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명의 좀" 남편 믿고 인감 줬다 유령 대표돼 소송까지 휘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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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명의 좀" 남편 믿고 인감 줬다 유령 대표돼 소송까지 휘말렸다

2025. 09. 10 15:34 작성
김혜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j.kim@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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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책임 피할 길 없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남편에게 인감도장을 줬을 뿐인데, 빚더미에 앉을 유령 대표가 됐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법인 2곳의 대표가 되고 거액의 소송까지 당한 A씨. 모든 비극은 2023년 5월,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편의 "일 때문에 당신 명의가 필요하다"는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믿음의 대가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법적 족쇄가 되어 돌아왔다.


A씨는 남편이 자신을 단순히 회사 직원으로 등록하려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이었다. 얼마 후 A씨는 자신이 법인 2곳의 대표이사로 등재된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는 단독 대표, 다른 하나는 남편의 지인과 함께 이름을 올린 공동대표 법인이었다.


A씨가 명의를 빼달라고 항의하자 남편의 폭력이 돌아왔다. 폭력을 피해 거처를 옮긴 A씨는 남편과 헤어진 뒤, 자신이 단독 대표로 있던 법인을 서둘러 폐업했다. 그러나 남편 지인과 엮인 공동대표 법인은 손쓸 방법이 없어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업을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회사였다.


불안한 시간은 소장과 함께 현실이 됐다. 지난 6월 12일, 공동대표가 A씨를 상대로 거액의 배상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소송의 근거는 A씨가 해당 법인의 주식 50%를 보유한 주주라는 것. 심지어 상대방은 A씨의 주식을 묶어두기 위해 '주식가처분신청'까지 낸 상태였다.


"이름만 빌려줬다" 항변, 통하지 않는 이유

A씨는 "주식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법의 세계는 냉정하다.


법무법인 시우의 김연수 변호사는 "명의만 빌려준 경우라도 상법에 의하면 공동대표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법 제395조는 '표현대표이사'의 책임을 규정한다. 쉽게 말해, '나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이라고 항변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외부 거래처가 등기부등본에 적힌 대표이사 A씨의 이름을 믿고 회사와 거래했다면, A씨 역시 그 거래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등기부등본은 '이 사람이 이 회사를 대표한다'는 공적인 증명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유령 대표' 족쇄 푸는 3단계 소송 전략

그렇다면 A씨는 이 족쇄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적극적인 법적 대응이 시급하다며 단계별 액션 플랜을 제시했다.


1단계는 즉각 방어다. 공동대표가 제기한 민사소송에 변호사를 통해 정식으로 답변서를 제출하며 대응해야 한다.


2단계는 탈퇴 선언이다. 동시에 A씨는 법인에 내용증명 등을 보내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3단계는 강제 이행 소송이다. 아키텍트 법률사무소의 조준호 변호사는 "상대방의 협조가 없다면 사임등기 절차가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법원에 '대표이사 사임에 따른 변경등기 청구 소송'을 제기해 강제로 등기부에서 이름을 지워야 한다. 이는 '내 의사와 무관하게 등재됐으니, 법원의 힘으로 등기부에서 내 이름을 지워달라'고 요청하는 소송이다.


주식 문제 역시 자신이 주식 대금을 낸 적도, 주주 권리를 행사한 적도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주식명의개서 말소청구 소송'을 제기해 명의상 주주임을 법원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즉, '나는 주주 명부에 이름만 올랐을 뿐 실제 주인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법원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받는 절차다.


소송 승패 가를 열쇠, 속았다는 증거에 달렸다

이 모든 법적 다툼의 성패는 결국 명의도용 사실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입증하느냐에 달렸다. A씨는 남편의 기망(속임수)에 의해 법인 설립에 동의하게 됐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감증명서 등을 건넬 당시의 대화 녹음이나 메시지 ▲법인 설립 자금이 A씨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금융거래내역 ▲법인 운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증거 ▲남편의 폭행 사실을 입증할 진단서나 경찰 신고 기록 등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남편을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죄 등으로 형사 고소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형사 절차에서 명의도용 사실이 인정될 경우,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은 등기부등본의 이름을 믿은 제3자를 더 강하게 보호하기에, 법정에서 "나는 몰랐다"는 항변은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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