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밥 먹고 일해야지" 공짜로 밥 챙겨주던 사장님, 퇴사 후엔 "챙겨준 밥값 내놔"
퇴사 전 "밥 먹고 일해야지" 공짜로 밥 챙겨주던 사장님, 퇴사 후엔 "챙겨준 밥값 내놔"
근로계약서에 "식대 제공 안 함" 규정돼 있는데⋯따로 밥값 챙겨준 사장
알바 그만두니 "그동안 준 밥값 몽땅 뱉어내라" 요구
"소송하겠다"는데⋯꼼짝없이 그동안 받은 밥값 돌려줘야 할까

알바 중 간단하게 김밥이나 도시락을 사주기도 했던 사장님. 그런데 일을 그만두자 사장님은 A씨에게 연락해 "그동안 너에게 준 밥값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식대 제공 안 함."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이러한 내용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끼 식사가 1만원에 가까운 요즘, 근무지에서 식대를 주지 않으면 알바 또는 직장인 입장에선 아쉬운 마음이 들기 마련.
알바 A씨도 비슷한 처지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사장님은 따로 밥을 챙겨줬다. 간단하게 김밥이나 도시락을 사주기도 했다. 따로 돈으로 줄 때도 있었다. 이 때문에 A씨가 알바를 그만둘 때 사장님과 약간의 갈등을 겪긴 했지만, 감사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은 A씨에게 연락해 황당한 요구를 했다. 돌연 "그동안 너에게 준 밥값을 내놔"라는 것이었다. 돈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할 생각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호의로 밥값을 챙겨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돌려달라는 사장님. A씨 입장에선 돈을 주자니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돈을 줘야 할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뀐다.
실제로 계약서상 알바 등에게 밥값을 줄 의무가 없는데, 밥을 챙겨 주는 사장님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어 A씨 사장님처럼 요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호사와 함께 알아봤다.
변호사들은 사장의 요구는 법률적으로 따져봐도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사안은 우리법에 규정된 '비채변제(非債辨濟)'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비채변제는 변제자가 채무가 없는 것을 알면서 변제(남에게 진 빚을 갚음)한 경우를 말한다. 민법은 이런 경우에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도록(제742조) 하고 있다.
즉, 근로계약서상 사장(변제자)은 알바 A씨에게 밥값(채무)을 줄 의무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밥값을 줬다(변제). 그럴 경우 원칙적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명율의 차인환 변호사는 "사측(사장)에서 근로계약서에서 식대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A씨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는 것 같다"며 "비채변제에 해당해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선린의 주명호 변호사도 "사장이 식대를 지급하면서 나중에 이를 반환할 것을 약속받지 않았다면, 이는 비채변제에 해당해 반환을 요구할 수 없다"고 했다. 사장의 행동은 호의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만약 사장이 소송을 해도 방법은 있다. 법무법인 신광의 임선준 변호사는 "함께 근무했던 동료에게 아직도 식대 지급하냐는 식으로 물어보아 증거를 수집해놓으라"고 조언했다. 주 변호사도 "사장의 소송에 대해 충분히 방어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실제 소송으로 다툰 끝에 비채변제 판단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의사 B씨가 자신의 병원에서 근무한 간호조무사 C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이었다.
이 병원에서 약 10년 동안 일한 C씨는 그만두면서 B씨에게 퇴직금을 요청했다. 그러자 B씨는 그동안 자신이 내준 4대 보험료 약 2400만원을 달라고 주장했다. 원래 C씨가 내야 할 금액을 행정상 착오로 대신 내줬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인천지법 부천지원 재판부(재판장 황중연 부장판사)는 의사 B씨의 패소를 결정했다. 근거는 C씨가 동료들로부터 확보한 근로계약서와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이었다.
이 자료들을 정리해보니 B씨는 근로계약서상 보험료를 내줄 의무가 없는데도 다른 간호조무사들의 보험료까지 대납했다. 그리고 이후 간호조무사 등 직원들이 받을 연말정산환급금을 수령해온 것도 확인했다.
C씨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의 보험료를 대납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세금 처리까지 해오고 있었으므로 행정상 착오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재판부는 "여러 증거들에 비춰 의사 B씨는 간호조무사 C씨에 대한 4대 보험료 중 일부의 납부 책임이 법령상 C씨에게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납부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례를 바탕으로 보면 결국 사장이 내준 A씨의 밥값은 비채변제에 해당하고, A씨는 식대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