 선고된 아동학대 판결서 분석
초범·합의·반성 있으면 집유
재범·피해 미회복은 실형

감옥에서조차 반성은커녕 가족에게 협박 편지를 보낸 아빠. 법원은 무려 2.5페이지를 써가며 죄질을 꾸짖고 실형을 선고했다. 반성 없는 학대범엔 자비도 없었다. /셔터스톡
감옥에 있는 아빠로부터 편지가 왔다. 남겨진 가족들은 그 편지를 뜯는 순간 얼어붙었다. 반성과 안부가 아닌, 섬뜩한 협박과 자녀들에 대한 학대 지시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수감 중인 피고인은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 재판부에 수십 통의 반성문을 제출하곤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고인은 반성 대신 옥중 편지라는 수단으로 학대를 이어갔다. 법원은 이런 이중적인 태도를 놓치지 않았다. 반성 없는 가해자에게 훨씬 무거운 철퇴를 내렸다.
최근 법원은 단순히 때리고 굶기는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배와 협박까지 학대 범주로 엄격히 판단하는 추세다. 2024년 1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선고된 주요 아동학대 판결문 50여 건을 분석해 본 결과, 기류는 뚜렷했다.
"감옥에서도 괴롭혔다"… 판사가 2.5장 분량으로 꾸짖은 이유
2024년 12월 12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2024고합235)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보복협박) 및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흥미로운 점은 A씨가 이미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옥중에서 피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편지 내용이 대단히 노골적이고 부적절하며, 미성년 자녀들에 대한 협박까지 암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인 양형 이유가 반 페이지 정도에 그치는 것과 달리, 이 사건의 재판부는 무려 2.5페이지를 할애해 A씨의 죄질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수감 중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집행유예 없는 실형을 택했다.
이는 물리적 폭력이 없더라도, 피해 아동과 가족을 심리적으로 옥죄는 행위를 법원이 얼마나 엄중하게 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출소 3개월 만에 또… 누범 기간엔 자비 없었다
초범에게는 관대하지만, 재범에게는 가혹한 것이 형사 재판의 대원칙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판결(2024고단534)은 이 원칙을 재확인시켜준다.
피고인 B씨는 2023년 11월 형 집행을 마친 뒤,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이번엔 특수폭행, 공무집행방해, 아동학대 등 혐의만 10개다.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고 범행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그에게 징역 5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판결문의 핵심 키워드는 '누범'이었다. 누범이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집행이 끝난 지 3년 이내에 다시 죄를 짓는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누범 기간 중임에도 자숙하지 않고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별다른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했다"며 죄질을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했다.
배심원 7명 전원 "무죄"… 아동학대도 증거가 우선
그렇다면 신고만 하면 무조건 처벌받을까? 그렇지 않다.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의심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엄격한 증명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
2024년 9월, 춘천지방법원(2024고합26)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이 대표적이다. 배심원 7명은 전원 일치로 피고인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가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회적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공분이 높더라도, 법정에서는 감정이 아닌 증거가 유죄의 유일한 열쇠임을 시사한다.
"초범·반성·합의"… 집행유예 공식
분석한 판결문 50여 건을 종합해 보면, 법원의 양형 공식은 뚜렷했다. 실형을 피하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례들에는 ▲동종 전과가 없는 초범(15회 이상) ▲진지한 반성(12회) ▲피해자 측과의 합의(10회) 등이 가장 빈번하게 참작 사유로 꼽혔다.
특히 어린이집 교사 같은 '신고의무자'라 하더라도, 이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고 학대 정도가 경미하다면 실형 대신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향이 드러났다.
반면, 실형이 선고된 사건에서는 ▲죄질 불량(18회) ▲피해 미회복(12회) ▲반복적 학대(9회) 등의 키워드가 지배적이었다. 즉, 반성 없는 태도와 피해 회복 노력의 부재는 예외 없는 엄벌로 이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